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이전에 사람의 상식 2
[시사칼럼]
  • 손종수|2018-05-02 오전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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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성에 대하여

“ㅇㅇㅇ 사범에게 직접 위로의 말을 건네지 못한 것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제 불찰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ㅇㅇㅇ 사범에게 생길지도 모를 여러 곤란한 사안들은 제가 먼저 챙겨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위의 말은 한국기원(총재 홍석현) 유창혁 사무총장이 프로기사 게시판에 올렸다는 두 번째 해명의 글이다. 성폭행의혹 사건이 제기된 뒤 가해자는 급하게 만나 대화를 나누고 피해자는 무시하듯 외면해온 한국기원 집행부가 피해자에게 건넨 첫 공개반응인데 위의 말이 설득의 진정성을 갖추는 방법은 쉽고 간단하다. 말 그대로 실행하는 것이다. 그게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이다.

그런데 성의 가득한 해명의 말을 기사게시판에 올린 유 사무총장은 물론, 한국기원 집행부의 누구도 피해자에게 사과의 전화 한 통, 메시지 한 줄 보낸 적 없다. 이 사건의 사과대상이, 기사게시판에서 한국기원 집행부의 안일한 대응과 불공정한 태도를 비난한 여자프로기사들이었나? 아니다. 가해 혐의자, 한국기원 집행부가 사과하고 위로해야 할 대상은 피해자다. 피해자의 고통을 단 1%만이라도 공감하고 있다면 이렇게 말과 행동이 어긋날 수는 없는 것이다.

한국기원 집행부도 아니고 남자직원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피해자에게 건넨 것은 사과나 위로의 전언이 아니라 황당한 요구였다. 한국기원이 윤리위원회를 구성했으니 성폭행 피해와 관련된 참고자료를 제출하라, 아울러 윤리위원회의 결정을 존중하고 인정하는 서명을 보내라는 요구였다.

○● 디아나 초단, '성폭행 폭로' 이후 심경 밝힌 글 올려 ☜ 관련기사 보기 클릭

어처구니가 없다. 한국기원에서 구성한 윤리위원회의 위원장은 현직 법조인이다. 어떤 결정이 내려지든 증거제일주의에 입각한 이나라 법의 판결과 유사하지 않을까. 실제로 전해 들은 윤리위원회의 회의내용들은 법에 관한 이야기들로 무성했다고 한다. 한국기원 윤리위원회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그 내용을 알기도 전에 무조건 존중하고 인정하겠다는 서명을 하라니, 이런 막무가내식 요구는 폭력이다. 물리적인 힘으로 외상을 입히는 행위만 폭력이 아니다. 성폭행사건 같은 경우는 언어의 폭력으로 마음의 상처를 입히는 행위가 더 치명적일 수 있다. 성폭행 피해자들이 경찰조사에서 인격모독의 2차 피해를 호소하는 사례는 무수히 많다.

잘못 꿴 첫단추로 뒤틀린 옷매무새를 바로 잡는 일은 꿴 단추들을 모두 풀어내고 다시 제대로 첫단추를 꿰는 것이다. 이 사건의 첫단추는 사과와 위로였다. 2차 피해의 고통 속에서 홀로 잠들기가 두려워 친구들에게 의지하며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티고 있는 피해자가 처음부터 지금까지 원하는 것도 같다. 피해자는 가해 혐의자에 대한 구체적 처벌이나 피해보상을 단 한 번도 거론한 적 없다. 오직 진심어린 사과를 받고 싶어 했을 뿐이다. 그렇다. 프로기사 게시판에 유 사무총장의 이름으로 올랐다는 두 번째 해명의 글에서 구구하게 언급한 그 불찰, 사과와 위로다.

현실은 어떤가. 혹자는 진상이 명백하게 밝혀지지 않았는데 한국기원이 뭘 할 수 있겠는가. 이런 일들이 공공연하게 떠벌여지는 것은 바둑계에 악영향을 끼친다. 심지어 가해 혐의자와 그 가족의 방어권을 주장하는 말까지 흘러나왔다. 당연히 어느 누구도 억울한 누명을 쓰는 일은 없어야 하고 이 사건은 처음부터 거기에 초점이 맞춰진 상태로 불공정하게(?) 진행됐다. 한국기원 사무총장은 가해 혐의자를 만나 소명에 관해 대화를 나누었고 윤리위원회는 가해 혐의자와 접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가해 혐의자의 가족에 대해 누가 입이라도 뻥긋하던가? 가해 혐의자는 이미 충분하게, 보호받고 있다. 가해 혐의자는 변호사를 선임한 뒤 잠적했고 누가 흘렸는지 근거도 없는 ‘합의된 관계였다’는 말이 떠돌고 있으며 이 사건을 주재하고 정리할 의무가 있는(피해자와 가해 혐의자 모두 한국기원 소속 프로) 한국기원 집행부는 여전히 피해자에게 단 한마디의 사과와 위로의 말도 건네지 않았다. 표리부동하다. 이 모든 일들이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다.

다시 정리한다. 피해자가 원한 것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단 하나였다. 진심어린 사과다. 누가 누구에게 사과해야 하나? 사과 대상은 게시판이 아니다. 이 사건을 지켜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그것이 바로 법 이전에 사람의 상식이다.

*바둑관계자로서 이런 글을 올리는 일은 자해행위 같은 괴로움이 있다. 더 쓰고 싶지 않았지만 피해자에 대한 한국기원의 터무니없는 요구를 알고 나니 견딜 수가 없어서 썼다. 제발 사람의 상식에 맞는 태도를 보여줬으면 좋겠다. <손종수/바둑칼럼니스트>

○● 법 이전에 사람의 상식 ☜ 관련기사 보기 클릭

▲ 손종수 바둑칼럼니스트. 시집 [밥이 예수다]를 발간하고 시인으로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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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xair|2018-05-04 오후 7:00:00|동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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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스웨덴 한림원도 미투 소용돌이에 휘말려 급기야 종신 위원들과 종신 사무총장이 줄줄이 사직 사퇴했네요. 세계 바둑계 미투 운동은 우리가 먼저 불을 지폈지만 여태껏 의혹 해소조차 오리무중이고 그 누구도 책임 있는 자세를 보이지 않아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우리 바둑계의 미래가 회복 불능의 나락으로 떨어지지는 않을까 수심에 싸여 갑니다.
원술랑|2018-05-04 오후 6:57:00|동감 1
글쓴이 삭제
원술랑|2018-05-04 오후 5:53:00|동감 1
글쓴이 삭제
살검|2018-05-04 오후 3:00:00|동감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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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남인생에 그렇게 신경썼는지 몰겠는데 법대로 하면 되지 댁들이 판산가 인민 재판
식으로 할려고 하네
reply 자객행 이이디나 힐빙이로 바꾸셔 하품하지 말고
2018-05-04 오후 6:02:00
서민생활|2018-05-04 오후 1:25:00|동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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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바둑을 사랑하는 모든 바둑팬들은 사태를 정확히 알아야 할 필요가 있고,
그리고 한국 바둑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 서로 협력해서 이번 사태가 정의롭게 해결되도
록 만들어야만 합니다.
지난번 기사회에서 올바른 성명을 내었다는 것을 보면
대부분의 기사들은 우리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지금 김성룡 사태를 이렇게까지 미적거리면서 악화시킨 그 근본적인 원인은
한국기원의 집행부들의 오만하고 더러운 행태에서 기인되고 있다고 보아집니다.
한국기원이 누구 것입니까?
한국바둑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 온 몸을 다바친 조남철 선생님과 초기 헌신적으로 노력했
던 원로 기사들의 노력과 우리 바둑팬들의 응원으로 만들어진 것이 한국기원입니다.
지금 한국기원의 집행부 인간들의 것은 절대 아닙니다.
한마디로 한국기원은 우리 바둑팬들과 아마기사들 그리고 이 바탕위에서 노력하는 푸로기
사들의 것입니다.
이번ㄴ 사태를 보면서 지금의 한국기원의 집행부 인간들과ㅣ 이들의 방만한 행위를 방치한
한국기원 총재인 홍석현은 책임을 지고 모두 한국기원에서 물러나야만 한다고 저는 믿습니
다.
새로운 한국기원의 총재와 이사진 그리고 운영진을 만들어야만 합니다.
한국기원 모든 운영진은 즉시 물러나라!!!
자객행|2018-05-03 오전 7:27:00|동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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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중앙일보 정아람 기자발로 디아나 인터뷰가 나왔다. 뭉기적거리다 매를 버네 벌어...
현원석|2018-05-02 오후 10:47:00|동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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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룡은 왜 떳떳하게 피해자를 대면하지 않고 변호사 뒤에 숨었는가. 유창혁은 왜 프로기사의 명예를 형법으로 지키려 하는가. 고고한 프로기사는 판사외에는 고개를 숙일 수 없는 건가?
흑소리|2018-05-02 오후 9:46:00|동감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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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하고 답답하다.

손종수님 앞으로도 좋은 글, 바른 소리 부탁드립니다.
narumir|2018-05-02 오후 8:57:00|동감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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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종수님 글 감사드립니다. 계속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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