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읽는 초읽기, 누가 둘 차례냐고 물어보는 계시원
[취재수첩]
  • 정용진|2018-09-11 오후 0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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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시원의 미숙한 초읽기로 구설에 오른 지지옥션배 최명훈 9단 대 오유진 6단의 대결. 생방송 중임에도 최명훈 9단이 계시원에게 제대로 초를 읽을 것을 요구하는 모습이 잡혔다. 바둑TV는 이 사건으로 사과방송까지 했으나 불과 엿새 후 시니어리그에서 또 계시원 문제가 불거졌다.

패장은 유구무언이라 했다.
사이버오로는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11일 시니어바둑리그 13라운드에서 KH에너지에게 2-1로 지면서 삼척해상케이블카와의 마지막 라운드 승패에 관계없이 올 시즌을 마감했다. 패자의 처지에서, 운이 따랐건 따르지 않았건 끝난 승부에 그 어떤 말을 해본들 변명에 불과하다는 핀잔이나 들을 터이다. 하지만 비록 버스 떠난 뒤지만, 우리가 다음을 기약하기 위해 복기를 하듯이 이것 하나만큼은 지적하고 시즌을 접더라도 접어야겠다. 사이버오로 팀의 단장으로서 항의 한마디쯤 할 수 있는 처지 아닌가.

계시원의 초읽기 사고. 그것도 빈번한! 어쩌다 한번이 아니라 연이어 터지는 사고라면 일회성 해프닝이라고 할 수 없다. 준비부족으로 초래한 사고다! 이건 바둑경기에 대한 존중, 마인드에 관한 문제다.

'누가 둘 차례죠?'
그 옛날 일본 명인전에서 조치훈 9단이 계시원에 물은 말이 아닙니다!


9월11일 한국기원 바둑TV스튜디오에서 벌어진 사고의 전말은 이렇다.
사이버오로는 남은 두 경기, 13라운드 KH에너지와 삼척해상케이블카 두 팀을 3-0으로 연파하면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수 있는 희망이 살아있었다. 삼척은 전패를 당하고 있는 최하위 팀이라 KH에너지만 3-0으로 잡는다면 기적이 일어나지 말란 법도 없다. 하늘이 도우려는지 경기상황도 좋았다. 주장 서능욱 9단이 일찌감치 강훈 9단을 꺾어 1승을 올린 시점에서 정대상 9단이 중반에 힘을 내 조치훈 9단에 필승지세를 구축하고 있었다. 이랬기에 박영찬 5단의 손에 운명이 달린 형국이었다. 장수영 9단과 치열한 난타전을 펼치고는 있었으나 괜찮은 국면이었다. 게다가 중반에서 종반으로 넘어가는 무렵 장수영 9단은 초읽기에 몰린 상황이었고 박영찬 5단은 무려 10분이나 시간이 남아있었다. 그런데 선수(박영찬)의 표현 그대로 옮기자면, “마가 끼었는지...재수가 없으려니 별일을 다 당하고 마는” 사태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 초읽기 문제로 구설에 오른 시니어리그 장수영 9단(승) : 박영찬 5단 대국.


장수영 9단이 둘 차례에서 계시원이 30초가 지나도 초읽기를 부르지 않는다. 40초 5회가 지나면 시간패다. 마지막 초읽기 상황에서 1분이 지나도, 2분이 지나도 박영찬 5단의 제한시간만 흘러가고 있자 처음엔 조용한 목소리로 선수가 계시원에게 항의했다. 왜 초읽기를 안하냐고. 그런데도 알아듣지 못한다. 그러다 또 두 번째가 되자 목소리 톤이 올라갔고 세 번째는 거칠어졌다. 그 소리를 듣고 심판이 부랴부랴 달려와 상황을 파악했고 수습에 나섰다. 그런 식으로 박영찬 5단이 날려버린 시간이 10분쯤(선수 주장) 될 것이라는데, 시간증발이 문제가 아니라 정작 심적 페이스를 잃어버린 것이 문제. 여기서 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 초읽기 상황이 되자 계시원이 선수에게 묻는다. “누가 둘 차례죠?”

시니어리그 대국은 40초 바둑이다. 가뜩이나 나이가 있어 덜컥수가 잦은데 초읽기에 몰리면 정신 못차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 탓에 “시니어바둑은 끝까지 가봐야 안다”는 웃자고 하는 소리에 웃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집중력을 최대한 가동해도 될 둥 말 둥한 순간에 계시원이 이런 식으로 불쑥 개입한다. 선수도 아닌 계시원이 “누가 둘 차례냐”고 묻는 상황, 코미디가 아니라 이쯤되면 비극이다. 결국 이 바둑은 박영찬 5단이 졌다. 선수가 심판에게 곧장 항의하지 않고 계시원에게만 자꾸 지적질했냐 그 허물을 묻는다면 그녀 때문에 졌다한들 할말이 없다. “가뜩이나 바둑에 정신이 없는데 그 순간 심판까지 부를 정황이 어딨느냐...” 박영찬 5단의 말이다.

이왕 시니어리그를 마감하면서 꺼낸 말이니 하나 더 고자질(?) 하자.
6월11일 상주 명실상감한우와 경기 때 서봉수 9단과 정대상 9단이 맞섰다. 이때 서봉수 9단의 주머니에서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 휴대폰 반납을 깜빡 잊고 바지주머니에 넣은 채 대국에 임한 것이다. 당황한 서봉수 9단이 황급히 일어나 휴대폰을 귀에 갖다대며 서둘러 대국장 밖으로 걸어나가려 하자 누군(심판이었던)가 두고 나가야한다고 일러주었다. 화장실을 가거나 대국장을 벗어날 때는 착수 후 일어나야하는 게 규정이다. 이것을 따지기 이전에 휴대폰을 소지하는 자체로 실격패다. 인공지능 출현 이후 이게 규정이다. 그런데 심판은 경고로 넘어갔다. 이만한 걸로 어떻게 서명인의 대국(더군다나 생방송 중인 대국)을 실격처리하느냐는 온정주의가 작용했다면, 바둑은 스포츠 종목인가? 아니면 ‘동네바둑’이냐고 짓궂게 묻고 싶어진다.

▲ 계시원은 부심이 아니라 오히려 경기를 내내 이끌어가는 주심의 위치일지도.


바둑두랴 계시원 코치하랴, 선수가 계시원까지 가르치는 방송대국

‘동네바둑’이란 표현에 열 받는가? 실수도 어쩌다 걸러 할 때 실수라고 덮어줄만한 거다. 멀리서 찾을 거도 없다. 딱 6일전, 최명훈 9단과 오유진 6단의 지지옥션배에서도 초읽기 사고가 있어 시끄러웠다. 오죽했으면 최명훈 9단이 한국기원에 공식항의까지 했겠는가.

그날 대국은 최명훈 9단이 초반 대마를 잡아 무척 좋았다. 갈 길이 바쁜 신사팀으로선 젊은피인 최9단이 최대한 버텨주어야할 형국이었다. 그런데 바둑판 안에서가 아니라 밖에서 변수가 생겨버렸다. 처음엔 초읽기를 하나부터 열까지의 순으로 부르지 않고 “오...사...삼...이...” 이렇게 거꾸로 하니까 최명훈 9단이 깜짝 놀라서 급하게 착수를 한 뒤 계시원을 째려봤다. 그랬더니 그 다음에는 “일...이...삼...” 이렇게 익숙지 않은 소리로 카운팅해 또 쳐다보니까 황급히 “다섯...여섯...”으로 바꾸어 초를 불렀다. 이런 식으로 계속 신경을 쓰이게 하더니 클라이맥스는, 최명훈 9단이 둘 차례에서 초읽기를 안 부르다가 5초 남았을 때 갑자기 다섯부터 불러대기 시작했고 이때 최9단은 생방송중임에도 불구하고 소리를 내어 불평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면 안돼요. 무조건 30초부터...지나쳤어도 30초부터 해야 된다고...갑자기 다섯, 여섯이 들어오면 어떡하라는 거야?”

선수가 대국 중에 계시원을 가르치는 풍경, 어떻게 보시는가? 이 바둑 역시 ‘일인이역(?)’을 한 최명훈 9단이 졌다. 이 일로 바둑TV는 다음 방송 때 한해원 진행자가 오프닝멘트를 통해 시청자에게 사과까지 해야했다.

“지난주 월요일 지난 생방송 때 본선 16국이었는데요. 최명훈 9단과 오유진 6단의 대결에서 약간의 초읽기 실수가 있었습니다. 네, 이것 때문에 시청에 불편하셨던 점 사과드립니다. 다시는 이같은 일이 없도록 더욱더 바둑TV가 노력하겠습니다.'

‘약간의 실수’라고 둘러댔는데, 이 약간의 실수는 불과 엿새 뒤 시니어리그에서 또 재연되었다. 이 약간의 실수는 비단 여기 든 사례뿐만 아니다. KB바둑리그에서도 그렇고 왕왕 벌어지고 있다. 어떤 기사는 바둑을 두다가 나오면서 이런 말을 건네기도 했다. “계시원이 초읽을 때가 된 거 같은데 읽지를 않아요. 휴대폰을 보는 거 같아요.” 선수들은 휴대폰을 소지하고 대국장에 들어갈 수 없는데 계시원들은 갖고 들어간다. 선수도 심판도 아니기 때문이라면 계시원이 경기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된다. 그런가? 바둑TV가 생기면서 계시원을 선정하는 중점을 어디에 두고 있는가? 그들은 출연자인가? 아니면 방송 스태프인가?

▲ 종국 후 인터뷰. 최명훈 9단의 이 표정에서 우리는 무엇을 읽어야할까.


바둑의 계시원은 종합격투기의 라운드 걸 같은 존재가 아니다. 바둑의 계시원은 어떤 면에서 멀찍이 떨어져 대국을 지켜보는 심판보다 더 경기에 관여하는 존재다. 그렇기에 용모단정한 사람이면 아무나 오케이 해서는 곤란하다. ‘단수’조차 모르는 바둑의 문외한이더라도 바둑경기의 흐름을 이해하고 보조를 맞출 수 있는 ‘숙련된’ 지식과 기술을 겸비하도록 훈련시켜야 한다. 이 과정을 담당하는 부서는 한국기원 바둑TV PD인가, 기전사업팀 직원인가? 바둑경기가 어느 시점 기전을 위한 대국이 아니라 방송을 위한 대국이 된 무렵부터 모호해진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바둑기자를 뽑을 때 바둑을 반드시 잘 두는 사람을 뽑는 건 아니다. 그러나 전혀 이해하지도 못하는 사람을 뽑을 순 없다. 계시원도 마찬가지다. 어느 순간 바둑방송에서 기보를 적는 (주로)남자기록원 자리도 치워버렸다. (주로)여자계시원에 견주면 ‘그림’이 안나와서일 것이다. 아래 일본기원의 도전기 사진을 보면 기록자와 계시원은 여전히 필수 대국요원이다. 방송은 방송대로 사정이 있어 그리하는지 모르겠지만(한때는 돌가리기조차 흥미로운 세리머니로 보지 않고 아무도 안보는 대기실에서 미리 가리게 했으니) 기록자와 계시원을 경기의 한 요소로 본다면 ‘그림’을 따지기에 앞서 경기력을 우선시하는 선택을 했을 것이다. 지금 한국바둑은 어떠한가. 바둑방송이 우선인가, 경기(대국)가 우선인가?

주가 뭔지, 기본을 잃고서야 어떻게 ‘빅픽처(Big Picture)’를 그릴 수 있겠는가.

초읽기 관련기사 2탄 ○● 또 터진 초읽기 사고...어이할꼬~ ☜ 클릭

▲ 기록자와 계시원의 자리가 분명하다. 지금은 점심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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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9ALO2|2018-11-25 오전 5:47:00|동감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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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주관이 한국기원인가? 주관료를 어떻게 챙기기에 계시원 수준이 이 모양일까?
설마 열정페이?
대회 책정 예산때문이라면 차라리 규정을 바꿔 선수가 계시기를 누르게 하던가.. 계시원을 쓰려면 적정한 수당을 지급함이 새 정부의 근로 정책에도 부합한다.
이제 홍송유가 물러갔으니 새 비대위가 잘못된 건 바로 잡아줍시다.
계시원도 일정 자격과 교육.. 경기 시작1시간 전 규칙확인 절차.. 등 내규도 정비하시고..
자객행|2018-09-12 오후 6:52:00|동감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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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을 잃고서야 어떻게 ‘빅픽처(Big Picture)’를 그릴 수 있겠는가.

이 맨트 기원 총책임자가 그린다는 큰 그림 그걸 거론하는 말 맞죠 ?
백보궁|2018-09-12 오후 6:31:00|동감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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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원이 누가 둘 차례죠? 묻다니 이런 황당한 일이 있나?
고개 숙이고 있는걸 보니 휴대폰 들여다 보고 있는갑네.
잠깐 본다고 하다 정신없이 시간 흘러갓네.
요즈음의 한국기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듯..
해안소년|2018-09-12 오후 5:52:00|동감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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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원이 졸거나 한눈 파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계시원 감시원을 배치하여 수시로 다가가서
손바닥으로 등을 사정없이 한대씩 가격하면
이 문제는 재발되지 않는다.

어떤 계시원은 맞아서 멍이 드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등에 보호대를 착용할지도
모른다.
자객행|2018-09-12 오후 5:46:00|동감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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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룰은 누구에게나 공정해야 한다. 이 기사는 한국기원이 주도하는 바둑이 아직은 스포츠의 격에 들어가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reply 자객행 다시 찬찬히 읽어보니 기막히고 웃기고 그러네요^^
2018-09-12 오후 5:47:00
꺼삐딴리|2018-09-12 오후 4:50:00|동감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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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읽기를 거꾸로하고,, 일이삼이라 부르고,, 누구차례냐 묻고~~!!! 도대체 밥은 왜 쳐먹고 다
니는지~~정말 하지말아야할 실수를 보고 너무나 한심해서 말문이 막힌다..
reply 자객행 카운터 있잖아요. 인공위성 쏠때 그거보고 해봤나본데 피디 이런 넘들이 웃기는 거죠^^
2018-09-12 오후 5:41:00
원술랑|2018-09-12 오후 4:46:00|동감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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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정문일침이 필요하다. 정신줄 놓은 계시원 때문에 다 이긴 바둑을 그르쳤다고 말하기는 다소 어폐가 있지만 대국자에게 심리적으로 안 좋은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다. 계시원은 대국자들을 가장 지근거리에서 盤外를 진두지휘하는 막중한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앞으로는 초읽기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좀 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주기를 바란다. 작금 한국기원이 자행하고 있는 바둑 토토 재추진도 죽비로 세게 내려쳐 주길 간곡히 부탁한다!
大竹英雄|2018-09-12 오후 4:04:00|동감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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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꾸로 가는 한국바둑이라. 신문기전은 이미 모두 다 사라졌고, 국민들도 김성룡을 보고 바둑에 대해 인식을 새롭게 하고 있는데. 정용진 기자님의 꺼꾸로 Time 논평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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