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의 '뚝심' 미위팅
대륙의 '뚝심' 미위팅
중국 ‘90후’ 대표기사 5인 기풍탐구(5)
[기획/특집]
  • 우동하|2014-03-02 오전 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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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세계바둑계 판도는 2013년도를 돌아볼 때 한국의 바둑이 주춤한 시기에 중국의 신진 기사들이 득세하면서 완연히 중국으로 주도권이 넘어간 해라고 할 수 있다.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태(百戰不殆)’ 즉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말이 있듯이 사이버오로에서는 중국 신예기사들의 기풍을 탐구하는 특집을 마련했다. (평소 기풍연구에 남다른 관심을 보이고 있는 우동하 아마7단이 분석한 기보를 바탕으로 구성한 글입니다.)

설 전후로 한달간 소개한 사이버오로 특집-‘중국 신예강자 5인’에 대한 기풍탐구 순서는 다음과 같다.

1편. 스웨 9단(91년생)
- 2013년 LG배 우승 (대 원성진 2:0)
- 배태일 산정 세계랭킹 1위(2014년 1월 현재)
○● 스웨(상) 바로보기 ☜ 클릭
○● 스웨(하) 바로보기 ☜ 클릭

2편. 탕웨이싱 9단(93년생)
- 2013년 삼성화재배 우승 (대 이세돌 2:0)
- 배태일 산정 세계랭킹 10위
○● 무명에서 혜성같이 '탕웨이싱' ☜ 클릭

3편. 탄샤오 7단(93년생)
- 2014. 1월 현재 중국랭킹 10위
- 배태일 산정 세계랭킹 12위
○● 잠자는 ‘괴물’ 탄샤오 ☜ 클릭

4편. 판팅위 9단(96년생)
- 2013년 응씨배 우승 (대 박정환 3:1)
- 배태일 산정 세계랭킹 15위
○● 대륙의 ‘돌부처’ 판팅위 ☜ 클릭

5편. 미위팅 9단(96년생)
- 2013년 몽백합배 우승 (대 구리 3:1)
- 배태일 산정 세계랭킹 16위





▲ 제1회 몽백합배 결승5번기에서 구리 9단을 3-1로 꺾고 우승한 미위팅(오른쪽). 사진은 결승4국 모습.

중국의 ‘95후’ 신예강자들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하고 있지만 이창호 9단의 세계대회 최연소 우승기록은 아직 건재하다. 1992년 제3회 동양증권배에서 16세 6개월 만에 우승했을 때 적어도 50년 안에는 결코 깨지지 않을 기록으로 보았으나 지난해 중국의 판팅위 9단이 16세 7개월 만에, 그러니까 단 한달 차이로 응씨배를 석권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터미네이터 같은 대륙의 ‘소년기사’들이 속속 출현하고 있는 상황에서 누가 감히 장담할 수 있으랴. 지난해 1회 몽백합배를 제패한 미위팅(芈昱廷) 9단도 이런 소년기사 출신 중 한명이다.

미위팅은 판팅위와 동갑(96년생)이다. 미위팅은 1월생, 온살배기고 판팅위는 8월생이다. 게다가 미위팅이 우승한 1회 몽백합배 결승이 지난해 12월에야 끝난 탓에 17세 11개월 만의 우승에 그쳤지만(이 기록도 대단한 거지만), 미위팅 또한 판팅위처럼 일찍이 중국 갑조리그에서 ‘소년장수’로 맹위를 떨치며 일어서 단숨에 세계대회를 석권한 기사다.

‘16세 미위팅, 구리를 베다!’
'장쑤성의 16세 신성이 구리를 베어 말에서 떨어뜨렸다!'


2011년 5월22일자 중국 양쯔완바오는 갑조리그 4회전에서 장쑤의 소년기사 미위팅(다렌팀)이 충칭팀의 구리 9단을 주장전에서 이겨 4연승을 내달리자 이를 크게 보도했다. 제목은 16세라고 뽑았지만 정확하게는 15세 4개월의 나이였다.

<1996년 1월8일생으로 장쑤성 출신이다. 현재 장쑤바둑팀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고 국가소년대에서 훈련을 받고 있다. 11세에 중국 최연소 프로기사로 입단했고 12세부터 청소년 대회서 우승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2009년 1월 미위팅은 제3회 이광배 신예기전에서 우승했고, 11월 청두에서 열린 제1회 전국 마인드스포츠대회(지력운동회) 청소년 바둑부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2010년 2월에는 장쑤팀의 대표로 선발되어 을조리그의 우승을 이끌었다.>

2010년 을조리그에서 팀 우승을 견인한 공로로 2011년 갑조리그 선수로 뛰기 시작했는데 놀라워라, 이 소년 앞에 무릎을 꿇은 정상급 기사는 구리 9단만이 아니었다. 이 해 7월2일까지 파죽의 9연승을 거두었는데, 9연승의 희생양은 당시 중국랭킹 1위 저우루이양 5단이었다. 9연승 중에는 이처럼 주장전이 여러 판이었기에 결코 가벼이 볼 승수가 아니었다. ‘15세 미위팅, 9연승 기적’이란 표현이 나올만했다. (미위팅의 10연승을 저지한 기사는 시안팀의 한국용병 최철한 9단이었다.)

2011년이면 여전히 구리 9단이 체감상 중국바둑 일인자로 대접받던 때다. 어쩌다 한번 이길 수는 있다. 그런데 2011년 갑조리그에서의 첫 대결 이후 2012년에도 중신은행배와 갑조리그에서 또다시 이겨 3연승을 거두었다면, 이건 보통 ‘물건’이 아닌 것이다. 구리는 이후 2013년 말 몽백합배 결승1국에서야 가까스로 첫승(그것도 반집 대역전승)을 올렸을 뿐 다시 내리 3패를 당하며 우승컵을 내줘야 했다.

2011년 중국 갑조리그에서의 활약을 발판으로 미위팅은 2012년부터 국제무대에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 3월12일 1회 바이링배 본선64강에 진출했지만 이 정도로는 주목받을 수 없었다. 그런데 바로 여드레 뒤 4회 비씨카드배 본선에서 박정환(64강전)과 이창호 9단(32강전)을 차례로 꺾고 일약 16강까지 올라 깜짝 놀라게 했다. 그리고 가을(9월5일)에는 삼성화재배에서도 본선16강에 올라 우연이 아니었음을 입증했다.

이 기세를 타고 21일 후에는 중국 전국개인전을 석권해 첫 본격 타이틀을 허리에 감는 기염을 토했다. 전국개인전이 우승자에게 후지쯔배 출전권을 주던 때에 비하면 다소 인기가 떨어졌다지만 여전히 일류기사들이 참가하는 대회로 우리나라의 천원전처럼 신예들의 등용문으로 통하는 기전이다. 놀랍고 눈부신 약진이었다.

미위팅은 96년생 동갑내기인 판팅위와 같이 두각을 나타냈다. 급부상하기까지 행적도 비슷하다. 하지만 주목받는 쌍두마차로서 판팅위에 견줄 때 성적이 처졌다. 한걸음 정도 판팅위가 앞서 걸었다는 느낌? 돌고래처럼 크게 한번 수면 위를 박차고 올랐지만 2013년 미위팅의 국제무대 성적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2013년 상반기 판팅위가 응씨배를 우승하며 상한가를 쳤지만 미위팅은 여름(7월) 4회 인천 실내&무도 아시안게임 바둑 혼성페어 동메달, 남자단체 은메달을 수확한 것이 고작이었다. 개인전에서는 선배 탕웨이싱(금)과 탄샤오(동)에게 밀려 출전권을 얻지도 못했다.

아다시피 인천 실내&무도 아시안게임은 한중 양국이 정예이긴 하지만 신예들을 내보낸 대회였다. 이런 무대에서조차 전면에 나서지 못했으니, 때이른 평가이긴 하나 얼핏 탄샤오처럼 ‘반짝 행마’가 아니냐는 시각도 있었다. 탄샤오는 일찍이 국제무대에서 괄목할만한 활약을 펼친 데 힘입어 국내(중국) 랭킹1위까지 올랐으나 이후 기대만큼 전진(세계대회 우승)하지 못하고 1~2년 새 주춤대고 있다(아직 성장중인 기사라 더 지켜봐야겠지만). 몽백합배 하나를 빼면 2013년 연말까지 미위팅의 성적은 그만큼 눈에 띄지 않은 탓이다.


▲ 미위팅은 2012년 4회 비씨카드배 본선64강에서 박정환을, 32강에선 이창호 9단을 차례로 꺾고 16강에 진출하면서 국제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하지만 ‘반짝이’라 하기엔 탄샤오(93년생)보다 미위팅은 나이가 세살이나 어렸고, 무엇보다 7월 실내&무도 아시안게임 폐막 사흘 후 열린 1회 몽백합배 본선무대에서 보란 듯이 승승장구했다. 64강전에서 강동윤을, 32강에서 이세돌을 꺾는 등 한국의 간판스타들을 뉘며(한국은 16강전에서 전멸) 기세를 올리더니 다시 8월 16강에서 쿵제를, 8강에서 당이페이를, 4강에서 왕시를 차례차례 제압하면서 결승에 올랐다. 결승에서도 구리 9단에게 1패 후 3연승을 거두며 ‘천적’임을 과시했다.

몽백합배 우승, 이 농사 하나로 2013년 상반기 부진했던 미위팅의 존재감을 여실히 드러냈다고 평가하기보다 이 우승이 미위팅시대의 출발점이라고 보는 게 맞다.

미위팅은 판팅위와 더불어 중국신예 '투톱'으로 불리는 유망주다. 미위팅은 판팅위의 세계대회(응씨배) 우승이 자극이 됐다고 말했다. 조훈현-서봉수처럼 동갑(호적으로는 53년생 동갑, 실제나이는 조훈현 9단이 한 살 위) 라이벌을 두었다는 건 승부세계에서 아픔이기도 하겠지만 서로 자극하고 경쟁하는 가운데 큰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측면에서 엄청난 행운이다.

중국 갑조리그에서 “15세밖에 안된 소년이 어떻게 이런 승리를 거둘 수 있었을까?”라고 묻는 기자에게 일찍이 소년은 이렇게 답했다. 승부사에게 이 외 더 요구되는 게 있을까.

“고수와의 대국을 두려워하지 않아요. 내 눈에는 오직 바둑밖에 없어요!”


▲ 사진/ [위기천지]

미위팅(芈昱廷) 9단

1996년 1월08일 장쑤성(江蘇省) 태생
2007년 입단

2012년
03.12 제1회 바이링배 본선64강 진출
03.20 제4회 비씨카드배 본선16강 진출
09.26 전국 개인전 우승
09.05 2012삼성화재배 본선16강 진출

2013년
07.05 제4회 인천 실내&무도 아시안게임 바둑 남자단체 은메달
12.06 제1회 몽백합배 우승(대 구리 3-1) 9단 승단



기획특집 - 중국 ‘90후’ 대표기사 5인 기풍탐구(5)
대륙의 ‘뚝심’ 미위팅

미위팅 9단은 제1회 몽백합배 결승5번기에서 대선배인 구리 9단을 맞아 첫판을 내주고도 내리 3승을 거두며 우승했다. 번기에서 첫판은 심리적 흐름에 큰 영향을 미친다. 세계무대 결승5번기 경험이 전무한 신인인 데다 상대가 상대인지라 이렇게 첫판을 빼앗기면 기가 꺾이기 예사인데 어린 나이에도 큰 무대에서 떨지 않고 역전 우승했다. 이 모습에서 미위팅의 뚝심을 볼 수가 있었다.

미위팅의 기풍은 두텁게 실리를 기본 바탕으로 하되 힘으로 상대를 누르려는 모습을 보인다. 바둑을 바라보는 관점도 다른 기사들과는 좀 다르다. 미위팅의 이러한 기풍은 한국의 김지석 9단과 닮은 점이 많다. 기본적인 기량이 뛰어나고 상대에게 나쁜 모양을 강요하는 힘, 그것이 미위팅 바둑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겠다.


1. 걸침에서 드러나는 기풍

<장면1> 제1회 몽백합배 통합예선 ●미위팅 ○강승민 흑불계승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초반의 걸침 하나에서도 그 사람의 기풍을 엿볼 수 있다. 판을 짜나가는 스타일에 따라 걸침의 종류(선택)도 달라지는 것이다.
미위팅의 흑번. 백8의 자리에 돌이 있을 때는 흑은 9의 눈목자로 걸쳐가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면 백24까지 예상할 수 있다.

▼ <장면1>


<장면1-1>
흑9의 눈목자걸침에 백이 무난하게 둔다면 이런 진행도 예상된다.

▼ <장면1-1>


<장면1-2>
그런데 미위팅 9단의 선택은 흑1의 한칸걸침, 그리고 재차 흑5의 한칸걸침이었다. 백△의 곳에 돌이 있을 때는 흑5의 걸침이 다음 백6 협공을 당해 불리하다고 알려져 있다. 해서 잘 안두는 수법인데...

▼ <장면1-2>


<장면1-3>힘이 좋은 미위팅은 흑1~15까지, 싸움을 통해 충분히 둘 수 있다고 판단한다.

▼ <장면1-3>


<장면2> 제1회 몽백합배 64강전 ●미위팅 ○강동윤 흑불계승
앞의 판과 비슷한 진행으로 한국의 강동윤 9단과 벌인 일전이다.
백2,4의 향소목 포진에 흑5,7이 이색적인 걸침으로, 초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적극적으로 걸쳐가는 수법을 쓰고 있다. ‘힘’에 대한 자신감이 깔려 있지 않다면 손쉽게 쓸 수는 없는 수법이다.

▼ <장면2>



2. 미위팅의 힘

<장면3> 제1회 몽백합배 32강전 ●이세돌 ○미위팅 백불계승
초반부터 힘겨루기가 한창인 국면. 흑1과 백2 교환 후 흑3으로 큰 자리를 두자 백은 4로 다가서 흑5를 지키게 한 다음 백6에 붙여갔다. 미위팅의 독특한 감각이다. 좌변이나 상변에 보이는 한눈에 들어오는 큰 자리보다 중앙에서의 힘겨루기를 선택한 것이다.
좌하변이 커지자 흑15로 걸쳐왔따. 자, 여기서 백의 다음 한수는 어디였을까?

▼ <장면3>


<장면3-1>
보통의 감각은 A 방면의 협공, 또는 B, C로 좌하귀에서 응수하는 것이 일감이다. 하지만 미위팅의 선택은 ‘힘의 한수’ 백1! 힘을 비축하는 두터운 한수로 D의 단점을 노리고 있다.

▼ <장면3-1>


<장면3-2>
백1에 흑2는 기세! 백3이 노림이 있는 수로 흑4로 받으면 백5, 흑6의 교환이 축머리가 되어 즉각 백7의 단점을 끊어가겠다는 얘기다.

▼ <장면3-2>


<장면3-3>
해서 실전은 흑2로 받고 10까지 두었는데, 다음 백11로 약점을 들여다본 수가 호착이었다. 고분고분 응대할 수가 없어 흑12로 반발하며 백을 갈라갔는데 이어진 백13,15가 또 좋은 수다. A의 곳에 막는 것과 B의 축머리가 맞보기가 되었다. 어린 비둘기는 험산을 넘기 어렵다지만 미위팅은 이 바둑을 이기고 욱일승천의 기세로 우승까지 차지했다.

▼ <장면3-3>


<장면4> 2013 중국갑조리그 14R ●최철한 ○미위팅 백불계승
최철한 9단이라면 항우를 연상케 하는 장사 중의 장사. ‘독사’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버티는 힘과 조여붙이는 힘이 강한 기사다. 이러한 상대를 만났을 때 진정 완력의 정도를 가늠할 수 있다. 한국과 중국을 대표하는 두 명의 ‘힘바둑’이 중국 갑조리그에서 만났다.

흑1로 바짝 다가섰다. 그러자 백2, 흑3을 교환한 뒤에 둔 백4가 상대를 힘으로 누르려는 수. 미위팅의 힘이 느껴지는 한수다.

▼ <장면4>


<장면4-1>
백1에 흑2 이하로 받는 것은 기세에서 눌리는 모습. 프로라고 한다면 이렇게 밑으로 받아줄 사람은 없다. 게다가 상대는 최철한이다.

▼ <장면4-1>


<장면4-2>
흑4,6으로 나와 끊은 것은 기세다. 백13까지, 부분적으로는 백이 성공을 거뒀다. 그렇지만 다음 흑14로 나가게 되면 국면이 상당히 어지러워진다. 이어 백이 A로 단수 친다면 흑은 B의 곳을 두어 두점을 연결하는 수와 하변 흑C로 모는 축머리를 맞보는 양수겸장이 있다.

▼ <장면4-2>


<장면4-3>
이런 연유로 미위팅은 백1~7로 두었고, 서로 어려운 진행이 되었다. 관록의 맹장과의 일전에서도 전혀 위축되거나 밀리지 않고 장판교를 버티고 선 장비처럼 힘자랑을 하는 미위팅이다.

▼ <장면4-3>


<장면5> 제1회 몽백합배 결승3국 ●구리 ○미위팅 백불계승
결승1, 2국을 번갈아가며 주고받아 1:1의 스코어. 우승을 가늠하는 분수령이다. 이 한판을 누가 가져가느냐에 따라 흐름이 달라지기에 초반부터 우세를 잡으려는 힘싸움이 한창이다.

백1~9까지 우상변에서 전투가 시작되었다. 흑10이 넘는 수를 엿보는 끈끈한 한수로 백의 다음 응수가 어렵다.

▼ <장면5>


<장면5-1>
백1의 한칸뜀은 무난하지만 싱거운 모습이다.

▼ <장면5-1>


<장면5-2>
미위팅의 선택은 백1의 날일자. 흑2로 건너붙여 올 것이 뻔히 보이기 때문에 힘이 없다면 백1은 두기 어려운 수이다. 백17까지 중앙에서 힘겨루기가 시작되었다.

▼ <장면5-2>


<장면5-3>
흑1로 이은 것은 응수타진이다. 이에 백2로 꼬부린 수가 좋은 선택으로 다음 흑3,5로 나와 끊어 싸운다면 백16까지 일사천리로 진행한 뒤-

▼ <장면5-3>


<장면5-4>흑1 이하 백22까지 약 25집 정도의 백돌을 죽이는 대신 중앙에 큰 세력을 쌓아 만족이라는 판단이다.

▼ <장면5-4>


<장면5-5>
전도의 수순 중 흑이 7의 자리로 뛰지 않고, 이처럼 흑1로 변화하는 것은 백2로 붙여간다. 이것은 흑3 이하 백16까지, 흑이 망한 모습이다.

▼ <장면5-5>


<장면5-6>
앞에서 본 변화가 불만이라고 본 구리 9단은 흑5 쪽으로 끊어갔다.
이후의 형세는 한치 앞을 알 수 없을 만큼 서로 어렵다. 이후의 진행은 <장면6>-

▼ <장면5-6>


<장면6>
얽힌 실타래처럼 어지러운 국면인데, 이런 대목에서 미위팅의 완력(수읽기)이 진가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이 대목은 [월간바둑] 1월호에(장면7까지) 소개되었으므로 그대로 옮긴다.

흑1,3으로, 일단 우하변의 백말을 흑이 사납게 공격하고 있는 모양새다. 백이 곤란해 보이는데도 미위팅의 손길은 거침이 없다. 백6을 선수한 뒤 8로 과감하게 젖힌 수! 당장 끊기면 어쩌려고?

▼ <장면6>


<장면6-1>
‘믿는 구석’은 백2의 패였다. 백은 4 방면에 자체 팻감이 부지기수이다. 이 패싸움은 오히려 흑이 무리.

▼ <장면6-1>


<장면6-2>
어쩔 수 없이 흑1로 늘었다. 그러자 백은 또다시 2,4로 패를 유도한다. 여기서도 패싸움을 피하는 것은 쉽게 살려주게 되므로 흑5를 결행했지만 백8, 빛나는 팻감이 있다.
팻감이 없는 흑으로선 11로 물러서지 않을 수 없는데, 상대는 마치 인내심을 테스트하겠다는 듯 한번 더 백12로 밀고 나온다. 이제는, 흑13은 기세. 이번에도 후퇴하면 장수가 아니다.

▼ <장면6-2>


<장면6-3>
그렇지만 백은 여전히 느긋한 모습이다. 백1,3으로 되몰아치고 7로 잇자 흑8을 생략할 수 없다. 그런 다음 백9,11로 붙여 넘어가자 우상변의 거대한 흑대마가 당장 도망가야 할 신세가 되었다. 여기가 결승3국의 분수령이었으며, 결국 결승5번기의 흐름을 결정짓는 대목이 되었다. 이 바둑을 이기면서 기세를 탄 미위팅은 내친김에 결승4국에서 승부를 마무리 짓고 세계대회 첫 우승을 거두었다.

▼ <장면6-3>


<장면7> 제1회 몽백합배 결승1국 ●구리 ○미위팅 흑반집승
이왕 몽백합배 결승전을 소개하는 김에 결승1국에서 선보인 미위팅의 ‘1선의 묘수’ 한방도 보고 넘어가자. 미위팅의 수읽기가 어느 경지인지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흑1에 패기 있게 백2로 젖히면서 피할 수 없는 수상전이 벌어졌다. 아래로 넘자고 하며 나란히 선 흑5는 수상전의 급소. 이판사판 백 역시 6의 빈삼각으로 한수라도 줄이며 차단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만 이후 흑13까지, 한눈에 보기에도 백이 곤란한 모습이다.

▼ <장면7>


<장면7-1>
백△를 살리려고 1로 붙이면 흑2 선수 후 4가 선수여서 수상전을 이길 수 없다. 그렇다고 중앙 백 넉점을 돌보지 않을 수도 없고...미위팅의 착각인가?

▼ <장면7-1>


<장면7-2>
착각이 아니다. 백1의 1선 붙임이 미위팅이 준비한 회심의 묘착. 이 수에 구리 9단은 한동안 착수를 못했다고 한다. 고심 끝에 거꾸로 흑▲ 다섯 점을 포기하고 2,4로 기수를 돌려야 했고, 고행의 추격전을 펼쳐야 했다. 특유의 흔들기로 뒷심을 발휘해 가까스로 반집 역전승을 거두긴 했지만, 패기를 앞세운 미위팅의 실력이 상당함을 크게 느꼈을 것이다.

▼ <장면7-2>


<장면7-3>
백1에 흑2로 뒷수를 메우면 흑4까지 패를 낼 수는 있다. 하지만 초반무패다. 다음 백A로 따내면 흑은 팻감이 없다.

▼ <장면7-3>



3. 미위팅의 약점

미위팅의 최근 페이스는 가히 무적이라 할 만큼 성적이 좋긴 하지만 함께 연구한 L5단의 견해로는 “포석이 약하다. 자신만의 포석이 있는데 그것에서 벗어났을 때 문제점이 드러난다. 하지만 소위 말하는 미위팅 '존'에 걸리면 누구보다 강하다.”고 평을 했다.

필자가 본 미위팅의 약점 또한 힘으로 누르는 힘이 강한 반면 포석에서 잘 안 풀렸을 때 바둑을 좀 힘들게 끌고 가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 점에서 포석이 약점, 힘이 강한 점은 강점으로 평가하고 싶다.

힘바둑이라는 측면에서 원성진과 최철한 9단을 떠올릴 수도 있겠는데 원성진 9단보다는 최철한 9단 쪽에 가깝지만 미위팅 9단이 훨씬 실전적이다. 최철한 9단은 미위팅에 비하면 비교적 유연하다고 볼 수 있다. 힘으로 견디는 것이 강하고, 큰 고민 없이 초반을 꾸려나가는 모습을 보노라면 평소 두던 대로만 두는 것 같은 인상이 들기도 한다. 이 때문에 포석은 미위팅의 약점으로 꼽힌다. 한 대국만 예로 들어보겠다.

<장면8> 제2회 중국 기성전 ●롄샤오 ○미위팅 흑불계승
중국 기성전에서 롄샤오와 일전. 94년생의 롄샤오도 주목받는 신예 중 한명이다.초반 좌변에서 패(▲)가 났는데 대가로 백이 하변을 뚫어서 불만 없는 모습이다. 좌상귀 백1, 흑2까지는 괜찮았는데 백3이 이상한 수였다. 잽싸게 흑4~8까지 실리를 벌어 흑 만족이다.

▼ <장면8>


<장면8-1>
미위팅은 좌상귀 붙인 수의 체면을 살리기 위해 백1로 붙여갔지만 흑4~26까지 좌변에 짭짤하게 집을 내고 살아선 흑이 성공한 모습이다.

▼ <장면8-1>


<장면8-2>좌상귀 A의 곳은 당장 급한 곳은 아니었다. 우하변 백1의 입구자가 큰 자리로 이렇게 두는 것이 더 좋았다.

▼ <장면8-2>


구리 9단은 자신의 ‘천적’으로 부상한 미위팅에 대해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미위팅은 매우 강해요. 그와 대국을 두어서 알죠. 이렇게 어린 나이에 이렇게까지 해낼 수 있다는 게 정말 놀라워요, 소질이 있어요. 이대로 계속해 나간다면 그의 앞날은 더 쉬울 것입니다.”

뒤에 구리는 미위팅에게 ‘꾸준한 노력’이 참말 중요하다고 말해주었다. “희망컨대 미위팅이 자만을 억제하고 계속 노력했으면 좋겠다. 그는 천부적인 기재가 있기에 바둑에 대한 기본만 착실하다면 앞으로의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우쭐하면 안돼! 계속 노력해야 해!”


▲ 1회 몽백합배 시상식에서 우승트로피를 받고 니장건(倪张根) 회장과 기념촬영. 니장건 회장은 몽백합배뿐 아니라 이세돌-구리 10번기도 성사시킨 중국바둑계의 든든한 후원자다.



중국 신예강자 기풍탐구 시리즈를 마치며

한국보다 중국이 뛰어난 신인을 많이 배출하는 요인이 어디에 있을까. 인구가 많기에 프로기사가 되려는 지망생이 많아 그렇다고 하면 할말이 없다. 뭐, 사실이니까. 우리나라의 바둑교실 수는 IMF외환위기 같은 경제파동을 한두 차례 겪은 이전과 이후를 비교하면 반토막이 더 났다. 현재 우리나라의 바둑열기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지표다. 바둑을 배우는 어린이가 줄면 이창호, 이세돌 같은 천재가 탄생할 확률도 준다. 가뜩이나 ‘머릿수’에서 밀리는데 조기 엘리트교육마저 뒤진다면 경쟁이 될 리 없잖은가. 이건 하나마나한 얘기니까 그렇다 치고-

시스템, 즉 제도적인 인프라에서 확연한 차이가 있다. 국가 차원에서 뒷받침하는 중국과 사교육 수준에서 인재를 육성하는 한국의 차이다. 바둑에 대한 이해(단순히 둘 줄 아느냐 못 두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바둑이 가진 역사와 문화, 국민적 자존심에 이르기까지의 이해)가 깊은 시진핑 주석이 박근혜 대통령을 초대한 만찬에서 창하오 9단을 중국을 대표하는 체육예술인으로 소개한 게 단적인 본보기다. 오랜 기간 한국바둑에 시달리다 마침내 숙원인 ‘타도 한국’을 이룬 직후였다.

시진핑 주석은 “최근 중국바둑의 성적이 아주 좋아요. 이미 많은 기사가 석불(石佛, 이창호 9단을 지칭)을 이겼고, 앞으로 그 뒤를 이을 인재들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라고 온화하게 말했지만, 속내는 ‘우리가 마침내 한국바둑을 꺾었다. 중국이야말로 바둑의 종주국’이란 걸 강조하고 싶었을 테다.

중국의 ‘90후’ 세대들이 어린 나이에 이처럼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던 비결로 ‘중국리그’의 출범을 빼놓을 수 없다. ‘1999년 시작된 중국리그는 축구처럼 팀에 선수선발의 전권을 주고 선수의 능력에 따라 연봉을 주는 ‘구단제’와 넓은 땅덩어리를 배경으로 한 강력한 ‘지역연고’를 바탕으로 승승장구하고 있다. 갑조리그(1부) 12팀, 을조리그(2부) 16팀, 병조리그(3부) 24팀 등 모두 52팀이 승강급제로 치열한 경쟁을 펼치며 바둑 인기를 견인하고 있다. 중국 정부의 정책적 지원도 한몫하고 있고 이세돌·박정환 등 한국 용병들을 특별 대우하는 개방적인 운영도 재미를 높여줬다.’ (박치문 중앙일보 전문기자)

‘90후’ 세대의 세계제패는 중국리그의 개가다. 다른 나라 예를 들 것도 없다. 프로리그가 생긴 이후 우리나라의 야구와 축구가 한 단계 발전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중국은 지역연고제로 팀을 꾸리고 운영한다. 그러니 각 지역의 고수가 대표로 뽑히게 되고 자연스레 유망주를 발굴, 육성하는 시스템이 갖춰진다. ‘90후 세대’까지 들먹거릴 필요도 없다. 판팅위, 미위팅 같은 ‘95후’ 어린 소년기사들이 이같은 시스템에서 급성장한 기사다. 을조에서 갑조리그로 올라서며 경험을 쌓고 단련한다. 중국리그에서 주목을 받으면 곧이어 세계대회에서도 빛났다.


▲ 미위팅의 어린시절 모습. 일찍이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소년기사로 맹위를 떨쳤다.

미위팅은 2009년 선발전을 거쳐 국가청년팀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듬해 다시 불렀을 때 거절했다고 한다. 국가팀으로 가려고 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높이 오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많은 학습기회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학습기회를 제공한다는 면에서 중국리그는 최고의 실전무대다. 중국 최고수뿐 아니라 한국의 최고수들까지 용병으로 뛰는 무대다. 아직은 자력으로 세계대회 출전권을 쥘 수 없는 실력 단계, 어린 나이 때부터 세계정상급과 일대일로 샅바를 움켜쥘 기회를 얻는다는 건 굉장한 혜택이다.

미위팅이 갑조리그에서 쳐다보기조차 버거운 상대들을 연파하고 연승을 달릴 때 한 인터뷰는 중국의 어린 비둘기들이 어떻게 자신감을 갖게 되고 험준한 산맥을 넘어가게 되는지를 읽게 한다.“솔직히 이렇게까지 좋은 성적을 얻을 줄은 생각조차 못했어요...처음에는 심란했어요. ‘과연 이길 수 있을까’ 나 자신을 의심한 적도 있었죠. 뒤로 가면서 콩지에와 구리 9단에게 승리하고 조금이나마 자신감이 생겼어요. 차츰차츰 마음도 안정이 되어 갔고요. 그래서 더 큰 욕심을 갖게 됐어요.”

우승한 뒤의 부진은 치열한 내부경쟁 탓
지난해부터 얼마전 끝난 18회 LG배까지 중국은 7명의 세계대회 우승자를 줄줄이 냈다. 이 가운데 춘란배를 우승한 천야오예 9단만 89년생일 뿐 나머지 6명은 모두 90년 이후 태생이다. LG배를 석권한 퉈자시도 91년생이다. 그런데 이들 중 아직 세계대회 2관왕이 한명도 없다는 점, 게다가 하나같이 세계대회 우승 직후 약속이나 한 듯 부진했기 때문에 ‘90후 세대’의 ‘불안정성’을 거론하는 이도 있다. 물론 세계챔프에 오른 기사에게 거는 ‘다음 행마’에 대한 기대치가 빚어낸 ‘부진’일 수 있다.

제1회 백령배: 저우루이양 3대0 우승 (대 천야오예)
제17회 LG배: 스웨 2대0 우승 (대 원성진)
제7회 응씨배: 판팅위 3대1 우승 (대 박정환)
제9회 춘란배: 천야오예 2대1 우승 (대 이세돌)
제1회 몽백합배: 미위팅 3대1 우승 (대 구리)
제18회 삼성화재배: 탕웨이싱 2대0 우승 (대 이세돌)
제18회 LG배: 퉈자시 2대1 우승 (대 저우루이양)


▲ 올해 2월에 발행한 중국의 바둑잡지 [위기천지(圍棋天地)] 3~4월 통권호는 지난해 세계대회를 우승한 6명을 '신육초(新六超)'란 제목으로 한권을 통째 특집기사로 꾸몄다. 최근엔 퉈자시 9단까지 가세(LG배 우승)하여 중국은 7명의 세계챔피언을 동시에 보유하게 됐다.

근래 벌어진 7번의 세계대회만 놓고 보면 ‘90후’ 중에서 저우루이양 9단이 가장 안정감을 보이고 있다. 저우루이양 9단은 1회 백령배와 18회 LG배, 1회 몽백합배 3개 대회에서 4강에 올라 이 중 백령배와 LG배 2개 대회 결승진출과 한번의 우승(백령배)을 기록했다.
다음이 스웨와 탕웨이싱이다. 스웨 9단은 17회 LG배, 18회 삼성화재배 2개 대회에서 4강에 올라 한번 우승(LG배)했고, 탕웨이싱 9단은 1회 백령배, 18회 삼성화재배 2개 대회서 4강에 진출해 한번 우승(삼성화재배)했다.
이에 비하면 ‘95후’ 투톱 판팅위와 미위팅은 오직 한 대회에서만 우승했다. 4강 성적만 놓고 볼 때 아직은 ‘90후’ 주자들이 오뉴월 하루 볕이 무서움을 보인 형국이긴 하다.

이세돌 9단과 같은 다관왕의 위엄을 보여주지 못한 데 따른 ‘상대적 빈곤(?)’이 부진한 인상을 심었을 수도 있다. 실제 판팅위의 경우 응씨배 우승 이후 존재감이 미미했던 게 사실이다. 이에 대해 화쉐밍 중국 국가대표팀 코치는 지난해 초상부동산배에서 '중국 90후 세대 기사들은 지금 안정이 필요하다. 예를 들자면 스웨, 판팅위처럼 우승을 차지한 기사들이 우승 후 자꾸 패배하곤 한다. 이런 것은 모두 정상이다.”고 말한 바 있다. 이들은 아직 어리고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더 주려 신경 쓰고 있다 했다.

중국내 '90후' 기사들의 실력은 막상막하다. 그 누구도 압도적인 힘을 발휘하진 못한다. 최근 LG배를 차지해 마침내 세계챔프 대열에 낀 퉈자시 9단도 우승하기 이전부터 '우리의 실력은 차이가 없다.'라고 단언한 바 있다. 누구랄 것도 없이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다. 세계대회보다 국내 동료들과 경쟁하는 것이 더 힘들다고. 국내경쟁에서 살아남아야 세계대회에 출전할 수 있는데 이 과정이 늘 백척간두(百尺竿頭)의 싸움이라고.

“그거 다 우리가 부르던 유행가 가락이다. 90년대 우리가 세계무대를 휩쓸 때 우리 기사들도 국내기사에게 이기기가 더 힘들다고 푸념하던 거와 다를 바 없다.” (박치문 중앙일보 전문기자)

다른 점이 있다면 4인방만 눈에 띄던 우리에 비해 중국은 층이 훨씬 넓고 두꺼워졌다는 거. 이미 거명되던 유망주들은 다 정상급 수준이 되었고 고만고만한 선수끼리 치열하게 경쟁하다가 한명이 치고나와 우승하는 흐름을 타고 있다. 마치 우리나라의 양궁이나 쇼트트랙같이 올림픽에서 금메달 따는 거보다 국내 대표선수 선발전이 더 힘들다는 것처럼. 중국의 ‘90후’ 세대 세계챔프들이 우승 후 부진해 보인 연유가 여기에 있다. 이러한 중국의 판도가 곧 세계바둑 판도가 되어버린 실정이다. 현재 중국랭킹(2월 기준) 10위 안에서 세계대회를 우승하지 못한 기사는 왕시 9단과 탄샤오 7단뿐이다.

지난해 제9회 춘란배(천야오예 우승) 결승이 열렸던 6월17일 이전까지 이세돌 9단은 삼성화재배와 춘란배를 보유한 2관왕이었다. 그렇지만 이후부터 지금까지 세계대회 2관왕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백령배를 제외하면 최근 7번 치른 세계대회에서 이세돌 9단을 꺾은 기사 6명이 우승을 차지했다. 17회 LG배(스웨)를 시작으로 응씨배(판팅위), 춘란배(천야오예), 삼성화재배(탕웨이싱), 몽백합배(미위팅), 그리고 이번 18회 LG배(퉈자시)까지 공교롭게도 하나같이 이세돌 9단을 이기고 거둔 우승이었다. 강력한 일인자로 군림하던 이세돌 9단이 흔들리면서 세계바둑 판도는 바야흐로 춘추전국시대 양상을 띠고 있다.


▲ [월간바둑] 1월호 만평, '오성수의 그림세상'. 지난해 12월, 최후의 보루 이세돌 9단이 마지막 남은 삼성화재배 결승에서마저 탕웨이싱에게 무너지면서 한국바둑은 18년 만에 세계대회(개인전) 무관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탕웨이싱이 이세돌을 이김으로써 2013년 중국바둑은 천하통일을 달성했다.

앞으로는 절대지존으로 군림했던 이창호시대와 같은 일인독주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어쩌면 이세돌 9단처럼 강력한 일인자시대조차 보기 힘들어질지 모른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지만 승부세계란 본시 피라미드 구조이기에 시간문제일 뿐, 누군가 춘추전국시대를 접수하는 기사가 등장할 것이다. 현재 그 가장 근접한 세력이 중국의 ‘90후’와 ‘95후’ 기사들이다. 가능성으로 본다면 한 살이라도 어린 ‘95후’에서 출현할 확률이 높다. 요점은 이렇다.

미위팅 9단의 아버지는 아들을 프로기사로 키우느라 집 한 채 비용을 들였다고 한다. 사적으로도 이러한 열성을 보이고 있는 데다가 국가적 차원의 뒷바라지가 든든한 터를 제공해 주고 있다. 게다가 이건 굉장한 경험이자 자산인데, 스무 살도 안된 어린 나이에 이미 세계타이틀을 따면서 자신감을 얻었다. 당장은 세계대회에서 우승한 96년생의 판팅위와 미위팅이 크게 보이지만 그 아래 백령배 4강에 오른 98년생 셰얼하오와 동갑내기 양딩신(98년생), 역시 98년생으로 18회 LG배 8강에 오른 리친청과 샤천쿤 같은 신예들이 100미터 출발총성을 기다리고 있는 선수들마냥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거대한 해일처럼 덮쳐오는 인해전술에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한갓 딱총 쏘는 것에 지나지 않을 몸짓이겠으나, 대비하는 심정으로 마련해 본 기획특집을 마친다. [기보분석=우동하 / 구성=정용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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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실수|2014-03-02 오후 2:05:00|동감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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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글에 보면 조훈현9단은 52년생이다. 그렇다면 62년 입단이니 만 10세이다. 9세에 입단한 중국의 양딩신이 최연소인거지! 하긴 양도 호적이 줄었을지도 모르지만...
yangji|2014-03-02 오후 12:10:00|동감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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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적절한 기획으로서 우리의 미래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고 많은 공부도 되었습니다.
hancle1|2014-03-02 오전 11:53:00|동감 0
글쓴이 삭제
hancle1|2014-03-02 오전 11:53:00|동감 0
글쓴이 삭제
hancle1|2014-03-02 오전 11:53:00|동감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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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다 이거 섬찟한데요. 이런 과격한 표현 좀 안 써도 되지 않을까요?
소석대산|2014-03-02 오전 8:35:00|동감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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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이세돌, 구리 이후의 大物을 꼽자면
중국은 스웨, 판팅위, 미위팅 등이 바로 떠오르는데 (천야오예는 약간 함량 부족)
한국은 찝을만한 기사가 딱히 안보이는 것 같습니다.
있더라도 천야오예와 비슷하거나 그보다 한 등급 아래 기사가 보일 뿐입니다.
하기야 국적이 무슨 대수겠습니까?
천재를 느껴보는 것으로 족하니까요.
reply 소석대산 스웨와 판팅위, 미위팅은 두고 보면 아시겠지만 최소 대여섯개 이상은 획득하리라 봅니다.
2014-03-03 오후 12:37:00
reply 소석대산 제가 맘속으로 구분하는 기준은 세계 타이틀을 1~2개 따고 말 그릇인가, 5~6개는 딸 그릇인가, 아니면 10여개를 확득할 그릇인가 입니다. 제가 판단하는 천야오예는 첫번째이고요.
2014-03-03 오후 12:33:00
reply 사엉 천야오예가 절대 함량부족은 아니죠. 오히려 지금까지 해 온 것을 보면 스웨보다도
더 윗길입니다. 2013년만을 놓고 보면 스웨가 앞서지만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보면
천야오예의 커리어가 훨씬 높죠.
2014-03-03 오전 10: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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