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미레 신드롬을 보며
[칼럼]
  • 오현세 작가 |2019-03-04 오후 03:45
  • 페이스북
  • 트위터
  • 이메일
  • 카카오스토리
  • 구글+
▲ 일본 소녀기사 나카무라 스미레 양.

스미레라는 일본 소녀기사가 연일 화제입니다. 2009년생이니 이제 만 10살인데 올 4월부터 일본바둑사상 최연소 프로기사가 됩니다. 일본은 가히 스미레 열풍입니다. 일본기계와 매스컴들이 스미레 띄우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느낌입니다.

일본에서는 장쉬, 이야마 유타와 우리나라에서는 조훈현, 최정과 지도대국을 주선했고 곧 헤이자자와도 바둑을 둔다는군요. 깜찍한 외모뿐 아니라 톱 프로들과 지도대국에서 보여준 당당한 모습에 저도 찬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뒷맛이 개운치 않습니다.

아이짱이라는 일본의 탁구선수를 기억하시는지요. 1994년 6살짜리 여자 아이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한국의 김택수선수와 시범게임을 가졌습니다. 게임이라기보다 김택수선수가 랠리를 해 준 것이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아이짱의 깜찍한 모습에 환호했던 기억이 납니다. 후쿠아라 아이가 본명인 아이짱은 1988년 생입니다. 유명한 탁구선수였던 엄마의 영향을 받아 3살때부터 탁구 라켓을 잡았습니다.

이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6년간 주니어대회를 석권하고 11세 7개월 나이에 일본 국가대표가 됩니다. 아이짱의 인기는 아이돌이 무색할 정도였습니다. 12세 때 이미 아이짱을 주인공으로 하는 비디오 게임이 두 개나 출시됐고 13세때에는 타임지가 “아시아 최고의 재능인”에 아이짱을 선정했습니다. 아테네 올림픽, 베이징 올림픽에 연속 일본 선수단 기수로 입장했고 16세 때는 일중우호 60주년 기념식에 중국의 배우 성룡과 함께 특별출연자로 초대 받았으며 19세 때는 중국의 후진타오 주석 방일 때 함께 탁구를 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반외 활동뿐 아니라 선수로서의 활약도 대단해 런던올림픽(23세)에서 여자단체전 은메달, 리우 올림픽(27세)에서 여자 단체전 동메달, 개인전 4위의 빼어난 성적을 거두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탁구에서 중국선수들과 겨뤄 이런 성적을 냈다는 것은 정말 대단했지요. 일본 청소년들이 가장 좋아하는 운동선수로 뽑혔던 아이짱은 27살 되던 해 대만 출신 탁구선수와 결혼해 이듬해 딸을 낳고 2018년 10월 만 29살의 나이로 은퇴를 밝혔습니다. 은퇴 후에도 각종 연예프로에 단골로 출연하며 여전히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아이짱은 그렇게 탁구계를 떠났습니다. 그러나 아이짱 덕에 일본 탁구가 변했습니다. 많은 아이들이 아이짱처럼 되겠다고 다투어 탁구라켓을 잡았습니다. 그러면서 한때 세계를 풍미했으나 30여년간 침체되어 있던 일본 탁구가 되살아 났습니다. 그 대표적인 선수들이 이토 미마(여)와 하리마오 코모카츠(남)입니다.

2000년생인 이토 미마는 13세때 독일 오픈 여자복식에서 우승하며 ITTF월드투어 사상 최연소 복식 챔피언에 오릅니다. 14세 때는 독일오픈에서 중국과 독일의 쟁쟁한 선수들을 물리치고 우승하며 세계랭킹 10위권에 진입(9위)함과 동시에 올림픽 국가 대표로 선발됩니다.이토 미마는 15세때 참가한 리우 올림픽에서 여자단체전 동메달을 차지합니다. 이는 올림픽 최연소 메달 기록입니다. 그러다 마침내 작년 11월 스웨덴 오픈에서 세계랭킹 6위 딩닝, 세계랭킹 2위 류쉬웬, 세계랭킹 1위 주율링(모두 중국선수)을 연파하고 우승합니다. 탁구계가 발칵 뒤집어졌죠.

하리모토 토모카츠는 2003년 생으로 이제 15살입니다. 작년 인천오픈에서 한 점을 딸 때마다 괴성을 지르며 방방 뛰던 선수가 떠오를 것입니다. 바로 그 선수입니다. 하리모토는 부모가 모두 중국 탁구선수로 본명은 장지헤입니다. 아버지는 중국국가대표까지 지냈습니다. 2014년 일본국적으로 바꾸며 이름도 바꾼 하리모토는 이토 미마처럼 초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주니어 대회를 휩쓸더니 작년에 폭발적인 기량을 과시하기 시작했습니다. 연 초 중국오픈에서 전 세계랭킹 1위 장지커를 4:0으로 물리쳐 중국인들의 혼을 빼더니 4월에는 현 세계랭킹 1위 판젠동까지 격파했습니다. 그러다 12월 인천에서 열린 그랜드파이널에서 역대 최연소 챔피언인 15세 172일의 나이로 우승했습니다. 금년 1월에 발표된 세계랭킹에 그를 당당 3위에 올라 있습니다.

일본은 2020년 일본에서 열리는 올림픽에서 남녀탁구 종목에서 금메달을 따겠다고 공언하고 있습니다. 지난 30년간 어느 누구도 중국에 맞서 이런 자신감을 보인 나라는 없었습니다. 중국도 이토 미마와 하리모토를 자신의 최대 난적으로 인정하고 훈련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제 스미레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탁구 이야기를 꺼낸 이유를 짐작하셨으리라 생각됩니다. 1952년 뭄바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사토 히로시가 남자단식챔피언에 오른 이래 20년간 일본은 남녀 세계챔피언을 10명이나 배출했습니다. 그런 일본 탁구가 1979년 오노 세이지를 마지막으로 무대에서 사라졌습니다. 한때 한국도 일본 탁구를 우습게 여길 정도로 치욕의 세월을 거쳤습니다. 어쩐지 일본 바둑과 흡사하지 않습니까? 아이짱을 내세워 탁구 붐을 일으켜 마침내 중국을 위협하고 있는 모습에서 스미레를 내세워 바둑 마케팅에 전력투구하는 일본기계의 목표가 보이지 않습니까?

한때 올림픽만 열리면 금메달에의 기대로 국민들을 행복하게 만들던 한국탁구는 이제 그런 꿈조차 꾸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재작년 서울 올림픽 탁구 금메달리스트인 유남규선수가 MBC스포츠 어린이 탁구 왕중왕전을 둘러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국제대회 성적도 저조하고, 세계챔피언도 없다 보니 어린이들에게 롤 모델이 될 선수가 없다. 탁구가 언제부터인가 비인기 종목으로 전락해 안타까울 뿐이다.” 오늘날의 한국바둑으로 보면 침체기로 향하던 일본 탁구를 연상시킵니다. 이제 바둑에서 세계대회 우승하는 꿈이 점점 가물가물합니다. 타국 선수들에게 자꾸 지면 바둑팬들이 떨어져 나갑니다. 정말 안타까습니다 이대로 두면 바둑도 탁구 꼴이 날까봐 걱정입니다.

스미레는 앞으로도 계속 화제를 몰로 다닐 것입니다. 나이가 들면서 당연히 실력이 세질 테니 성적도 낼 것이고 일류 프로도 가끔 이길 테고 언젠가는 타이틀도 딸지 모릅니다. 그럴 때마다 일본 매스컴은 난리가 날 것입니다. 그런 스미레를 보면서 일본의 아이들이 바둑돌을 잡을 것이고 그들이 10년, 20년 후에 탁구의 이토 미마나 하리마오처럼 세계 정상을 놓고 다툴 것입니다. 그 자리에 한국 바둑이 있을까요? 지금 한국의 영재, 천재들은 입단이라는 관문 앞에 엎드려 머리를 싸매고 있는데 그런 꿈을 꿀 수 있을까요? 눈 앞이 캄캄합니다.

▲ 헤이자자 7단와 스미레의 의 대국에 일본 매체의 관심이 쏠렸다.


프로는 실력 있는 자가 되는 것이 마땅합니다. 문제는 그 시기입니다.

개인적으로 누가 될 지 모르겠습니다만 도은교 프로의 경우를 예로 들겠습니다. 도은교씨는 32세 7개월의 나이로 프로가 되었습니다. 가히 인간 승리의 표본입니다. 도은교 프로의 입단 기사를 보며 진심으로 축하했습니다. 그런데 기쁘지만은 않았습니다. 도프로는 12세에 세계여자아마바둑대회에서 우승하고 아마여자국수 자리도 차지한 천재였습니다. 아마여류국수는 15세인 중3때 다시 한번 올랐습니다.

그런데도 입단대회를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공부를 원하는 부모님의 뜻을 좇아 대학을 나오고 회사를 다녔습니다. 그러나 바둑을 두고 싶다는 그의 목마름은 안정된 사회생활도 바둑실력에 대한 두려움도 막지 못하고 그를 다시 바둑세계로 이끌었습니다. 결국 그는 프로가 되었습니다. 저는 그가 프로가 되었기 때문에 더욱 안타깝습니다. 스미레처럼 10살에 프로가 되었다면 32세의 도은교는 타이틀을 한 주먹 쥔 한국바둑계의 버팀목이 되어 있을 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지금부터라도 그럴 수 있겠지요. 꼭 그러기 바랍니다. 그러나 어찌 보다 일찍 기회가 주어진 것에 비하겠습니까.

여러 사람들이 김은지양 이야기를 합니다. 실력이야 스미레에 꿀릴 것 전혀 없다고들 말합니다. 그런데 스미레는 올해부터 프로기사고 은지양은 4수째 입단준비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 바둑계는 왜 영재, 천재들에게 그렇게 인색한 지 모르겠습니다. 다시 한번 일본탁구 이야기로 끝을 맺으려 합니다.
'누구든지 탁구를 좋아해라, 선수가 되라. 그것이 일본탁구를 도와주는 길이다. 그렇지만 일본탁구협회는 될성싶은 나무만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 나머지는 알아서 진로를 모색해라' 일본 탁구협회장의 말입니다. 이것을 우리 바둑계에서 이렇게 바꿔 말할 수는 없나요?

“누구든지 실력만 있으면 프로기사로 만들어 주겠다. 그리고 성적을 내면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 나머지는 알아서 해라. 프로 세계에서 살아 남지 못하겠다고 판단되면 스스로 떠나라.”
부디 우리 영재, 천재들이 주변 어른들 때문에 늦된 나이까지 프로기사 되기에 목을 매다가 진로를 놓치고 방황하거나 뒤늦게 프로가 되어 성적낼 시기를 놓지는 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뿐입니다.





오현세(71) 작가.
한국 현대바둑 70주년기념 바둑문학상 공모전에서 <인간 발전의 가늠자 바둑>이란 작품으로 수필부문 우수상을 받은 바 있습니다.

※ 이 글은 본 사이트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 페이스북
  • 트위터
  • 이메일
  • 카카오스토리
  • 구글+
목록
댓글쓰기














확인

띄어쓰기 포함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400바이트)
봄가을동화|2019-03-05 오후 8:50:00|동감 0
동감 댓글
공감합니다. 10대 입단자수를 늘리고 각자 능력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가장 좋을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기원은 프로상위기사들의 상금에서 상당부분을 기금으로 걷어서 상금규모가 적더라도 10대 입단자들의 대회를 많이 만들어서 기량향상이 되도록 시스템을 갖추어야 합니다.
윤실수|2019-03-05 오후 5:15:00|동감 1
동감 댓글
이창호는 11세 유창혁은 18세에 입단하였다. 왜 일까? 이창호는 연구생만이 출전이 가능하도록 변경한 입단제도 떄문이었다.그 바람에 이창호 소년은 임동균, 김철중, 조민수 강영일 등의 당시 아마 최고수들을 피해 입단할수 있었다.
흑기사270|2019-03-05 오후 4:28:00|동감 0
동감 댓글
오작가님의 글 재밋게 잘 보았구요,
도은교님은 연세대 수학과 출신 이고 증권회사에 다니다 바둑 공부를 위해 그만 두었죠,
뭐 바둑이 인생의 다가 아니니까요,
바둑외에도 세상에 할일은 얼마든지 많고 관심도 다른데 갈 나이니까요,
스미레와 도은교님은 비교 자체가 아닌거 같습니다,
grayboy|2019-03-05 오후 3:34:00|동감 0
동감 댓글
글을 참 잘 쓰네요. 읽는 이로하여금 전체를 쉽게 이해하게 글을 쓰시네요.
화려한 문장 실력을 뽐내는 것이아니라 독자로하여금 내용을 이해하게
하는 것이 살아있는 글이겠지요
윤실수|2019-03-05 오후 2:48:00|동감 1
동감 댓글
스미레의 기사에 딴지를 걸지 말자. 스미레는 수업료를 내고 한도장에 다니지만 자비로 조남철, 조훈현, 조치훈 등을 애정으로 돌본 기다니 세고에 선생의 은공에 비할까? 외국 소년들에게 바둑을 가르쳐 준다고 핀잔을 들으면면서도 늘상 지도기를 두어줬던 후지사와에 비할까? 받았으면 베풀줄 알아야 도리이거늘..
econ|2019-03-05 오후 2:33:00|동감 1
동감 댓글
조남철이 없었다면 조훈현, 조치훈도 없고 그들의 키드인 이창호 이세돌도 없으며, 송아지 삼총사 또한 없읍니다. 중국도 오청원과 중일 슈퍼 대항전이 단초였습니다. 스미레의 부상은 일본뿐 아니라 한국의 어린이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됩지요. 야구에서 오타니 효과가 한국야구에까지 미치는 것처럼..
낭만뜨락|2019-03-05 오전 11:15:00|동감 0
동감 댓글
근래에 읽은 바둑관련기사 중 가장 재미있는 글이네요.
일본인들의 문화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저와는 다른 생각이지만 대단히 합리적이고 흥미로운 글입니다.
흑백마스터|2019-03-05 오전 8:37:00|동감 0
동감 댓글
글쎄. 과연 일본바둑이 스미레 열풍정도로 과연 살아날까. 일본 바둑인구가 200만까지 쪼그라들었다는데. 인구수 감안하면 우리나라 이상으로 처참한듯. 뭣보다 7대기전체제에 장고바둑 틀이 파괴되지 않는 한 아무리 관심도가 높아지고, 인재가 유입되도 역행하고 있는 일본 시스템내에선 절대 세계대회 우승자 레벨의 기사는 나올수 없음.
大竹英雄|2019-03-04 오후 11:51:00|동감 0
동감 댓글
참 안타가운 이야기지만 한국에서 바둑인기를 올릴려면. 아니 조금이라도 관심이라도 얻을려면 방법은 한가지뿐 모모를 실시하는것 뿐입니다.
어떠하리|2019-03-04 오후 9:43:00|동감 0
동감 댓글
새싹에 물 주는거야 당연 ... 비바람 맞아 가며 자라는 잡초가 끈질긴것 또한 당연...훗날 뿌리 깊은 나무일지는 그 누가 장담 하랴!
더보기
관련기사
많이 본 기사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