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로기사로서 세계 포커챔피언에 오른 차민수 六단의 스토리는 드라마 자체다. 실제 <올인>의 실제 모델로 드라마화 된 바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종종 잊는다. 승부세계에서 어느날 갑자기 짠~ 하고 등장하는 혜성은 없다는 것을. 그렇게 보일 뿐 그 혜성이 어둠 속을 헤치고 날아온 긴 궤적은 간과한다.
<들어가며>
이 글은 ‘SERI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양상국 九단이 ‘바둑, 경영을 만나다’란 주제로 바둑이 지니고 있는 경영적인 요소에 대해 강의한 내용입니다. 최근 사이버오로에서 <양상국 바둑사랑 55년>을 발간하면서 전편(총 15편)을 실은 바 있고, 이 가운데 월간『바둑』의 요청으로 강의 일부를 발췌해 소개한 적도 있습니다.
‘바둑과 경영’이란 큰 카테고리로 묶은 글이기는 하나 내용은 조훈현이나 조치훈, 이창호 같은 세계적인 기사들의 승부에 얽힌 에피소드와 바둑동네의 생생한 이야기를 곁들여가면서 바둑 속에 들어 있는 경영적인 면모를 살펴보는 것이므로 나름 읽는 맛이 있을 겁니다. 이미 많이들 알고 계신 내용일지언정 이 연재를 통해 바둑사를 반추하면서 긴 설연휴를 즐기시기 바랍니다. 사이버오로 회원을 위해 10편을 골라 명절연휴 기간 연재합니다.
모쪼록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 사이버오로 임직원 일동 배례(拜禮).
○● 설특집/ 바둑과 경영 (1) 프로정신에서 기업가정신을 배운다 - 후지사와 九단의 “4판만 이긴다!” ☜ 클릭
○● 설특집/ 바둑과 경영 (2) 프로정신에서 기업가정신을 배운다 - 조치훈 九단의 “목숨을 걸고 둔다!” ☜ 클릭
○● 설특집/ 바둑과 경영 (3) 프로정신에서 기업가정신을 배운다 - 조훈현 九단의 기풍변화와 기업혁신 ☜ 클릭
○● 설특집/ 바둑과 경영 (4) ‘오뚝이’ 서봉수 九단의 도전정신 - 조훈현 九단의 기풍변화와 기업혁신 ☜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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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강> ‘차 8강’의 신화는 우연이 아니었다!
“공부하라!” 차민수 六단의 생존법
1989년 5월초, 제2회 후지쓰(富士通)배가 열린 일본기원. 공개해설장을 꽉 메운 일본 바둑팬들은 다음과 같은 장내 여자 아나운서의 흥분된 목소리에 쓴웃음을 지어야 했습니다.
“지미 차 四단은 한국의 대학생 대표선수로 활약하다 74년 한국기원에 입단 후 곧 미국으로 갔기 때문에 15년이나 승부바둑을 떠나 있었고, 四단 단위도 해외 바둑보급의 공로로 한국기원이 84년 인정한 것이라 합니다. 원래는 初단이라는데, 그런데 그 사람한테 우리 일본의 강한 九단 2명이 졌습니다.”
미국대표로 출전한 한국계 ‘지미 차(車)’가 일본의 정상급 九단 두 명을 연파하고 당당히 8강에 진출하는 경악스런 사건이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1회전에서 야마시로(山城 宏) 九단에게 완승을 거두고 16강에 진출했을 때만 해도 공개해설장에서 해설을 하던 다케미야 九단이나 팬들은 내심 당황하면서도 한편 “호오, 이것 봐라, 재미있다”는 표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이틀 뒤 또다시 오히라(大平修三) 九단까지 완파해버리자 난리가 났습니다. 미국 단장으로 동행한 극작가 조남사 씨 표현대로 “바둑세계에선 영어로 표기된 이름이 한자로 표기된 이름을 꺾는 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기에 더욱 법석이었지요.
▲ 일본바둑계로선 이야말로 사람이 개를 문 기막힐 뉴스였다. 대만이 응씨배를 창설한다고 하자 이에 앞서 그들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급조한 대회가 후지쓰배였다. 명색 최초의 세계바둑선수권전이라 구색을 갖춰야겠기에 2회 대회부터는 엔트리를 24명으로 늘려 아메리카 대륙에도 한 장의 티켓을 주었는데 미국대표로 출전한 차민수라는 한국계 기사가 1회전에서 야마시로(山城 宏) 九단을, 2회전에서 오히라(大平修三) 九단을 연짝 날려버리는 '대형사고'를 저질러버렸으니. (사진은 2회전에서 오히라 九단과 맞선 차민수 四단(오른쪽).
지미 차가 바로 차민수입니다. 현재 六단이지만 당시 단위는 四단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알고 계시는 드라마 <올인>의 실제 모델로 유명한 그 사람이지요. 후지쓰배 역사상 최대의 이변을 일으킨 차민수 四단은 1년 뒤 제3회 대회에서도 또다시 8강에 올라 2년 연속 일본 열도를 발칵 뒤집어놓았습니다. 이때 꺾은 사람이 누군지 아십니까? 일본바둑의 일인자 조치훈 九단이었습니다. ‘차 8강’이란 별명은 이때 얻은 것이지요.
무려 15년여나 ‘진검승부’를 떠났던 사람, ‘무명의 初단 기사’라는 표면적인 데이터로만 차민수를 들여다보면 ‘차 8강’의 도식은 나오지 않습니다. 만화스토리 같은 차민수의 신화는 그가 평소에 승부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 어떻게 정보를 수집했고 최신 바둑의 흐름과 일류기사들의 전력을 얼마만큼 연구했는지 살펴볼 때 해독이 가능합니다.
▲ 지미 차의 대형사고는 1989년 한번에 그치지 않았다. 다음해 1990년 제3회 후지쓰배 세계바둑선수권 16강전에서는 당대 일본바둑 일인자 조치훈 九단을 꺾는 기염을 토했다. 한국기원 공식 初단에 불과한 아메리카의 무명기사가, 그것도 일찌감치 바둑 진검승부에서 떠난 四단 보급기사가 일으킨 태풍이었다. 바둑사에 길이 남을 대이변 중 한판이다.
“살기 위해선 공부하는 수밖에 없다”
LA에 있는 차민수 六단의 집을 방문한 사람들 얘기에 따르면 그의 저택에는 석 대의 팩시밀리가 있었다고 합니다. 각각 한중일 기전의 기보를 전송받기 위한 전용 팩시밀리였답니다. 바둑강국인 한중일 세 나라에서 오늘 두어진 대국이 내일아침이면 각국의 지인으로부터 그때그때 전송됩니다. 80년대는 아직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은 때라는 걸 헤아려야 합니다. 비록 몸은 승부세계의 도산검림(刀山劍林)에서 비껴 있었어도 평소 그의 정보력과 바둑공부가 어떠하였는지 짐작케 하는 대목입니다.
차민수 六단은 영등포의 극장주 막내아들로 태어나 방탕한 황태자시절을 보낸 금수저 집안의 자제입니다. 집안에서 쫓겨나다시피 미국으로 건너간 뒤 한때 마약에 빠지고 이혼을 겪으며 밑바닥 인생까지 경험한 사람입니다. 사실 프로기사로서보다는 세계적인 포커플레이어로 더 유명합니다.
포커는 75년 처음 미국으로 건너갔을 때 심심풀이로 라스베이거스 카지노를 들락거리다가 제대로 배우게 되었다고 하는데, 그가 프로기사라는 얘기를 듣고 찾아온 캘리포니아주립대 포커학과 교수와 서로 바둑과 포커를 가르쳐주면서 눈을 뜨게 됐다고 합니다. 하지만 카지노를 출입하면서 마약에 빠졌고 결국 가정까지 파탄나고 말았습니다. 84년 두 번째로 미국으로 돌아왔을 때 전재산은 단돈 18달러와 낡은 캐딜락 한 대뿐이었다고 합니다.
그가 직접 들려준 이야기 중엔 이런 거짓말 같은 일화도 있답니다.
국경지대에서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할 때 하루는 고객과 사소한 언쟁이 벌어졌는데 하필이면 그 상대가 지역 갱단 보스였던가 봅니다. ‘아이고 난 이제 죽은 목숨이로구나.’ 떨고 있는데 한국계인 줄 알아본 상대가 “태권도 할 줄 아냐?”고 묻더랍니다. 대한민국 남자치고 군대에서 태권도 배우지 않은 사람 어디 있겠습니까. 안다고 했더니 한 키는 족히 훌쩍 넘어 보이는 나뭇가지에 걸린 벌집을 가리키며 “저걸 차서 떨어뜨리면 용서하겠다”고 하더랍니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두 눈 질끈 감고 죽기 살기로 냅다 뛰었는데 자신도 믿기 어려운 광경이 펼쳐졌고, 그 일로 갱단 보스의 태권도 사범노릇까지 한 웃지 못할 사건도 있었다네요. 이때의 경험은 죽을 각오로 덤비면 못할 것이 없다는 사즉생(死卽生)의 승부정신을 일깨웠고, 미국에서 겪은 바닥생활은 “깨져봐야 성공한다”는 도전정신을 심어주었다고 합니다.
▲ 차민수 六단은 무술에도 일가견 있었다.
두 번째로 미국에 건너간 80년대 중반 그의 포커 실력은 바둑으로 치면 강(强) 1급 정도였습니다. 그 실력으로는 카지노 전속 플레이어로 취직해 연 5만 달러 언저리를 벌 수 있는 수준이긴 하였으나 톱클래스로 인정받기에는 역부족이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그의 주종목은 ‘파이브 카드 드로(Five card draw)’라는 게임이었는데 그 무렵 ‘스터드(Stud)’나 ‘홀덤(Holdem)’ 게임이 대세를 이루면서 큰 고비를 맞았답니다. 그때 위기를 느껴 찾아간 포커 고수에게서 “그 실력으로는 먹고살기 힘드니 공부하라”는 말을 듣고선 ‘살기 위해선 공부하는 길밖에 없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합니다.
이후 집 전화번호까지 잊을 정도로 이론과 실전에 몰두해 3년 만인 88년 그의 수입은 100만 달러를 넘어섰고 그해 세계포커대회 홀덤 부문에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그 뒤로 10년 동안 그는 부동의 1위였고 평균 승률이 9할에 이를 정도로 타의 추종을 불허했지요.
3년 만에 빈털터리에서 백만장자가 된 비결에 대해 차민수 六단은 “세계적인 고수를 통해 내 실력이 보잘 것이 없다는 것을 절감했다. 태어날 때 그 실력을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많은 공부와 힘든 과정을 통해 실력을 키우려고 노력했다”고 말합니다.
▲ 1996년 세계 포커챔피언에 오른 차민수 六단. 600만 달러의 실제 금화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아래 사진은 차민수 六단을 모델로 드라마화한 <올인>의 한 장면. 배우 이병헌이 차민수 역을 연기했다.
차민수 六단은 1986년경부터 1997년까지 10년간 포커 상금랭킹 1위를 기록했습니다. 대략 1년에 400만 불씩 벌은 셈인데, 그 당시 환율로 50억 정도를 11년이나 벌어들인 포커계의 고수였습니다. 그는 포커와 바둑 양쪽에서 승부를 해본 사람으로서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바둑은 넓게 볼 줄 알아야 한다고. 넓은 시야를 갖는 게 중요하다고.
“큰 세상을 볼 줄 알아야지. 큰 세상을 보고 온 사람이 바둑이 느는 거야. 내가 미국대표로 후지쓰배에 나갔을 때도 바둑을 십사오 년을 안 뒀거든. 둬 봐야 프로하고 1년에 한 판 정도 뒀나? 근데 그동안 바둑이 늘었어. 서봉수가 나보고 바둑이 늘었다고 그러더라고. 바둑판 앞에만 앉아있다고 실력이 느는 게 아니야. 넓은 시야를 갖는 게 중요하지. 바둑도 그렇고 포커도 그렇고 끝을 모르겠어. 참 무궁무진하지. 그래서 재미있고.”
차민수 六단의 포커 승부방법은 6대4로 유리한 기회가 왔다 싶을 때 ‘올인’ 하는 패턴이라고 합니다. 7할의 승률에 목표를 맞추고 7할에 해당하는 요소가 갖추어지면 즉시 실행에 옮긴다는 소프트뱅크사 손정의 회장의 경영법을 떠올리게 합니다. 승부나 사업이나 5할에 승부를 거는 것은 어리석다는 거지요. 포커 승부에서도 차四단은 위험에 노출시키는 것을 4할 이하로 억제하고 있음을 우리 경영자들은 눈여겨보아야 합니다.
빌 게이츠는 “살아남기 위해 학습하라”고 말합니다. 학습은 또한 자만에 빠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며 실수를 범하지 않도록 보호해 주는 최고의 장치라고 강조합니다. 이기기 위해 매순간 최선의 수를 선택해야 하는 승부사나 생존을 위해 늘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최고경영자는 비슷한 처지입니다. 이 점에서 끊임없이 공부하고 준비하며 시대 트랜드에 맞게 변신한 차민수 六단의 생존법과 승부방법은 우리에게 교훈을 줍니다. ‘차 8강’의 신화는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