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월 23일 서울 성동구 마장로 한국기원 신관에서 끝난 제29회 LG배 조선일보 기왕전 결승3번기 최종국에서 기권패 한 뒤 대국장을 나서는 중국의 커제 9단.
○● [출처: 중국 혁객(弈客)] 바둑계 뒤흔든 ‘기권 사건’을 논하다 ☞클릭
글쓴이: 천안딩(陳安定) / 중국 충칭 변호사
최근 바둑계는 ‘기권 사건’으로 떠들썩하다. 중국의 프로기사들과 팬들은 심판과 변상일 9단에 대해 날선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나의 시각에서 이번 사태는 단순한 해프닝에 그치지 않는, 모든 프로기사에게 수치스러운 스캔들로 비춰진다. 이에 필자는 이번 사태의 본질과 그 파장에 대한 견해를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자 한다.
1. 중국기사들의 한국 바둑 규칙 경시
중국기사(커제 9단 포함)들은 한국 바둑규칙을 가볍게 여기며, 규칙에 대한 존중이나 엄격한 준수 의지가 없어 보인다.
롄샤오 9단은 한국의 새 규정이 터무니없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새 규정에 대해 전해들은 지난해 11월) 우리(중국 프로기사)는 ‘따낸 돌을 돌통 뚜껑에 놓지 않는다는 사소한 이유로 상대를 신고할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 데 뜻을 같이했다.”고 말했다. 렌샤오 9단의 발언을 곰곰이 살펴보면, 그가 한국 규칙을 진지하게 준수할 의도가 전무하다는 점이 명백히 드러난다. 그는 심지어 상대가 자신의 규칙 위반을 신고하지 않기를 바랐는데, 이는 정말 한심한 태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커제 9단은 어땠을까? 그는 이 규정을 성실히 따를 의지가 있었을까? 유감스럽게도, 커제 9단도 그럴 생각이 없었다. 그는 결승2국에서 두 차례나 규정을 위반했으며, 첫 번째 위반으로 벌점 2집을 부과받았고, 두 번째 위반으로 반칙패가 선언되었다. 그런데도 그는 3국에서도 해당 규정을 지키지 않았다. 과연 이것이 프로기사의 품격인가?
▲ 커제 9단은 결승3국에서, 따낸 돌 2개를 돌통 뚜껑이 아닌 테이블 위에 올려 놓으므로써 경고를 받았다.
▲ 결승3국에서 손근기 심판은 “커제 9단의 155수는 ‘제18조 6항 사석을 통의 뚜껑에 보관하지 않은 경우’에 해당했고, 그래서 대국을 중단하고 벌점 사유에 관해 이야기했으나 커제 9단이 받아들이지 못했다. 커제 9단은 대국을 포기했고 이에 따라 변상일 9단의 기권승을 선언한다.”고 밝혔다.
2. 새 규정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코치진의 책임
심판은 커제 9단이 규정을 위반했다고 판단하고 벌점 2집을 선언했다. 이에 대해 위빈 감독은 강하게 이의를 제기했다. 그는 “규정 어디에도 바둑돌을 돌통 뚜껑에 넣는 시점, 즉 언제 넣어야 하는지에 관해선 규정이 없으며, 이미 바둑돌을 돌통 뚜껑에 넣은 이상 위반이 아니고 벌점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심판은 “규정 위반 여부는 심판이 판단할 문제”라면서 커제 9단이 바둑돌을 테이블 위에 올려 놓은 행위 자체가 규정 위반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이에 따라 심판은 사석을 두 차례 테이블 위에 올려 놓은 행위를 한 번의 위반으로 간주하고 벌점 2집 경고를 주었다. 위빈 감독과 커제 9단이 동의하지 않자 심판은 경기를 중단시켰다.
위빈 감독이 규칙의 제정 주체와 직접 규정 적용 방식을 놓고 논쟁을 벌이는 것은 실로 어리석은 행태다. 이는 코치진이 규정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규칙 제정기관에 공식적으로 문의하거나 그 해석과 적용 방식에 대해 확실한 검토를 거치지 않았다는 사실을 드러내며, 이는 직무 태만에 해당한다.
3. 불리한 상황에서 핑계를 대며 기권하는 행위 - 프로 정신의 결여
커제 9단이 기권할 당시 승리할 확률은 5% 미만이었다. 여기에 2집 벌점이 부과되면 승리할 확률은 제로가 되었을 것이다(커제 9단을 지지하는 마샤오춘 9단조차 필패의 국면이라고 판단했다). 중국 측은 부당하다며 재대국을 요구했으나 변상일 9단은 단호히 거절했다. 결국 위빈 감독과 커제 9단은, 벌점 부과 후의 경기 속행에 동의하지 않고 기권을 선택했고, 결국 패배 판정을 받았다.
이 시점 반상을 보면, 변상일은 분명 자신이 유리한 형세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그 우위가 AI가 판단한 만큼 크지 않았을 수 있다. 커제 9단도 벌점 부과 후 열세가 매우 뚜렷하다고 생각했기에 벌점 부과 후 경기를 계속하려 하지 않았다. 만약 커제 9단이 벌점을 받고도 자신이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고(최소한 열세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기권을 선택했다면, 이는 커제 9단의 판단력에 결함이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4. 커제 9단의 ‘9관왕’ 자칭 논란
커제 9단은 기권한 후 웨이보(SNS)에서 자신을 ‘9관왕’이라고 칭했는데, 이것은 황당무계한 일이다. 이미 2국에서 커제 9단 본인과 중국바둑협회는 패배 판정을 인정했다. 설령 3국의 판정을 무효로 한다 해도 1대1 동점이 될 뿐인데, 어디서 9관왕이 나온다는 말인가? 더군다나 3국은 필패의 국면이었다.
5. 중국바둑협회 성명에 대한 의문점
대국 종료 후, 중국바둑협회는 공식 성명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경기의 결정적 순간, 변상일 9단의 착수 차례에 심판이 갑작스럽게 경기를 중단시켰다. 이는 시기적으로 부적절한 개입이었으며 경기의 정상적인 흐름을 방해했고, 선수들은 심판의 과도한 개입으로 인해 경기를 제대로 마무리할 수 없었다.”
또한 중국바둑협회는 3국의 결과(커제 9단의 패배)를 공식적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 성명에서 커제 9단에게 벌점을 주는 것이 맞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나는 이 성명에 대해 몇 가지 의문점이 있다.
1) 커제 9단에 대한 벌점 부과의 정당성 문제는 회피할 수 없는 핵심 사안이다. 벌점을 줘야 한다면 당당히 줘야하고, 그렇지 않다면 그 이유를 밝혀야 한다. 이에 대한 중국바둑협회의 명확한 입장 표명이 있어야 한다. 만약 대회 주최측이 벌점 부과가 부당했다는 입장을 취한다면, 커제 9단의 기권에도 일말의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규정에 따른 벌점 부과가 정당하다면, 위빈 감독과 커제 9단의 행동은 경기 질서를 어지럽힌 것이며, 기권은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행위로 볼 수밖에 없다.
2) 심판의 결정이 중국바둑협회의 영향력 아래에 있어야 하는가? 심판이 경기를 중단한 시점이 적절했는지, 경기의 원활한 진행에 심각한 영향을 미쳤는지는 주최측이 판단해야 하는 것 아닌가? 만약 주최측이 심판의 행위에 큰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다면, 기권은 심각한 규정 위반 행위 아닌가?
3) 커제 9단이 심판의 과도한 개입 때문에 경기를 지속할 수 없었다? 적어도 나에겐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내가 본 것은 커제 9단이 이미 불리한 국면에 처했고, 패배가 가까워지고 있었다는 사실뿐이다.
6. 판정의 일관성에 대하여
중국바둑협회가 2국의 판정을 인정했다면, 3국의 판정이 2국과 본질적으로 동일한 성격을 지닌다는 점에서 3국의 판정(벌점 2집)도 마땅히 인정해야 한다.
▲ 지난 1월 20일 서울 성동구 마장로 한국기원 신관에서 열린 제29회 LG배 결승3번기 1국. 변상일 9단(왼쪽)-커제 9단.
7. 기권에 대하여
어떤 종류의 경기라도, 기권은 곧 포기를 의미하며 필연적으로 패배로 귀결되어야 한다. 중국바둑협회가 이러한 패배 판정을 수용하지 않는 것은 어떠한 근거도 없는 행위라고 본다. 설령 심판의 행위에 부적절한 점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주최측이 사후에 책임을 규명하고 처리해야 할 사안이다. 만약 주최측이 대국 종료 후 심판의 행위가 부적절했다고 판단하여 재대국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면, 그러한 조치도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사후 처리의 영역이지, 현장에서 판정을 뒤집을 근거는 되지 못한다.
8. 다른 이들의 견해에 대하여
1) 녜웨이핑 9단
녜웨이핑 9단은 이렇게 말했다. “바둑이 비록 작은 도(道)일지라도, 품격과 덕목이 가장 존중받아야 한다. 본질적으로 바둑은 신사적인 스포츠여야 한다.”
그러나 녜웨이핑 9단은 커제 9단의 행동이 규정을 위반한 것이었는지, 그리고 벌점 2집 부과가 정당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나는 녜웨이핑 9단에게 묻고 싶다. 프로기사가 경기 규칙을 존중하지 않고 따르지 않는다면, 그것이 과연 품격있는 행동인가?
2) 딩하오 9단
딩하오 9단은 장문의 글을 통해 “이번 사건의 판정기준과 심판의 논리적 판단방식 모두에서 바둑의 문화적 깊이와 스포츠 정신을 느낄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딩하오 9단도 여전히 커제 9단의 행동이 규칙을 위반한 것이었는지, 그리고 2집의 벌점 부과가 정당했는지에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했다. 내 견해를 말해 보자면, 불리한 국면에서 핑계를 대며 기권하는 것이야말로 스포츠 정신에 위배되는 행위다. 경기는 질 수도 있지만 두렵다고 피해선 안 된다.
▲ 변상일 9단.
3) 탕웨이싱 9단
탕웨이싱 9단 역시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그는 이번 대회의 경기 규칙이 불합리하게 제정되었고 2국과 3국의 판정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대회는 한국 규정이 적용되고 있었으므로 탕웨이싱의 논증이 성립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나는 탕웨이싱 9단을 높이 평가한다. 그는 규칙에 대해 기꺼이 논의하는 몇 안 되는 기사 중 한 명이었다.
탕웨이싱 9단의 글은 길기 때문에 여기서 공유하지는 않겠다. 관심있는 사람들은 직접 찾아서 읽어보길 추천한다. 꽤 좋은 글이다.
4) 양이(杨一)의 입장
양이는 프로기사 구리 9단의 예를 들며 프로기사는 더 포용력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변상일 9단이 2국에서 커제 9단을 신고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나는 포용력이 커제 9단에게 적용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과거 온라인 대국(삼성화재배 결승)에서 신진서 9단이 마우스 미스(유선마우스의 줄이 노트북의 터치패드를 건드려 의도치 않게 착수가 됨)를 했을 때, 커제 9단이 아무렇지도 않게 그 실수를 받아들인 것을 기억한다. 규칙의 관점에서, 커제 9단이 잘못한 것은 없다. 그러나 그의 행동은 품격이나 관용과는 거리가 멀다. 만약 커제 9단에게 기품이 있었다면, 더 나은 대처 방식은 무승부를 제안하고 다시 대국을 진행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같은 논리로, 변상일 9단이 커제 9단을 신고한 것은 규정에 부합했다. 그러나 만약 변상일 9단이 커제 9단을 신고하지 않고 실력으로 이겼다면 나는 그를 더 존경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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