바둑계가 '미투'에 대처하는 자세
한국기원에 말한다
[취재수첩]
  • 정용진|2018-04-26 오전 0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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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룡 9단.

[취재수첩] 카테고리에 칼럼 모양새로 쓰는 글이긴 하나, 미리 고백하건대 기자의 처지보다는 바둑인의 한 사람으로서 심정을 늘어놓은 것이기에 글이 신파조로 길고 주관적인 논조에 치우쳤다 지적해도 달게 받겠다. 이미 먹을 대로 먹은 욕, 좀더 먹은들 대수리.

○● 프로기사 대의원회, 김성룡 제명 의결 ☜ [취재수첩] 관련기사 보기 클릭

충격, 멘붕, 답답...
디아나 초단의 폭로 이후 이제까지 흐름을 바라보며 느낀 바를 간추린 단어다. 제아무리 광주리만한 입이 있어도 무에 할말이 있을까만, 가뜩이나 말 많아 어수선한 상황에 ‘말리는 시누이’마냥 밉보이는 행태며 외려 혼란만 가중시키고 여론에 기름질하는 짓이란 비난을 받을지라도, 지금 한국기원(총재 홍석현)이 대처하는 형편이 굼뜨고 속시원한 것 하나 보이지 않는 마당에 눈치나 보며 숨죽이고 있을 수만은 없는 형편이다. 필자를 비롯해 바둑인이면 누구나 이 사태가 공정하게 처리되고 한시바삐 파문이 가라앉아 바둑계가 입을 피해, 바둑팬이 받을 상처가 최소화하기를 바랄 것이다. 한국기원도 당연히 그러할 것이다. 다만 신속한 처결을 바라는 대다수 팬의 요구와 달리 책임 있는 단체로서 헤아려야할 바가 있을 테니 문제를 푸는 방식에 차이(이견)를 보이는 것이라 여긴다.

1. 먼저 한국기원 입장에서 생각해 봤다.

실명까지 밝히고 나선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은 잠적했다. 4월16일 늦은밤 ‘성폭행 폭로글’이 기사게시판에 오른 이후 열흘에 가깝도록 김성룡 9단이 선임했다는 변호사조차 ‘사실관계를 확인 중이니 좀더 기다려달라’고 한 말 외에는 어떤 반응도 들려오지 않는다. 수사권도 없는 한국기원 처지에서 강제로 구인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당사자로부터 가타부타 소명을 듣지도 못한 상황에서 섣불리 처벌을 결정할 수 없다. 도덕적으로는 매장 당할만한 일을 저질렀어도 혹여 법적으로 다툼의 여지가 있다면 진상이 밝혀지기 전 여론에 밀려 섣불리 징계하기 곤란하다. 죄상이 확실히 드러나기 전까지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적용하는 게 판정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혹은 단체)이 취할 바이고 객관적인 자세일 것이다. 지금 나열한 이런저런 사정으로 신중에 신중을 기해 풀어나가겠다는 것이 (지금까지) 한국기원, 윤리위원회의 스탠스로 보인다.

한국기원으로선 입밖에 내지 못하나 억울하게 생각하는 점이 또 있을 것이다. 엄밀히 보면 디아나 초단의 폭로 건은 ‘위계를 악용한 미투 범주’라기보다 성범죄 의혹을 받는 파렴치 사건이고, 그렇다면 김9단이 비록 한국기원 소속 기사이기는 하나 개인의 일탈행위이기에 마치 한국기원이 저지른 일인 양 공분을 사고 있는 것을 억울하게 여길 수 있다. 유명 바둑도장에서 ‘몰카’나 ‘추행’ 등이 있었다는 얘기도 한국기원의 행정력이 미치지 않는 사설학원에서 과거에 일부 원생들이 저지른 일탈행위였고 이런 일까지 한국기원이 나서 사과하거나 해명할 사안은 아니라는 시각, 기조를 견지할 수 있다. 자칫 섣불리 선제대응했다가 파장을 가라앉히기는커녕 오히려 덤터기나 쓰지 않을까, 비난을 감수하더라도 사태의 추이를 좀더 보자 고심한 흔적이 감지된다.

여기까지 막연히 미루어 짐작해본 얘기냐고? 그렇다면 소설을 쓰고 있는 거다. 그렇지 않다. 주변 취재를 하고 내린 정황이 이렇다는 거다. 1차 윤리위원회의(4월20일)가 끝나고 이번 사건에 대한 법적 해석을 요약한 내용이 기사게시판에 올랐다. 전문을 입수했고 요약하면 이렇다.

1. 이 사건은 형사, 민사가 성립하지 않는다.
2. 사건의 사실확인 이전 징계는 어렵다.
3. 윤리위원회는 사실을 확인하는 기구다.

1번에 대해선 법리를 따져봐야할 문제이고, 윤리위원회는 2번과 3번에 중점을 두고 사실을 확인하는 절차를 밟을 것이다. 당장 김성룡 9단이 스스로 혐의를 인정하지 않는 이상 시일은 더 걸릴 것이다.

1번에 대해선 법리 공부가 필요해 아는 법조인에게 자문했다.

실제 한 법조인의 말을 빌면 “법리적으로 강간죄는 친고죄이므로 형사고소를 할 수 있는 기간이 6개월이고 민사상 손해배상도 안 날로부터 3년 이내에 해야한다. 알았든 몰랐든 10년이 지나면 소멸시효가 완성된다. 따라서 형사처벌은 공소권 없음으로 처벌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이론상으로는 그런데, 지금 전 분야에 걸처 벌어지고 있는 미투에 대한 국민적, 사회적 시각과 분위기로 미루어 가해자가 역으로 무고나 명예훼손을 하긴 어려울 것이다. 일단 디아나 초단이 폭로로 얻을 이득이 없고 단지 내부게시판에 억울하다 호소한 차원이었다. 더군다나 구체적인 정황증거와 증인이 있다하니 무고가 될 순 없을 거다. 명예훼손을 생각할 순 있겠지만 사회적 이슈가 워낙 큰 사건이라 가해자가 고소하는 순간 조사가 이뤄지고 사실을 따지게 될 것이므로 이 역시 부담이 커 못할 거다. 나라면 그렇게 조언하겠다”는 견해를 들려줬다.

또 한명의 법조인도 “현행법상 미투는 엄밀히 따지면 불법이다. 사실을 얘기한다 해도 증거가 없다면 역으로 명예훼손을 당할 우려가 있는 건 맞다. 그렇기 때문에 미투의 경우 이러한 역피해를 없애겠다고 형법조항 개정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이게 사회적 분위기다”고 말한다.

▲ 바둑계의 '미투',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김성룡 9단의 쓰나미급 '성폭행 의혹' 사건이 밀어닥친 가운데 크고작은 추문들이 떠돌고 있어 바둑계를 바짝 긴장시키고 있다.


2. 설령 한국기원의 입장을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현 한국기원의 직제에 윤리위원회라는 조직은 없다. 징계를 논의한다면 운영위원회에서 징계 여부를 판단해 이사회로 올려 결정하는 절차를 밟아야할 것이다. 이번 윤리위원회는 한국기원의 상임이사회 격인 운영위원회에서 미투 사안의 심각성을 고려해 만든 임시 조직이다. 그런데 가해자가 잠적한 상태에서 어떻게 소명을 받을 수 있나. 이런 상황에서 ‘2.사실확인을 하기 이전에 징계하기 어렵다’는 입장은 미온적인 대처로 비춰져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다.

피해자의 일방 말만으로 조사를 진행하기엔 난처할 테지만 이처럼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사건, 무엇보다 바둑계가 입을 타격을 생각하면 자정차원에서라도 협회는 신속하게, 강력하게 대처하는 모습을 보여야 했다. 김9단의 대리인인 변호사에게라도 즉각 소명하지 않으면 포기한 걸로 간주하고 징계절차를 진행하겠다고 진작 통고했어야 했다. 현직 검사가 윤리위 위원장이므로 법리나 절차에 만전을 기해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자는 취지를 이해 못할 바 아니다. 그렇지만 지금 이게 보통 사태인가. 속된 말로 ‘안전빵’의 보수적인 행마로 일관할 때가 아니지 않나.

진위도 가려지지 않았는데 곧장 ‘기사직 제명’ 같은 중징계를 하라는 게 아니다. 학계나 스포츠계 같은 분야처럼 미투 관련사건에 대해서는 신속히 ‘직무정지’ 같은 조치를 취한 뒤 후속절차를 밟으면 된다. 이 정도의 조치조차 후일 ‘문제’될 것이 염려스러워 주저한 걸까.

바둑도 이젠 스포츠라니까 대한체육회가 운영하고 있는 스포츠공정위원회 같은 사례도 좀 참고하자. 스포츠공정위원회는 스포츠협회와 지역체육회에서 내린 징계에 불복해 이의신청할 경우 재심의하는 역할이 있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사안에 따라 해당 협회에서 선 징계를 하고 항소심에 해당하는 대한체육회 스포츠공정위원회에서 재심의를 거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놓고 있다. 한국기원처럼 윤리위를 급조해 진상조사를 하고(얼마가 걸릴지) 운영위로 넘겨 심의한 다음 이를 다시 이사회 안건으로 올려 결정해야만 최종 징계가 확정되는 시스템이라면 장기화를 피할 수 없다.

윤리위나 이사회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결정해 발표할 수 있는 사안조차 불투명하게 처리해 불신을 자초하고 있다. 도대체 김성룡 9단은 바둑리그 감독을 자발적으로 사임한 것인지 아니면 소속 팀으로부터 해임을 당한 상태인지, 현재도 한국기원 홍보이사인 건지 아니면 사건이 터지자마자 즉각 해임한 건지, 이런 것조차 발표하지 않는(못하는 건지) 한국기원의 대처능력은 분명 문제가 있다. 이에 대한 소식은 4월23일 기사게시판에 유창혁 총장 명의로 글을 올림으로써 비로소 공개되었고(그것도 프로기사들에게만) 팬들은 24일 중앙일보 기사를 접하고서야 알게 되었다. (아래 링크 기사)

○● 성폭행 의혹 김성룡 9단, 한국기원 홍보이사에서 해임 ☜ 중앙일보 정아람 기자 기사 보기 클릭

그리 대단한 기밀도 아닌데 더 일찍, 투명하게 공개했다면 팬들의 원성을 덜 샀을 것이다. 한국기원의 사태해결 의지를 일단이나마 보여줄만한 조처였는데 내부 프로기사들조차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그제야 기사게시판에 알렸다. 팬들은 안중에도 없다는 겐가. 누구의 판단인지 모르겠으나 외부에 알리지 않기로 한 게 김성룡 9단과 관련한 그 어떤 발표도 공연히 언론의 입길에 오르내릴 뿐 사태를 진정시키는 데 도움이 되지 않고 바둑 이미지만 더 실추시킬까 염려해 그런 것이었다면 이는 노적가리 타고 있는데 낱알이나 줍겠다는 발상이다. 요즘 같은 시절에 참말 모시기 힘든 스폰서를 그나마 잃을까 노심초사하여(한국기원만 이 걱정에 초조해하고 있다 생각지 마시라. 바둑인이라면 누구나 이 걱정한다) 되도록 축소하고 소극적인 대처를 주문했다면 그럴수록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 여론을 진화하기 힘들어질 것이다.

애초 호미로 막지 못한 일이다. 이제 가래로도 막기 힘들게 돼버렸다면 이럴 때일수록 대중이 생각하고 있는 수준보다 한걸음 더 나가는 조처, 대응을 보여야 진정성을 의심받지 않는다. 소나기는 일단 피하고 보자는 심산으로 일관하다간 김성룡 9단처럼 여론의 뭇매를 더 맞을 뿐이다. 궁하면 손빼라는 격언은 바둑판 위에서나 소용되는 말이다. 이럴 때일수록 주변의 얘기를 더 들어야한다. 앞서 쓴 취재수첩 글에서 공연히 애먼 한국기원 참모급(실장)들의 인적구성을 들먹이고 의사결정 과정을 염려한 것이 아니다. 바둑은 모든 걸 혼자 결정하고 책임질 수 있지만 행정은 한 사람의 힘으로 결코 이끌어나갈 수 없다.

▲ 초유의 사태에 바둑계는 괴롭다. 충격에 휩싸인 한국기원은 윤리위원회를 급히 만들어 수습에 나섰으나 바둑팬들의 들끓는 여론을 잠재우지 못하고 있다.


3. 윤리위원회에 대해서.

기왕 얘기하는 김에 윤리위원회의 인적구성에 대해서도 한마디 하고 넘어가자. 위원장인 임무영 검사 한명을 제외하고는 프로기사가 몇 명 참여했건 한국기원 직원 몇 명이 포함됐건 어쨌든 모두 한 가족이나 다름없는 내부인들로 구성했다(처음 발족할 당시는 유창혁 사무총장을 비롯해 프로기사 4명, 한국기원 실무진 3명을 인선했으나 이들 중 운영위에 소속된 기사는 나중 징계를 논의할 때 또 같은 사안을 마주하게 되므로 공명성을 최대한 담보하기 위해 모두 빠지고 다른 기사로 교체하기로 결정했다 한다). 그리고 이들 중 주로 여성이 미투를 제보하고 있는 현실을 참작해 한국기원 사무국 여자직원 한명과 프로기사 회장을 제보 창구로 정해 전 기사들에게 통지했다.

그럴 수 있다. 그런데 바둑계처럼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공간에서 활동할 수밖에 없는 분야일수록 좀더 신경 써야하지 않을까. 미투를 망설이는 사람이 가장 두려워하는 지점이 어딜까. 비밀보장일 것이다. 신원이 드러나는 순간 바둑계를 떠나지 않는 한 평생 살아야하는 좁은 동네에서 견디기란 쉽지 않다. 2차 피해도 매우 걱정스럽다. 이런 점을 헤아린다면 한식구나 다를 바 없는 동료기사, 사무국 직원에게 감추고 싶은 비밀을 털어놓으라고? 아무리 비밀을 지켜준다 광고해도 내부인들끼리는 언젠가 돌게 돼있다. 이런 시스템에서는 제보하지 말라는 얘기나 다름없다.

언론에 보도된 몇가지 사례를 들어보겠다.

- 고용노동부는 홈페이지에 직장 내 성희롱 익명 신고시스템을 개설·운영해 피해자 신분 노출 없이 소속 사업장에 대한 예방 차원의 지도 감독을 실시할 수 있도록 한다.

- 문화체육관광부는 문화예술분야 성희롱·성폭력 사건 진상규명을 위해 특별조사단과 특별신고·상담센터를 100일 동안 운영한다. 특별조사단은 실태조사를 통한 피해자 구제와 문제점 파악, 가해자 수사 의뢰, 2차 피해 방지 등을 수행하며, 특별신고·상담센터는 피해자 상담부터 신고, 민·형사 소송 지원, 치유·회복프로그램 등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한다.

- 보건복지부는 간호협회 인권센터와 의사협회 신고센터를 통해 의사 선후배 간, 의사·간호사 간의 성희롱·성폭력 신고접수를 활성화한다. 올해 안에 전공의법을 개정해 전공의 성폭력 예방·대응 의무규정을 마련하고, 진료 관련 성범죄 외 의료인 간 성폭력에 대해서도 제재를 강화한다.

한국기원의 형편에 정부부처처럼 체계적이고 대규모로 시행할 순 없을 터. 그렇다면 대한체육회에서는 어떻게 미투에 대처하고 있는지 한번 참고해 보라. 홈페이지에 클린센터 메뉴를 상설했다. 마우스 클릭 몇 번이면 알 수 있는 사례들이다.

▲ 대한체육회 홈페이에 개설한 클린센터 페이지. 승부조작 신고나 체육계 비위뿐 아니라 성폭력 등에 대해 상시 접수한다. 한국기원 홈페이지에도 이런 제보 공간을 마련해야할 때가 아닌지.


▲ 문화예술계는 미투 제보를 어떤 식으로 받고 있는지 참고해볼 필요 있다.


4월17일 한국기원은 이런 목적으로 윤리위원회를 구성해 이미 드러난 미투와 제보에 대처하겠다고 발표했다.
<‘미투’ 관련 의혹에 대한 사실 관계를 확인하고 2차 피해의 최소화에도 힘을 기울일 계획이다. 아울러 윤리위원회는 드러나지 않은 ‘미투’ 관련 사례를 조사해 사회적 약자인 여성에 대한 안전망 구축과 재발 방지책을 적극 강구해 나갈 방침이다.>

지금 표면 위로 떠오르지 않아 그렇지 바둑도장에서 벌어진 일탈행위에 대한 추문이 한두 개가 아니다. 제발 낭설이길 바라지만 사실일 경우 쉬쉬 덮을 게 아니라 차제에 진상을 밝혀 엄벌하고 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피해자가 신상노출을 걱정하지 않고 제보할 수 있도록 안심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당장 마련할 계제가 못된다면 외부 여성인권단체의 힘을 빌리거나 여성변호사를 선임하여 아예 한국기원이 아닌 그쪽과 접촉해 상담하게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한국기원 윤리위에서는 가해상황을 전달받아 함께 진상조사를 진행하는 일에 매진하면 된다. 이때도 가급적 피해자의 신원이 드러나는 걸 막기 위해 최소한의 인원이 담당하도록 하고, 이럴 때 최소한의 신원노출은 불가피할 것인데 이러한 상황 때문에라도 내부 동료기사나 직원으로 윤리위를 채우기보다는 외부인으로 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만약 이러한 배려 없이 힘들게 용기를 낸 미투운동이 위축되고 불씨를 안은 채 봉합되어버린다면, 그리하여 (재수없게 드러났다고 생각할지도 모를) 일부 가해자만 처벌 받는 결과로 종결된다면 제2, 제3의 미투가 또 벌어질 것이다. 일찍이 어느 한 도장에서 여자원생들이 몰카를 발견하고 기겁하여 수차례 항의했을 때, 또 어떤 도장에서 사범이 어린 원생에게 적절치 않은 짓을 했을 때 책임자들이 당장의 이미지 손실을 감수하고서라도 크게 경종을 울렸더라면 다들 정신이 화들짝 들었을 거다. 이 지경에까지 이르러 공멸을 걱정하는 처지가 되지는 않았을 거다.

이미 지나간 때를 얘기하는 게 아니다. 지금 이 순간 또한 이전과 다를 바 없는 순간에 직면해 있다. 모 여자기사가 처음 미투글을 올렸을 때라도 한국기원이 심상치 않은 조짐을 읽고 “지난날을 반성하고 겸허한 마음으로 삼가고 또 삼가겠다. 바둑계는 앞으로 이러저러한 기구를 만들어 이러저러한 자정노력을 부단히 할 것이며 차제에 철저한 진상조사를 펼쳐 밝혀지는 죄의 정도에 따라 일벌백계하겠다”는 식의 선제대응, 성명서 발표 같은 액션을 취했더라면 이토록 수습불가 사태에 직면했겠는가.

그렇게 잘났으면 진작 얘기하지 그동안 뭐하다 이제 와 불만이나 풀어놓으며 한국기원 탓만 하냐고 나무라시면 터진 입이니 할말은 있다. 글장이는 글로 말을 하면 된다. 그렇지만 자고 나면 얼굴을 마주하고 사는 폐쇄된 동네에서는 글로 말을 하면, 또 왜 말로 먼저 하지 불쑥 글로써 비난을 일삼느냐고 힐난한다. 그래서 하는 변명이다. 시답잖은 의견일진 모르나 여태까지 풀어놓은 얘기들은 여러 경로로 전달했었고,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안다. 시답잖은 의견이어서 그랬을 거니까 안타깝기는 했으되 섭섭해 하지는 않았다. 서 있는 위치가 다르면 바라보는 지점도 다른 거니까.

바둑인의 한 사람으로서 이 글을 쓴다고 이실직고했다. 바둑인의 한 사람으로서 솔직히 무척 쫄고 있다. 디아나 초단 같은 불미스런 사건이 불쑥 하나라도 더 터지는 날에는 어찌될 것인가. 바둑팬들의 눈총이 따갑기 이를 데 없고 알파고로 국민에게 환대받던 바둑이 졸지에 음습한 이미지로 전락하지나 않을지, 그런데도 한국기원은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 들어앉은 조정 같기만하다. 윤리위를 구성했다면서 구성원조차도 밝히지 않는다. 불투명하면 신뢰를 하지 않는 법이다. 그 작은 성에 들어앉아 무슨 논의들을 하는지. 밖은 꽃피는 봄이되 봄 같기는커녕 북풍한설 몰아치는 혹한의 여론이 거세게 휘몰아치는데 말이다.

4. 김성룡 9단에게.

하소연하고 싶은 게 많을 터. 나도 ‘김성룡 9단에게’라고 써놓고 이 새벽까지 수없는 문장을 썼다가 지우길 수십 차례. 거두절미, 이 상황에 무슨 긴말이 필요하리. 다른 건 다 차치하고서라도 ‘불륜남까지는 감수하겠는데 아이들에게 강간범 아빠로 남는 것만큼은 피하고 싶은 마음’이 가장 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인정을 하는 순간 그렇게 굳어질까봐. 그런데 이제는 원상태로 되돌아갈 수 없게 된 국면. “사실과 다르다”고 부인하고 나서거나 아니면 깨끗이 인정하고 머리 숙여 사과하거나. 김9단의 모든 것이었던 바둑과 바둑계, 사랑해 주었던 바둑팬과 한국기원을 생각한다면.

처음 폭로글을 접했을 때 바둑애호가인 한 법조인에게 전화를 걸었다지. 그때 그 분이 건넸다는 조언 지금이야말로 고려할 때가 아닌지. 첫째, 프로기사직부터 사퇴할 것. 둘째 무조건 사과할 것. 셋째, 이후의 모든 처신과 결정은 일반 예상보다 한걸음 더 나갈 것.

버려라 그리하면 이긴다.
우리가 많이 들었던 우칭위엔 선생의 격언, 지금이야말로 벼랑 끝에서도 한걸음 더 나갈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할 때. 한국기원이나 김9단이나 오로나 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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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다리|2018-05-05 오후 7:01:00|동감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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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감과떨감|2018-04-30 오후 3:49:00|동감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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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too 운동은 계속되어야 한다. 바둑계도 예외 없음! 초창기엔 문재인 지지자들 중에 연극계 이윤택이 문재인 40년 지기고 대통령 찬조연설했던 사람이라고 한번만 봐주자는 미친 말도 몇 나왔지만 네티즌들의 반발 항의와 무려 20만 명 넘은 청와대 청원으로 이윤택은 결국 구속되어 거짓 진술을 하고 있음, 베를린 영화제 최고상 딴 김기덕 감독은 지금 해외 도피 중인 듯. 이윤택과 김기덕은 상습적이라 최고로 악질 케이스임. 김성룡 기사는 나도 좋아했는데 합의하에 했다고 하니 두고봐야 하겠지만 이런 건 대개 여자 말이 맞는 경우가 좀 많다. 오늘 나온 뉴스 보니 그 여성 기사가 본인이 아직 그 상처가 괴롭다고 했는 것 같은데..... 하여간 미투 운동에는 예외가 없어야 한다. me too 는 우리 한국 사회가 발전하고 있다는 증거다.
reply gla8755 글쓴이 삭제
그리되는걸|2018-04-27 오후 3:24:00|동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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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나. 한국기원이나 기사쓰는 기자나..댓글다는 기호자들이나...이제는 바둑이 싫어진다.
죄 지은놈을 두고 무슨 바둑돌 하나 잘못둔거 어찌 해결할까 고민하는 모양새들이다.
세상사는 세상사고.바둑판은 바둑판이다. 세상사를 바둑판 돌두듯이 꼼수 부리지 말아라.
tlsadd|2018-04-27 오후 2:29:00|동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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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에 기자랍시고 나를 벗겨봐 따위나 기사 제목으로 뽑아대는 당신들 수준이나 먼저 반성해
라.
tlsadd|2018-04-27 오후 2:22:00|동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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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기원 까는 도구로 미투를 이용하지 말그라.
한국기원 시절에도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었다.
어차피 그나물에 그밥이다. 청산대상인 적폐덩어리들.
이럴려go|2018-04-27 오후 12:52:00|동감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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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이렇게 쓰신 것을 보면 김성룡 9단이 머리숙여 사과할 땐 훌륭하다! 인성이 되었다! 용
기가 대단하다며 찬양하시겠어요.
이럴려go|2018-04-27 오후 12:51:00|동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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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님은 피해자가 성폭행 사실을 폭로해서 그 가해자를 처벌하는 모든 과정을 이기고 지는
게임으로 이해하고 계신가요? 그런건가요?
이럴려go|2018-04-27 오후 12:10:00|동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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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한국기원에 가서 직접 얘기하지 왜 뉴스게시판에 게시했는지 의문이 드는 글입니다. 오
로는 피해자의 입장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겠네요.
大竹英雄|2018-04-27 오후 1:33:00|동감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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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게시판 마지막 글로 김성룡프로님과 유창혁선배님께 - 오로사이트에 오셔서 글을 보시는지 아닌지는 모르겟지만. 전 김성룡프로님 하고 유창혁선배님께 개인적 사적 원한은 없습니다. 유창혁사무총장님 예상한대로 잘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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