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둑의 경이를 넓힌 기사가 임해봉(왼쪽)과 다께미야다. 두 기사는 자연스런 반상 흐름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임해봉이 수동적인 인상을 준다면 다께미야는 적극적이다.
2015 을미년(乙未年) 설특집으로 ‘두터움’에 대한 6편의 문용직 박사 특강을 연재한 바 있다. 그간 추상적이고 모호한 개념으로 자리했던 ‘두터움’의 실체를 구체적이고 뚜렷한 이론으로 설명한 문박사의 특강에 뜨거운 반응이 이어졌고, 더 연재해 달라는 요청에 한가위를 맞아 한번 더 특집으로 꾸민다. 문용직 박사의 두터움 강의는 사이버오로 회원들께서 수시로 음미할 수 있도록 추후 별도의 강좌코너로 전편을 묶을 예정이다. - 편집자 주.
특강1 - 두터움은 신비한 세계가 아니다 ☜ 바로보기 클릭
특강2 - 형상과 감성에서 두터움이 나오다 ☜ 바로보기 클릭
특강3 - 형상과 변주를 오가면서 인식을 확장하다 ☜ 바로보기 클릭
특강4 - 단순한 형상은 본래 두텁다 ☜ 바로보기 클릭
특강5 - 중앙에서의 가벼운 세모, 만드는 이치 ☜ 바로보기 클릭
특강6 - 두터움과 세모의 확장이 포석의 길이다 ☜ 바로보기 클릭
특강7 - 반상의 생명은 폭과 너비에 있다 : 후지사와와 유창혁의 두터움☜ 클릭
특강8 - 안정과 균형의 화음 : 기타니의 한칸, 다까가와의 한칸 ☜ 바로보기 클릭
특강9 - 자연에 대한 대조되는 입장 : 임해봉과 다께미야
한가위 특집 - 두터움을 통한 명인의 이해 (3)
자연에 대한 대조되는 입장 - 임해봉과 다께미야
바둑 속에서 놀던 때가 있었다.
즐거웠다.
그렇지만 깊고도 먼 세계라고는 한번도 생각한 적이 없다.
‘깊고도 먼 세계’는 관조 없이는 주어지지 않기 때문일까.
생명이 약동할 때엔 깊다거나 멀다거나, 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감정에 들어간다.
그런가…
그렇지 않다는 주장도 있는데 아닌가?
1. 바둑의 깊이와 넓이를 넓힌 기사
1960년대 말 임해봉(林海峰 린하이펑)이 사까다를 이기고 명인에 올랐을 때 사람들은 놀랐다.
20대 명인에도 놀랐지만 바다와 같이 깊고 넓은 임해봉의 기풍에 더욱 놀랐다.
대륙적인 것이란 이런 것인가, 감탄하면서,
바둑의 넓음에 비해서 인간의 기예(技藝)는 얼마나 사소한가.
20대 명인은 의외의 것이 아니다.
고금의 명인 국수들은 거의 대부분 20대 전후에 이미 성취를 끝냈다.
정신력과 체력 그 두 가지가 요청되는 것이 바둑의 세계니 당연한 사실이다.
물론 10대에 이창호가 이뤄낸 성취는 바둑의 깊이와 숙련에 회의를 주었다.
바둑의 깊이와 넓이는 언제나 경이인데 그 경이를 넓힌 기사를 만나보자.
임해봉과 다께미야가 그들이다.
두 기사는 서로 비슷한 인상도 주는데 자연스런 반상 흐름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러나 다른 면도 있어 임해봉이 수동적인 인상을 준다면 다께미야는 적극적이다.
▼ <1도> 흑2, 이리 두어도 이길 수 있나
1도 (임해봉의 자연 - 대륙의 정신인가)
흑2는 수법이라기보다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저리 두어서, 그러니까 저런 태도로 반상을 균형 잡아갈 수 있는가?
국후 임해봉은 흑2가 아니라 흑A 이하로 두고 싶다는 오청원의 견해에 대해 수긍하면서도 여전히 흑2에 대한 애착도 갖고 있는 듯했다. (1967년, 제6기 (구)명인전 도전3국. 흑 명인 林海峰 : 백 9단 坂田榮男)
▼ <2도> 세상에 이런 착상이! 놀라운지고
2도 (다께미야의 자연 - 안목으로 수법을 선택)
저런 착상이!
저런 세계가!
그런 감탄 터진다.
대체 집은 언제 짓는 거야?
놀랍게도 된다. 저리 두어도 된다.
1930년대 신포석의 너비와 깊이는 다께미야에 의해서 더욱 넓혀지고 깊어졌다.
(1986년, 제41기 本因坊戰 도전2국. 백 本因坊 武宮正樹 : 흑 9단 山城 宏)

▲ 면도날로 불리는 사까다의 시대를 무너뜨린 건 뭉툭하고 단단한 임해봉의 두터움이었다. 사까다의 바둑은 '돌이 효율의 전부'라는 견해를 보였다면 임해봉의 시대적 가치는 바로 '그것만이 효율의 전부인가?'라는 의문과 답을 보였고, 그때까지의 효율에 대한 이해를 재검토하게 만든 것에 있었다. 사진은 임해봉 9단(오른쪽)이 1965년 23세의 나이로 사까다 9단을 물리치고 명인에 오르는 순간. <사진/일본기원>
2. 임해봉 - 두터움은 언젠가는 가치를 드러낸다
세상사 그런 것이다.
일이 있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의미가 찾아진다.
인물이 있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그 인물의 존재가치를 시대적으로 매기게 된다.
시대는 비로소 자신을 드러낸다.
1960년대 초 일본바둑계는 사까다의 전성기였다. 거의 모든 타이틀을 독점했으며 바둑의 내용에 있어서도 예리한 기풍 그대로 “효율이 돌의 전부”라는 견해를 보였다.
맞는 말이겠다. 효율 높으면 집이 많아지니까 말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이다.
효율이란 무엇인가?
효율이란 경제학적으로 말해서 두 개의 변수간의 관계를 말해주는 것일 뿐이다.
두 개의 변수는 그 무엇이라도 좋다.
다시 말해서 효율은 그 자체 아무런 내용을 갖지 않는 것으로 단지 두 요인간의 관계를 말해주는 것이다.
바둑에서는 “돌의 숫자와 집의 크기”와의 관계를 말해줄 뿐이다.
적은 돌로써 집을 많이 만들면 적게 만드는 것보다는 효율적이다.
임해봉의 시대적 가치는 바로 그 효율에 대한 이해를 재검토하게 만든 것에 있었다.
1) 효율은 돌의 숫자만 갖고 달성되는 것이 아니다.
2) 높은 효율은 시간을 고려해서 평가되어야 한다.
그러니 1)과 2)로부터 다음 결론이 나온다.
3) 두터운 수법은 당장은 비효율적인 거 같지만 장기적으로 더 높은 효율을 가져올 수 있다.
▼ <3도> 백1, 태연하다 못해
3도 (너무나 태연한 두터움인가)
스승인 오청원으로부터 비판을 받은 수가 저 백1이다.
백1은 A에 두어 백E까지 되는 것이 훨씬 능률적인 것으로, 백1은 대세점이자 두터운 행마이긴 하지만 집에는 소홀하다는 것이다.
여러분은 어떤 입장이신지?
답이 없는 문제다.
저런 백1을 두어서도 충분히 바둑은 균형을 맞추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1970년, 제9기 명인전 도전4국. 백 명인 林海峰 : 흑 9단 藤澤秀行)
▼ <4도> 오청원에게 칭찬받은 수
4도 (임해봉의 장점은 이런 데 있다)
스승으로부터 칭찬을 받은 수가 백1이다.
“우리 같으면 여기서는 흑2 근처에 두고 싶지만, 이렇게 자리를 잡고 난 다음에 흑이 손을 빼면 다음 <5도>를 두어가자는 겁니다.”
(1969년, 제8기 명인전리그. 백 9단 林海峰 : 흑 9단 藤澤秀行)
▼ <5도> 느림의 힘
5도 (느린 수의 숨겨진 힘)
흑2는 두고 싶은 점. 그러나 이제는 백3이 흑에게 아프다.
만약 백1이 없이 백3을 두면 흑A, 백B, 흑C로 백이 분열되어 나쁘다.
그러나 느린 듯한 두터움만으로 임해봉을 설명할 수는 없다.
이에 대해서는 오청원의 좋은 평이 있으니 참고하도록 하자.
“임해봉의 기풍은 어떻습니까.”
“조심성이 많지요.”
“폭이 넓다고 표현해도 좋을까요?”
“폭은 확실히 넓습니다. 여간해서 무너지지 않으니까요. 두터운 바둑입니다.”
“스케일이 큰 바둑인가요?”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스케일이 크다면 다께미야 같은 기풍이겠지요.
스케일 큰 수라면 한편으로 위험이 따르기 때문에 임해봉은 그와 같은 수는 두지 않거든요.”
임해봉을 대륙적인 기풍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지만, 그 내용을 좀더 찾아보면 단순한 스케일의 문제가 아닌 것을 알겠다.
승부를 멀리 내다보는 점도 스케일이겠지만,
반상의 크기를 기준으로 스케일을 말한다면 다께미야가 더 적절한 예가 될 것이다.
▼ <6도> 두터움은 실리에 민감하다
6도 (실리에 민감한 것과 두터움은 함께 한다)
임해봉은 두텁게 두되 집의 균형을 깊이 생각한다.
흑5가 그렇다.
중앙을 서로 마주보고 또 돌이 서로 교차하고 있으니 흑5는 중앙 어딘가 공격하고픈 마음이 드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그는 돌아선다. (1991년, 제3기 동양증권배 결승1국. 백 5단 이창호 : 흑 9단 林海峰)
임해봉에게 두터움은 균형을 잡아가는 수단의 의미가 강하다.
그래서인가. 이창호의 임해봉 평이 있다.
“평소 닮고 싶었던 분”으로 “승부처에서 전투력과 중반 이후 끝내기가 엄청나게 강하시다.
특히 끈기와 승부정신은 본받아야 한다고 늘 생각하고 있다.”
임해봉의 바둑은 언제나 세력에서 실리, 실리에서 세력으로 변신할 준비를 하고 있다.
변신이 불확실할 때 그는 두터운 수법을 선택하는 것이다.
모호할 때에는 결정을 미루고-이러한 태도는 두터움의 태도라 할 수 있다-상대에게 선택권을 주는 방식으로 반상을 이끌어가는 것이다.
그것이 <1도> <3도> <6도>가 말해주는 바다.
▼ <7도> 평범함의 비범
7도(불안의 여지는 남겨두지 않는다)
백1 이하는 평범하다.
그러나 실전에서 이리 둘 수 있는지?
프로도 쉽지 않은 것이 저 백7과 흑8의 교환이다. 물론 백7을 두지 않으면 흑A 침입이 아프다. 그래도 백7, 흑8의 교환은 상변 흑을 대단히 넓게 해주는 것이라 두려운 것. (1974년, 제13기 명인전 도전5국. 백 명인 林海峰 : 흑 9단 石田方夫)
임해봉이 두텁게 두는 이유가 있다.
이시다의 표현을 빌리면 “호전적”이라는 것이다.
실로 두터운 바둑은 싸움에 능하다.
두터움은 공격에 써먹으라는 격언 있잖은가. 이 바둑도 흑8 이후 상변 B 붙여 싸움을 걸었다.
이제 두터움을 이야기하려면 힘바둑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다께미야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 조훈현 9단이 가장 껄끄러워한 기사는 누구였을까? 1인자 자리를 넘겨준 제자 이창호일 거 같지만 실은 다께미야 9단이라고 본다. 사제도전기에서 제자에게 밀릴 건 전성기의 정점을 지나는 승부사로서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면, 절정기에 만났던 다께미야 9단과의 대결은 사정이 다르다. 1990년 효성에바라배 3번기는 1989년 응씨배 우승자와 88~89년 후지쯔배를 2연패한 챔피언끼리 치른 통합전이었다. 여기서 조훈현 9단은 다께미야 9단에게 2-0으로 졌다. 우주처럼 광활한 다께미야의 두터운 바둑은 발빠름을 장기로 삼는 조9단에게 넓게 쳐진 그물과 같았다. 역대전적에서 조9단이 3승9패로 밀린 이유다.
3. 다께미야 - 자연류의 두터움
조치훈이 부상을 당해 고바야시(小林光一)와의 제10기 기성전 도전기를 휠체어 대국으로 임했을 때, 주위에서는 우려했었다.
두어야 한다느니 두지 않아야 한다느니 말이 많았던 것은 우리 모두 잘 아는 바고,
두어서 투혼을 보여준 것도 잘 아는 바다. 상대인 고바야시의 마음도 참으로 괴로웠겠다.
다음 이야기를 잠깐 생각하자.
“두지 않습니다. 두어서 좋은 일이 아무 것도 없기에. 부상의 회복에 전력을 다합니다.” (다께미야)
“둘 가능성이 있을 때에는 어떤 짓을 해서라도 둡니다.” (임해봉)
인간적인 차이를 보는 것만 같다. 그리고 그것이 바둑에도 그대로 드러나는 것만 같다.
임해봉은 끈질기다. 두어본 많은 기사들이 이리 평한다.
“이 사람을 이기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두어본 자만이 아는가 싶다.”
다께미야의 바둑엔 낭만적인 요소가 깃들어있는 듯싶다.
자연류라 불러달라 하면서 우주류라 부르지 말라고 하는데, 그 자연이란 것이 노자(老子)의 자연과는 거리가 멀다.
자연스런 흐름이 있다는 것은 다르지 않겠는데… 그렇겠다.
자연스런 흐름, 그것이 자연류다. 다께미야는 그것을 찾아내는 여행을 했다. 아마도 정상에 올라선 다음에야 비로소 ‘자연류’를 언급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앞서 본 <2도> 다음은 어떻게 진행되었을까. 그것을 먼저 보자.
▼ <8도> 아름답도다, 두터움!
8도 (형상에서 두터움이 나오면 아름답다)
백6이 참으로 아름답다. 두터움이 이토록이나 아름다울 수 있다니!
주변의 공간이 환하다.
이 다음 흑은 A에 두어 B와 C를 맞봤는데, 그 수도 참 좋다.
형상이 세모를 안고 있으니까 그러하다.
백6을 D에도 두고 싶은데 한 발이라도 중앙으로 더 나아가고픈 것이 다께미야의 안목이다.
바둑이 된다. 저리 두어도 바둑이 된다.
▼ <9도> 변화를 여지를 없앤다
9도 (변화의 여지를 없애는 것이 두터움)
여기 백1을 보자.
맛이 없다.
그야말로 두터움의 핵심인데 그래도 너무 지나친 거 아닐까.
그렇지 않다고 한다. 우변을 중시하자. 아무런 맛이 없기에 강하다.
아니다. 갑자기 홀연 다가온 반상이 맛없이 고요해진 것만 같다.
(1981년, 제6기 명인전리그. 백 本因坊 武宮正樹 : 흑 9단 小林光一)
▼ <10도> 두터움은 무섭다
10도 (부분의 두터움이 전체로 전환된다)
서봉수가 다께미야에 대해서 이리 말한 적 있다.
“속기에서 한 번 만나봐라.”
두터움과 힘을 어느 기사보다도 강하게 구사하는 기사였기 때문에 서봉수는 그리 말했던 것이다.
흑2 이거 대단한 두터움으로 무서운 수다.
이런 수 당하면 상대는 참으로 기분 떱떠름하다.
백이 좌변 넘어간 것은 사소하고 사소하다.
그렇다고 백은 아니 넘어갈 수야 없다. 백3 없으면 흑A 이하 흑G로 백이 크게 당한다.
(1976년, 제31기 本因坊戰리그. 백 8단 加藤正夫 : 흑 8단 武宮正樹)
▼ <11도> 단점을 안으면 엷어진다
11도 (단점이 있으면 언제나 엷다)
<10도> 흑2를 여기 흑2면 어떤가?
한마디로 말할 수 있다.
엷다. 반상 전체가 엷다.
실로 단점이 남아있는 것은 두려운 일.
끊기지 않더라도 엷게 된다.
백5 이후 알파벳을 따라가 보라.
천정이 무너져 밝은 빛이 들어오고 우변 흑이 보호받지 못하는 인상 온다.
잇는 것과 세모 네모로 근거를 구하는 것은 같은 목적을 갖고 있다.
바로 안정이다.
안정은 그 무엇보다 중시된다.
다께미야에게 있어 그 점은 누구보다도 뚜렷하다.
▼ <12도> 두터운 수법은 좁은 곳을 지향한다
12도 (흑4가 네모를 무너드리는 전형 - 급한 곳)
좁은 곳은 우리의 손길이 잘 안 간다.
눈길도 물론이고 마음도 그다지 가고 싶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두터운 수법은 대부분 좁은 곳을 지향한다.
다께미야가 강조한 것이 여기 흑4이다.
세모의 전형,
급한 자리의 전형이다.
백1은 4에 두어야 했다. (1982년, 제1기 NEC컵 결승. 백 9단 大竹英雄 : 흑 9단 武宮正樹)
▼ <13도> 모양의 감각은 부분에서나 전체에서나 다를 바 없다
13도 (넓은 곳에서도 네모는 급소)
두터운 수법은 대체로 좁은 곳에서 활동하지만,
그러나 안목이 깊어지면 큰 집모양의 안목도 넓어진다.
부분 두터움의 힘이 전달되는 것을 점점 더 넓게 받아들이는 탓도 있지만,
모양의 감각은 부분에서나 전체에서나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반상의 조건인 격자무늬는 언제나 감각의 기초가 된다.
흑3이 두 점(▲)을 잇는 꼭지점인 것을 확인하자.
세모는 언제나 두텁다 - 전체적으로나 부분적으로. 왜냐. 가장 효율적으로 안정을 하니까,
그리고 발전성이 있으니까.
전국적인 안목에서는 이를 보통 입체적이라고 표현한다.
부분적인 영역에서는 두텁고 단단하다고 표현한다.
(1969년, 제6회 프로10걸전 순위결정전. 백 9단 橋本昌二 : 흑 5단 武宮正樹)
p. s.
역시 짧다.
아쉽다.
다께미야의 두터움에 대해서는 보다 더 들여다보고 싶다.
글 하나 곧 올리겠다.
[다음편 10강] 두터움을 통한 명인의 이해 (4) - 생명력은 감성의 적극적 표현에 있다 - 사까다와 조훈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