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바둑은 왜 몰락했을까
일본 바둑은 왜 몰락했을까
중앙일보-[박치문의 검은 돌 흰 돌]
[언론보도]
  • 박치문 바둑 칼럼니스트|2020-03-26 오전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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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 김회룡

출처: 중앙일보 [박치문의 검은 돌 흰 돌] 일본 바둑은 왜 몰락했을까
○● [중앙일보] 기사 원문(3월 25일, 경제 6면) 보기 ☜ 클릭


“두점머리는 죽어도 두들겨라”라는 격언이 있다. 돌의 능률과 아름다움을 중시하는 일본바둑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논리적으로는 내가 죽는 마당에 남의 두점머리를 두들기면 뭐하나 싶지만 그게 아니다. 이 격언을 읊조리다 보면 두점머리는 급소 중의 급소이고 두점머리를 얻어맞는 것은 하수 중의 하수라는 생각이 저절로 각인된다. 두점머리를 두드릴 때는 무식한(?) 상대방에 대한 안쓰러움마저 느끼게 된다.

탐미주의로 흐르다 한국에 밀려
응씨배 서봉수 역전승이 분기점


하지만 AI의 바둑을 보면 두점머리는 흔하게 얻어맞는다. 자청해서 얻어맞기도 한다. 인간 고수들은 처음 그 모습을 보고 얼마나 놀랐던가.

일본바둑의 황금기에 오타케 히데오(大竹英雄)란 기사가 있었다. 그는 기타니 도장의 수석사범으로 다케미야 마사키, 조치훈 등 수많은 정상급 기사들에게 일본바둑의 정수를 심어주었다. 그는 ‘미학(美學)’이란 두 글자로 특히 유명했다. “바둑을 질지언정 추한 수는 두지 않는다.” 이게 그의 엄숙한 바둑 철학이었다. 그는 일본미학의 열렬한 신봉자였고 전도사였다.

‘한국류’란 말은 처음엔 그리 좋은 뜻으로 쓰이지 않았다. 1980년대 일본 바둑잡지에서 먼저 등장한 이 단어는 ‘세련되지 못하지만 치열하고 실전적인 수법’이란 뉘앙스를 품고 있었다. 당시 한국기사들은 몸싸움을 좋아하고 상대에게 돌을 밀착시키는 격렬한 수를 즐겼다. 일본미학의 눈으로 볼 때는 승부 호흡이 급한 덜 익은 수법이었다. 그러다 한국이 서서히 기세를 올리면서 한국류를 보는 눈도 변하기 시작했다.

1993년 2회 응씨배 결승전에서 한국의 서봉수 9단과 일본의 오타케 히데오 9단이 맞붙게 된 것은 흥미로운 사건이었다. 오타케가 일본미학의 대표라면 서봉수는 잡초의 생명력으로 무장한 한국류의 대표였다. 이 둘의 대결은 2대2까지 팽팽하게 이어졌고 결국 최종 5국까지 갔다. 이 판에서 서봉수는 능률과 모양에 능한 오타케의 수법에 말려들어 일찌감치 비몽사몽이 됐고 화타가 와도 살릴 수 없는 절망적 상황을 맞게 됐다. 그러나 이때부터 서봉수의 괴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건 바둑이 아니었다. 권투선수 홍수환이 세계타이틀매치에서 비세에 몰리자 두 팔을 풍차처럼 돌리며 싸우던 모습이 떠올랐다. 승부는 서봉수의 대역전승으로 끝났다.

이 승부는 단지 서봉수 개인의 승리가 아니었다. 잘 가꿔진 국화 같은 일본미학이 퇴조하고 야생화 같은 한국류가 세계바둑의 전면에 등장하는 분기점이 됐다.

바둑은 전쟁을 모방했다. 따라서 승리하려면 병사에 해당하는 돌 하나하나의 능률을 최대한 끌어올려야 한다. 일본은 이미 수백 년 전 바로 이 ‘능률’에 착안하여 바둑을 한 단계 높여놨다. 그러나 오랜 세월 능률을 숭상하다 보니 능률적인 것은 아름답고 비능률적인 것은 추한 것이 됐다. 일본미학은 점차 탐미적인 경향을 띠며 틀에 얽매이게 됐다. ‘두점머리’나 ‘빈삼각’ 같은 금기도 자꾸 늘어났다. 바둑은 전쟁과 같은데 금기가 많아지면 불리하다. 스스로의 손발을 묶는 결과를 가져온다. 일본미학은 일본바둑을 세계 최고로 끌어올린 일등공신이었으나 결국 일본바둑을 몰락으로 몰고 간 주인공이 됐다.

일본바둑이 향기는 있었다. 낭만적으로 중앙을 경영하는 다케미야의 우주류 등은 이해하기도 쉬웠다. 하지만 일본바둑이 왜 몰락했느냐 질문을 받으면 나는 애석하게도 이 ‘향기’를 떠올리게 된다. 승부는 낭만적이지 않다. AI의 바둑을 보면 돌을 밀착시킨다든지 옆구리를 자주 붙여간다든지 하는 한국류의 잔상이 심심치 않게 목격된다. 한국류가 나름 승부의 핵심을 짚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세상사가 그렇듯 바둑에도 정답은 없다. ‘삼삼’처럼 어제는 시시한 존재였으나 오늘은 고수들이 가장 선호하는 특상품이 되기도 한다. 일본바둑도 AI 이후 빠르게 변하고 있다.

박치문 바둑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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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htndmlr|2020-03-30 오전 1:32:00|동감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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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정말 제대로 정확히 짚으신것같네요.
한참 기원 다닐때 말도 안되는 수를 둔 1급들을 보면 저런수는 배우지 말아야지 했는데
세월이 지나보니 그게아니더군요. 박치문 선생님 말씀이 맞는것 같습니다..
폭탄주사양|2020-03-28 오전 3:26:00|동감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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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적인 측면이 있어서 승부에 약하다는 것은 정확한 지적이라 본다. 그런데 성적이 나쁜
것이 일본의 현실세계에서 몰락은 아니다. 일본인들은 바둑을 문화로 보기 때문에 국제대
회에서 성적이 나오지 않더라도 그대로 지켜보고 즐기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승부욕이 강
한 우리의 스타일이 있어서 국제대회에서 성적이 안나오면 비난하지만 저들은 그냥 즐기
는 문화라서 그냥 좋은 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기사들
이 국제전에서 일본처럼 성적이 나오지 않았더라면 바둑은 이미 완전히 무관심으로 잊혀
졌을 것이다. 중국도 결과에 민감하긴 하지만 우리만큼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나
라 바둑이 저변적으로는 가장 어려움에 있다. 정상급 프로기사들의 부담이 정말 클 것이
다.
윤실수|2020-03-27 오후 3:01:00|동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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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복싱은 왜 몰락했는가? 바둑과는 정반대로 일본에는 프로복싱의 세계적인 신성이 나타나 인기절정에 있습니다. 따라서 일본엔 바둑도장은 드믈지만 복싱 도장은 성업중이지요. 즉 인프라 파이 같은 저변이 주 요인일겁니다.
tlsadd|2020-03-27 오전 10:38:00|동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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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소리도 정도껏 해야지. 지금 누가 누구더러 몰락이라고 걱정해주는겨?
빈지수|2020-03-27 오전 10:32:00|동감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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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바둑이 몰락한 원인분석에 동의하지 못한다. 절정의 고수가 되면 정답을 찾아가며, 금기사항이나 한국류 같은 것은 사소한것이고 몰락의 원인이 아니다. 근본적인 이유는 바둑을 취미로 하는 인구가 급격히 줄었기 때문이다. 경제가 발달할수록 전자오락, 핸폰게임 같은 새로운 취미가 많은데 바둑같은 어렵고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것을 배우지 않는다. 즉 수요감소-> 관심부족->스폰서 없음으로 연결된다. 이런 현상이 일본이 가장 먼저 겪었고, 지금 한국이 겪고 있으며 중국은 20년후쯤 겪을 것으로 예상한다.
술익는향기|2020-03-27 오전 7:25:00|동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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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쉬 박치문 선생이 끓인 바둑글은 늘 그 맛이 구수하면서도 감칠맛이 나네요...

일본은 몰락한 양반 - 그러나 몰락했어도 워낙 조상으로부터 물려 받은 재신이 많아 그거 까먹으며 체면 유지 하고 있는 형국인듯 하고,,,

한국은 몰락하고 있는 자수성가한 사업가 - 한 때 사업이 잘되 뗴돈을 벌었으나 계속해 사업이 잘 될줄 알고 미래에 대한 투자를 하지 않고 잘 먹고 잘 놀았음...그나마 아직까지 버티고 있는건 극소수의 한국 선수들 머리가 워낙 뛰어나기 떄문.... 그러나 국내 바둑 환경은 세 나라중 가장 급속도로 하락할것임.

중국 - 경제가 부흥하면서 바둑도 부흥, 거기다 쪽수도 많아... 이미 저울은 중국으로 기울었고, 한국이 몇년이나 더 버티느냐가 관건인데... 결국엔 한국 선수들10명정도 중국에 용병으로 가서 뛰면서 생계 유지 하게 될듯...(차 회장님이 백방으로 뛰어 기전 5개 더 만든다 해도 결국엔 계속 유지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 될듯 하네요)
hb96316|2020-03-26 오후 10:19:00|동감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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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기1회|2020-03-26 오후 11:05:00|동감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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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이 일본 바둑 몰락의 한 이유일 수는 있다. 하지만 결정적인 원인은 아닐 것이다. 그보단
기다니 도장 이후 그를 대체할 시스템이나 인재가 나오지 않은 것이 핵심 아닐까.
한마디로 이창호나 유창혁, 이세돌 같은 천재가 일본에선 나오지 않았다. 조치훈이 여전히 본
선멤버로 활약하고 있는 현실이 보여준다. 더해서 담장을 높이 치고 자기들끼리 자위하듯 허
송세월을 보낸 것도 빼놓기 어려운 이유겠다.
윤실수|2020-03-26 오후 8:36:00|동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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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일본바둑의 정의가 무엇인가요? 박치문 위원은 언젠가 방송에서 말했습니다. 조훈현 9단은 20세에 자신의 기력의 정점에 올랐다고 하더라! 아다시피 조훈현 9단은 지금 신진서의 나이보다 많은 만 21세에 일본에서 귀국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조국수도 당연 일본바둑인데 왜 오다께만 일본바둑인가요? 사카다 후지사와 조치훈등 40대 후반에도 기력이 녹슬지 않은 경우는 오로지 일본기사들뿐이기에 일본바둑은 장점이 더 많은것 아닐까요!
econ|2020-03-26 오후 8:08:00|동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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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오다께는 위에 든 강점이 있기에 50대에도 버틴것이다. 만51세에 응씨배 결승 진출은 금후로도 꺠지기 어려운 미증유의 기록이다. 즉 그는 세계대회 결승에 진출한 최고령 기사인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이런 불세출의 기록은 바로 미학이 뒷받침된 것일터 어떻게 과소평가 되고 있는가? 만51세에 세계대회 결승에 진출한 유일무이한 기사인데...참고로 그해 대회에 조훈현은 일본기사 아야지에게 패했다. 또 이창호는 루이 에게 패했는데 오다께는 준결승에서 루이를 2대1로 꺾었다. 바둑사적으로 특기할만한 대기록의 기사인데 폄하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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