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을 뜨겁게 달군 이슈는 ‘치팅’이었다.
중국의 양딩신 9단이, 중국 갑조리그 팀 동료 리쉬안하오 9단의 치팅 의혹을 제기한 사건이었다.
부정행위 증거는 드러나지 않았고 양딩신이 징계받고 사과하면서 끝났다. 그러나 이 사건이 어떠했든 치팅을 어떻게 다루고 예방하는가는 아주 중요하다.
옆 동네 체스계와 비교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리 오래되지도 않았다. 바로 지난해, 체스계에서도 마침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2022년 9월 세계 체스계는 떠들썩했다.
19살(당시) 그랜드마스터 '한스 니먼(Hans Moke Niemann)'이 치팅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것이다.
싱큐필드 컵(Sinquefield Cup) 3라운드에서 한스 니먼은 세계 최고의 체스 선수로 평가받는 '망누스 칼센(Sven Magnus Øen Carlsen)'을 이겼다.
한스 니먼이 상승세가 뚜렷한 유망주라면 망누스 칼센은 절대 지존이다. 망누스 칼센은 한스 니먼에게 지기 전까지 53차례 무패행진을 벌이고 있었다. 한스 니먼이 일인자를 꺾는 것이 아예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지만 대단한 것은 틀림없었다. 특히 내용의 수준이 너무 높아 의심받았다. 한스 니먼은 복기 때 자신이 둔 수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망누스 칼센을 꺾으면서 한스 니먼의 라이브레이팅은 2700으로 솟아 올랐다.
칼센은 4라운드 직전, 대회를 기권했다. 이를 놓고 '망누스 칼센이 한스 니먼이 치팅했다고 생각해 대국을 하지 않으려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기 시작했다.
한스 니먼은 무척 억울해했다. 인터뷰에서 자신이 어린 시절 한번 치팅한 적은 있지만 다시는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12살 때 아이패드를 이용해 치팅을 한 적이 있는데, 그 뒤로 다시는 하지 않았다. 16살 때 온라인 경기에서 이상한 실수를 한 적은 있다(체스닷컴은 이를 치팅으로 여겨 계정정지 처분을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체스를 위해 모든 걸 희생했다. 레이팅에서 뛰어나고 싶었다. (어린 시절의 치팅은) 인생 최악의 실수였다. 부끄럽다. 그러나 그 이후 상금이 걸린 대회에서 치팅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에 심판장은 조사를 했고 그 결과 한스 니먼은 치팅을 하지 않았다고 공식 발표했다.
▲ 체스를 소재로 한 드라마 '퀸스갬빗(The Queen's Gambit)'의 한 장면.
이후의 대회에서 한스 니먼은 승승장구했다.
망누스 칼센은 다른 대회에서 한스 니먼을 상대로 만나자 1수만 두고 기권했다. 망누스 칼센은 입장문을 내어 “저는 한스 니먼이 자신이 인터뷰에서 인정한 것보다 더 많이, 그리고 최근에도 부정행위를 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또 “최고의 대회에서 최고 수준의 체스를 하고 싶은데, 치팅은 가장 큰 문제다. 치팅은 체스라는 게임 자체를 위협한다고 믿는다. 치팅 방지법과 보안조치를 강화해야 한다. 저는 과거에 반복적으로 치팅을 했던 사람과는 경기하고 싶지 않다. 나중에 또 무슨 일을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진실이 밝혀지길 바란다.”고 했다.
하지만 증거는 제시하지 못했다.
이미 2차례 한스 니먼에게 ‘계정 정지’를 준 적 있는 체스닷컴은 한스 니먼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였는데, 주요 내용으로는 ‘△ 오프라인 대회에서 치팅의 증거는 없지만 의심되는 정황은 상당히 있다. △ 온라인 대회에서 치팅으로 의심되는 경기가 최소 100 경기 이상 발견됐다. △ 스트렝스 레이팅(Strength rating)과 일로 레이팅(Elo rating: 상대적으로 실력을 평가하는 점수체계)의 상승 곡선이 정상적인 선수의 범주를 벗어난다. △ 그럼에도 오프라인 대회에서 치팅을 했다고 확신할 수 없다.’ 등이었다. 그러니까 ‘의심되는 정황은 있으나 오프라인 대회에서 부정행위를 했다는 결정적 증거가 없다’는 게 뼈대였다.
한스 니먼은 10월20일 망누스 칼센, 나카무라, 체스닷컴, 플레이 매그너스, 렌쉬가 자신의 명예를 훼손하고 평생을 바친 직업에서 자신을 블랙 리스트에 올리기 위해 불법적으로 공모했으며 모든 상황이 자신에게 치명적인 손상을 입혔다고 주장하며 1억 달러(약 1300억원) 소송을 걸었다(동부 미주리 지방법원). 이에 체스닷컴은 12월2일 '한스 니먼이 주장한 명예 훼손, 중상모략, 불법 간섭 및 군중 음모에 대한 주장은 실현 가능성이 없으며 코네티컷의 반 전략적 소송 금지 법령(anti-SLAPP)에 의해 금지되는 사안이라며 소송 기각 청구서를 법원에 제출하였다. 이 사건이 어떻게 마무리 될지를 놓고 체스계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 12월, 바둑계에서도 치팅 의혹 사건이 벌어진 것이었다.
침착한 이미지의 중국기사 양딩신 9단이 자신의 갑조리그 팀 동료 리쉬안하오 9단의 치팅 의혹을 제기하며 자신의 ‘은퇴’를 걸고 20번기를 제안했던 그 사건은 결국, 중국바둑협회가 조사했고 리쉬안하오가 치팅했다는 증거는 나오지 않았으며 양딩신을 징계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경과를 되짚어 보면 이렇다.
2022년 12월21일 제14회 춘란배 세계바둑선수권대회에서 리쉬안하오 9단이 신진서 9단을 이긴 것을 놓고 양딩신은 강한 의심을 하였다. 대국의 수준이 사람의 능력을 아득히 뛰어넘는 정도로 보였던 것이다.
사이버오로에서 대국을 해설한 김진휘 6단은 “명국이다. 이 세상 바둑이 아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인공지능 시스템으로 봤을 때 일치율이 무려 85%다.”라며 “인간계는 졸업”이라고 평가했다.
이날 신진서와 리쉬안하오의 대국이 진행되고 있는 동안 예후(FoxGo)에서 관전하고 있던 양딩신은 채팅창에서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리쉬안하오는 홍황류 소설에 나오는 성인급이다. 그에 비하자면 나는 새내기일 따름이니 몇 십단의 차이가 난다.”고 한 뒤 “성인(리쉬안하오)은 몇 년간 홀로 훈련하였고 우리와는 함께 연구하지 않았다. 그 전엔 우리 같은 하수들의 지저분한 바둑 때문에 성인의 바둑이 정체되었겠으니 부끄럽구나.”라고 했다. 또 “지금부터 나는 하늘을 이고 자유자재로 서겠다.”라고 했다.
그러곤 그날 밤이 지난 22일 새벽, 양딩신은 위챗(중국의 SNS)의 그룹채팅난에 이렇게 글을 남겼다.
“원래는 내일 글을 쓰려고 했는데 쓰고 자야겠다. 리쉬안하오, 나는 당신과 20번기를 하고 싶다. 화장실에 가면 안 되고 시간 제한도 없이 하루에 한판씩 두는 조건이다. 대국장은 모든 신호를 차단하여야 한다. 대국을 끝낸 뒤엔 기보를 공개하여 만인의 평가를 받자.
만약 내가 당신을 누명 씌운 것으로 드러난다면, 나는 LG배(내년 2월에 딩하오 9단과 결승 대결)를 치른 뒤 은퇴하겠다. 감히 나와 둘 수 있겠는가? 잘 주무시게. 개인적인 메시지는 남기지 말고 이 글에 답을 하라.”
▲ 양딩신이 위챗(중국의 SNS)의 그룹채팅난에 쓴 글. 일종의 결투 신청이었다. 치팅을 하기 어려운 조건 (화장실에 가면 안됨, 신호를 차단함)을 제시했다. 실패 시 자신이 은퇴하겠다고 했다.
중국의 적지 않은 기사들이 동조했다. 천야오예 9단의 경우 “양딩신, 나는 너를 지지한다. 내가 느끼기에도 진짜 실력이 아닌 것 같아”라고 썼다.
리쉬안하오는 대응하지 않았다.
양딩신은 멈추지 않고 또 글을 올렸다.
“조용히 있으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LG배 결승 대국도 치를 수 없게 한다고 한다.”라고 쓴 뒤 “다시 입을 열겠다”고 했다.
위빈 중국국가대표팀 감독이 양딩신에게 주의를 주었다. ‘1인미디어에서 민감한 주제에 대한 참여하거나 부적절한 발언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한다.’는 [바둑국가대표팀 규정 4조]를 따르라는 것이었다.
중국바둑협회는 대회관련 운영진·현장스태프 그리고 참가 선수를 대상으로 조사 및 면담을 실시하였고 현장 모니터링 기록을 검토했으나 부정행위가 발생하지 않았음을 확인했다고 12월30일 밝혔다.
▲ 리쉬안하오(왼쪽)와 양딩신.
양딩신은 앞서 위빈 감독이 제시한 규정에 따라 징계를 받았다. ‘6개월 출전 정지’였다. 양딩신은 중국바둑협회, 중국국가대표팀, 리쉬안하오에게 사과했다. 이렇게 치팅 논란은 마무리됐다.
그러나 ‘했다’ ‘안했다’로 나뉘어 논쟁하던 사람들은 아직 시원한 느낌을 받지 못한 것 같다. 앞으로 불필요한 치팅 이슈가 나오지 않도록 대국 환경을 좀 더 철저히 구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두 사건에서 양딩신이나 망누스 칼센의 의혹 제기는 처음부터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증거를 제시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또 대회운영조직이 선수가 부정행위를 했는지를 조사했지만 이 조사 자체가 완벽한지 확신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었다.
더구나 세월이 지날수록 기술이 발달하고, 이에 따라 치팅에 사용가능한 장비도 사용하기 쉬워질 테니 치팅을 방지하는 것은 더욱 어려워진다.
현재 프로 바둑대회엔 금속탐지기 검사 절차가 있다. 전자기기 소지도 금지된다. 화장실도 단속한다. 그럼에도 점점 더 철저하고 엄격한 환경이 절실하다.
한국기원 기전운영팀의 김은지 팀장은 “한국기원은 대국 시 심판을 보조하는 부심을 운영하고 대국장 입장 시 금속탐지기를 이용한 검색, 대국 전 화장실 검색, 실시간 카메라로 현장 상황 공유, 대국자 화면 및 마우스 움직임 녹화 등을 실시하고 있다. 그것이 기준이 되어 해외 주최 대회들도 동일하게 진행하게 됐다.
이번에 중국에서 치팅 논란이 일어난 것과 관련해 한국기원은 공정한 대국 환경을 위해 경비관련 업체 및 각국 기원과 함께 공동으로 협의하여 대책을 세울 예정이다.”라고 했다.
또 이를 위해 “중국 측에는 한층 강화된 철저한 사전 검색을 요청하고 부심도 추가로 배치해 달라고 할 것이다. 또 필요 시 한국기원 직원을 현장에 파견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점차 다양해지고 치밀해질 수 있는 치팅을 방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파 차단, 전파 탐지를 포함한 여러 가지 방안을 강구하고 테스트하고 있지만 법률적 문제와 부딪히는 등 현실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난관이 있다. 무엇보다 치팅이 어려운 공개적 장소를 경기장으로 선정하는 걸 우선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