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인 서봉수를 생각해본다. 1972년 조남철로부터 명인을 획득한 후 그의 바둑은 변화를 많이 겪었다. 무엇보다도 공간에 대한 이해가 높아졌는데, 훑어보면 대략 세 번의 변화를 겪었다고 할 수 있다. 사진은 조남철 아성을 무너뜨리고 '2단 명인' 돌풍을 일으켰던 4기 명인전 시상식 장면. [사진/ 월간바둑]
2015년 설특집 <두터움> 특강 6편. 이어 후속편 격인 2015년 한가위 특강 <명인의 두터움> 8편. 그간 추상적이고 모호한 개념으로 자리했던 ‘두터움’의 실체를 구체적이고 뚜렷한 이론으로 설명한 문용직 박사의 명절특강에 사이버오로 회원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2016년 한가위 특강! 이번엔 <장문>이다.
‘축’처럼 초보시절에나 배움직한, ‘장문’을 한갓 돌을 잡는 기초적인 바둑의 수법이라고만 여기고 계셨다면 이 강의를 접하는 순간 장문의 또다른 세계, 바둑의 무한한 매력에 경탄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실은 얼마나 협소한 범위였는지. 한가위 연휴 엿새 동안 하루에 한 편씩 연재합니다. - 편집자 주.
장문 특강1 - 장문을 넓히고 싶어서 ☜ 바로보기 클릭
장문 특강2 - 버리는 것이 훌륭한 안목 ☜ 바로보기 클릭
장문 특강3 - 축이 안될 때의 장문 ☜ 바로보기 클릭
장문 특강4 - 씌우고 벗어난다
장문 특강5 - 넓히고 역으로-부분과 전체의 관련
장문 특강6 - 잇는다
다시 한 번 불러본다.
장문.
문(門)은 열고 닫는 것.
미닫이도 있고 여닫이도 있듯이 열어젖혀야 할 때도 있고 밀어젖혀야 할 때도 있다.
우리네 삶에도 그런 한 때 있거니 바둑에서야 이를 말이랴.
명인 서봉수를 생각해본다.
72년 조남철로부터 명인을 획득한 후 그의 바둑은 변화를 많이 겪었다.
무엇보다도 공간에 대한 이해가 높아졌는데, 훑어보면 대략 세 번의 변화를 겪었다고 할 수 있다.
수에 밝고 치열해서 야성의 귀재라 불렸던 그도 처음엔 안목이 좁았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공간에의 이해를 높이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공부 여간해서는 그리 발전하기 힘든 것.
오늘은 초기의 바둑에서 나타난 공간감의 한계를 보도록 하자.
▼ <1도>
1도 (젖힘은 결정적인 악수 - 졌다면 패착)
백1, 3은 느리다.
“백1은 결정적인 악수며 만약 졌다면 이 수....”
서봉수의 자평인데, 당시의 한국바둑계 실력을 알려준다 하겠다. (1973년 제5기 명인전 도전1국. 백 명인 서봉수 : 흑 6단 정창현)
그러면 어떻게 두어야 했을까?
▼ <1-1도> 중앙이 초점이었다.
중앙이 초점이었다.
중앙의 공간을 중시하면, 당연히 좌상귀의 진행을 수정해야 한다.
여기 변화도는 잘 알려진 진행. 지금의 상황에 알맞다.
백이 활발하다는 것을 알겠다. 중앙의 차이야 말할 것도 없다.
▼ <2도>
2도 (부분엔 무거워도 전국은 넓고 두터워)
흑2는 다소 무겁다. 보통은 흑3 막고 백2, 흑A.
그러나 서봉수는 전국(全局)을 중시하여 선수를 잡은 후 흑4를 크게 봤다. (1979년 제10기 명인전 도전4국. 백 명인 조훈현 : 흑 6단 서봉수)
1973년과 79년, 그의 바둑은 크게 달라졌다.
무엇보다도 (<1도> <2도>를 보면) 돌을 부차적으로 보는 동시에 공간에 대한 인식이 크게 진보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공간을 다루기 위해 돌을 사용하는 것이다.
▼ <3도>
3도 (15급 초보자의 대국에서)
어느 인터넷 사이트에서 스쳐본 대국이다.
두 대국자 비슷한 실력인데, 초반은 백이 다소 낫다.
놀라운 것은 돌의 운용보다도 공간에 대한 인식이 넓다는 것이다.
상변에서 보듯이 사활이 저토록이나 미숙한데도 불구하고 공간을 다루는 방식은 3급 수준이다.
1930년대 신포석 혁명 이후, 바둑에서 공간에 대한 감각은 뛰어나게 발달하였다.
이론적으로나 실전적으로 오늘의 5급은 당시의 1급보다 높은 안목을 과시한다.
물론 사활의 실력과 초반 포석의 실력 사이에 괴리가 크긴 하다.
그러나 바둑은, 공간에 대한 감각이 좋아지면 돌에 대한 이해도 높아지는 것.
다음 <4도> <5도>는 수십 년 전 프로의 실전이지만, 이제 <5도> 흑1을 둘 수 있는 아마추어도 적지 않다.
▼ <4도> 수습책은?
4도 (흑이 수습하는 수법을 찾으시오)
백1 끊겨 일견 흑이 괴롭다.
그러나 과연 괴로울까?
흑에게 멋진 반발의 맥점이 있다.
▼ <5도> 장문의 맥.
5도 (장문의 맥으로 벗어나고 우세하다)
흑1이 장문의 맥.
이후 숫자는 필연적인 수순이다.
흑은 석점을 버린 대신, 외곽을 싸바르고 선수까지 잡았다. 흑이 크게 우세하다.
흑1 맥점은 우상귀 흑A로 잇는 수와 맥이 닿아있음을 기억해두자.
오늘날 수법만으로 볼 때 바둑의 흐름은 개울에서 강물로 변해가고 있다.
문제는 그 변화를 어떻게 이해하느냐?
이해의 확장을 꾀하면 보다 넓게 반상을 다룰 수 있다.
▼ <6도> 반발할 수 없다.
6도 (흑이 저항하기에는 - 백1 맥)
백1이 멋지다. 이에 대해 흑이 반발하기는 어렵다. 잡힌 백돌(△)이 구실을 하고 있다.
▼ <7도> 정맥과 속맥.
7도 (흑이 저항하기에는 - 맥과 속맥)
좌변의 처리는 바른 맥이요, 우변처럼 흑A, 백B, 흑C 이하로 죽죽 미는 것은 맥이 아니다. 차이가 크다.
▼ <8도> 마늘모의 자리. 여기가 장문의 요처.
8도 (마늘모 자리는 장문 급소의 전형)
네 개를 제시했다.
어느 것이나 흑A가 급소다.
모두 백돌(△)에 대해 마늘모 형상을 이루는 자리에 놓인 것을 확인하자.
좌하귀는 숫자를 따라갈 때 흑이 돌을 버림으로서 외세를 크게 쌓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장문의 맥을 활용해서 상대를 누르는 것은 곧 제한하는 것이요,
그것이 좁혀지면 잡는 것으로 귀착된다.
▼ <9도>
9도 (정석에서의 마늘모 장문 맥)
모두가 씌우는 것으로 맥을 잡는다.
모두가 마늘모 자리로 맥을 잡는다.
▼ <9-1도> 이후의 진행.
좌상귀는 백이 반발할 때의 귀결로 백이 실패한다. 이후는 숫자 순.
우상귀 흑▲는 잘 알려진 정석 뒷마무리. 이후는 숫자 순.
좌하귀는 소목정석의 갈래로, 백이 세력을 펴고자 할 때 백17이 맥점이 된다.
우하귀는 정석이 아니다.
앞서 글에서 보여드린 바 버림돌의 장문 맥이었다.
10도 (69년 9월호 월간「바둑」 실력테스트)
이 장면에서 백1이 답으로 추천되었다. 흑이 손 빼면 알파벳 순서로 싸바른다.
▼ <10도>
흑B는 백C 젖혀서 역시 흑이 우그러진다.
<9도>에서 본 바와 같이 흑돌(▲)의 마늘모 자리에 백1 급소가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1도 (사까다의 귀수묘수 - 1)
이제, 1급도 이해하기 어려웠던 70년대 사까다의 『귀수묘수』를 하나 이해할 수 있다.
오청원과의 치수고치기 10번기 중의 1국인데, 흑1이 지금까지 보아왔던 바로 그 장문의 맥.
▼ <11도>
굳이 백 두점(△)을 잡을 수 있는 것은 아니나 급소는 급소인 것.
흑9에 이르러 성과가 분명하다. 백A는 흑B로 축이다.
그래서 백B, 흑A가 실전이었다.
흑5가 재밌는 수였는데, 만약 백이 6 대신에 9에 받는다면(축을 피하기 위해서) 그 때는 흑B, 백C, 흑D로 싸바르겠다는 뜻이다. 싸바른 후에 우변에서 수를 내겠다는 얘기다.
▼ <12도> 흑1도 급소.
12도 (변화도)
흑1도 급소다. 물론 백2도 급소. 백2를 A는 흑B 석점머리 맞아서 좋지 않다.
13도 (중앙에서의 마늘모 행마 - 1)
이제 실전에서도 특히나 많이 등장하는 행마를 다뤄보자.
마늘모 장문의 맥과 연관지어서 이해를 높이자.
▼ <13도>
흑1 침입 이후 백12까지는 널리 애용되는 수순.
문제는 이 다음인데 서로가 한 발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는 흥미로운 행마법이 있다.
▼ <14도> 평범하게 두어서는...
14도 (중앙에서의 마늘모 행마 - 2)
흑1은 평범하다. 백2가 매운 급소.
흑이 이렇게 눌려서는 곤란하다.
▼ <15도> 반대로 마늘모를 당하면...
15도 (중앙에서의 마늘모 행마 - 3)
<14도>와 반대로 이제 흑이 마늘모 행마를 먼저 선택한 경우다.
이 경우엔 물론 흑이 유리하다.
▼ <16도> 실전.
16도 (중앙에서의 마늘모 행마 - 4)
실전이다. 흑이 흑1을 택한 이상 필연적인 수순이라 하겠다.
그 이유는 물론 <13도> 이하가 말해준다. 서로가 물러서서는 불리하기 때문이다.
흑7 이후는 알파벳 순이다.
17도 (마늘모가 왜 두어지는가 - 실전)
이제 알 수 있다.
서로가 밀고 당기고 할 때
(일견 좁은 듯한) 마늘모 행마가 장문의 맥처럼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17도> 장문의 맥, 마늘모.
이 바둑은 실전. (제15기 본인방전 리그. 백 8단 후지사와 슈코 : 흑 8단 사카다 에이오)
백1의 의도를 알 수 있다. 그 자리가 서로에게 급소인 것이다.
참고로 백A는 흑D까지 뒤로 밀어 그만.
18도 (무서운 장문)
이어진 실전을 감상하자. 흑은 중앙 백이 약한 것을 노리고 있다. 그 결단의 과정을 감상하자.
▼ <18도> 무서운지고, 장문의 맥.
흑11이 최종 결론이다. 우상 수상전은 백이 먼저 두어야 한 수 빠르다. 그러나 그러면 (싸발릴 테니) 좌중앙 백대마는 두 집을 낼 수 없게 된다.
마늘모와 장문의 맥…
오늘은 마늘모 급소를 중심으로 하는 장문의 맥에 대해서 다루었다.
초점은, 마늘모 장문 자리가 좁은 듯하지만, 상대의 좌우를 최대한 억제하는 급소라는 데 있다.
그 결과 마늘모 장문의 급소를 당한 입장에서는 밀릴 수밖에 없으며, 그 때문에 마늘모 장문의 맥은 상대를 누르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
강조할 것은, 마늘모 맥은 잡는 것 못지않게 공간을 넓히는 데 초점을 둔다는 것이었다.
그렇다.
초보적인 장문은 마늘모로 상대를 잡고 제한하는 것.
그럴 때 그 배경엔 넓은 공간이 들어선다.
그러하기에, 실력이 늘면 점점 더 배경을 활용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다음 다섯 번째 글의 주제는 그 배경을 다루는 게 되겠다.
[오늘 만난 것]
오늘 바둑을 두어봤다.
관전이 어려웠다.
20대 기사들의 대국을 한둘 봤는데 매우 힘들었다.
역시 제한시간이 너무 짧은 거 아닌가 한다.
기사들이 쉴 여유가 없다.
바둑이 스포츠로 정체성을 바꾼 후 10년도 훨씬 넘어 지났다. 20년 가깝다.
TV와 인터넷의 영향은 정체성 못지않은 영향을 끼쳤다.
바둑리그를 보면
입는 옷도, 불리는 이름도, 조명을 포함한 공간도, 두어지는 시간대도, …여유를 주는 것이 없다.
그런 것들이 기사들의 에너지를 많이 잡아먹는다. 정신적 에너지를 포괄한다.
익숙해진다고 해서 문제가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기사로서의 생명은 확실히 짧아진다.
해결 방안이 뭐냐고?
그런 것은 모르겠다.
프로들이 힘든 시기라는 것, 그것을 확인할 뿐이다.
세상사 다 그렇게 변화하고 있다고?
그럴지도 모르겠다.
장문은 대단히 빡빡한 수법.
괜히 빡빡한 주제 다루고 있나 싶어 잠깐이나마 스스로 미안한 마음 품어보는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