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남은 자존심은 지켜내고야 말았다!

7월 18일 한국기원 특별대국실에서 벌어진 제41기 KT배 왕위전 도전5번기 최종국에서 이창호 9단이 윤준상 9단을 물리치고 종합전적 3승 2패로 왕위 12연패를 이뤄냈다.

4국까지 백번필승을 달려왔던 두 기사였기 때문에 누가 백을 잡을지도 시작부터 관심거리였다. 12연패에 대한 간절한 열망이 전해졌을까? 돌을 가린 결과 윤준상 6단이 백돌개수를 맞추면서 이창호 9단이 백을 들게 됐고 최종국은 예상외로 상당히 빠른 흐름을 보였다.

도전기 내내 그래왔듯이 윤준상 6단의 마지막 코드는 역시 두터움이었다. 미리 구상하고 온 듯 미니중국식 포석을 주르륵 펼쳐 보이더니 시종일관 두터운 행마를 꺼내들며 중후반을 대비해 나갔다.

윤준상 6단의 두터움에 맞서 이창호 9단이 빼내든 카드는 선실리 후타개 작전. 종반 끝내기까지 감안한다면 국면을 차분하게 운영하지 않을까했지만 피한방울 안 나올 만큼 철저한 실리바둑으로 나가자 검토실에 모인 기사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기도 했다.



두터움과 실리가 잘 어울린 가운데 승부처는 비교적 일찍 찾아왔다. 사이버오로 해설을 맡은 윤성현 9단은 102수가 두어진 시점에서 중앙 흑모양과 좌하 백집을 헤아리며 미세한 바둑이 될 것 같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4판 모두 종반 끝내기싸움으로 우열을 가렸던 윤준상 6단이기에 이러한 예상은 틀릴 것이 없으리라 봤지만 윤준상 6단은 돌연 검토실을 화들짝 놀라게 할 만한 수를 던졌다.

윤준상 6단이 선택한 수는 우상귀부터 뻗어 나온 백대마를 모두 다 잡으러 가는 수. 위험을 무릅쓰고 둔 간 큰(?) 모험이었지만 결과론적으로 윤준상 6단의 직감은 잘못된 판단이었다.

중앙이 깎여 들어가는 뼈아픈 손해도 마다하지 않고 백대마 공격에 모든 것을 올인했지만 이창호 9단의 대마는 쉽사리 잡히지 않았다. 이창호 9단은 흑의 포위망을 교묘히 헤집더니 외줄타기와 같은 아슬아슬한 수순으로 사활패를 만드는데 성공한다.
패가 나서는 승부도 끝이 났다. 이창호 9단은 팻감계산을 모두 다 마쳤다는듯 자체팻감과 바깥으로 나가 살자는 팻감을 쉼없이 던지면서 백대마를 구출하게 됐다. 윤준상 6단으로선 도전기 동안 보여준 끈끈한 승부호흡이 온데 간데 없이 사라져 버린 허무한 일국. 220수 끝 백불계승

이로써 왕위의 주인공은 올해도 변함없이 이창호 9단으로 결정되었다. 얼마 전 전자랜드배 최종국에서 강동윤 5단에게 다 잡은 승리를 놓쳐 충격이 클 것으로 예상됐으나 마지막 남은 타이틀인 왕위를 끝내 사수하며 12연패 대위업을 달성했다.

이창호 9단으로선 이번 왕위전까지 잃게 됐다면 크나큰 위기에 부딪칠 뻔 했다. 1989년 KBS바둑왕전 타이틀을 획득한 이후 지금까지 한 번도 무관이었던 적이 없었던 그가 18년 만에 아무런 타이틀이 없다는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질 뻔한 것이다.


국수에 이어 왕위까지 쳐들어 와 강력한 세대교체를 외쳤던 윤준상 6단은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줬다. 윤준상 6단은 이번 왕위전까지 상대전적 5승 6패로 이창호 9단과 대등하게 맞서 싸우면서 포스트 선두주자로의 입지를 확고히 했다. 윤준상 6단은 현재 한국랭킹 8위에 랭크돼 있으며 33승 16패의 전적을 기록하고 있다. 왕위전을 준우승하면서 다음달 한국랭킹도 상향조정될 것으로 보인다.

중앙일보사에서 주최하고 KT가 후원하는 왕위전은 각 2시간 1분 초읽기 5회이며 우승상금은 4천8백만원, 준우승상금은 2천만원이다.

한 눈에 쏙! 한 줄 관전기!
해설: 윤성현 9단

1) 이 바둑의 감상포인트는 이창호 9단의 철저한 실리작전이었습니다.
2) 초반에 충분히 실리를 확보한 이후에도 백64, 70으로 더 강하게 실리를 챙겼죠.
3) 결과적으로 흑은 실리 부족으로 105의 강타를 날리며 대마사냥을 가게 됐습니다.
4) 이창호 9단이 168로 패를 버티면서 중앙 백대마를 살리게 되면서 승부가 결정났습니다.

톡톡 토크~!

햐, 살다보니 이창호가 무관된다는 얘기도 듣는구나. 세월이 가긴 갔어~

-생중계를 감상하던 한 유저가 채팅창에 던진 말

윤국수가 이겼어도 개운치 않았을거야. 가뜩이나 무관이 되느냐 마느냐가 화제거리인데 자청해서 도마위로 올라가겠어?

- 검토를 지켜보던 모 프로기사가 농담으로 던진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