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적어도 반상에서는 그러하다. 하나는 원칙이요 열은 변주지만, 그럼에도 그 어느 것도 원칙이 될 수 있는 형상이요 아울러 변주 또한 될 수 있는 형상이다. 바둑이란 이런 것이다. 다양한 급소가 있지만, 사실은 많은 급소들이 형상에 있어 하나의 원천(源泉)을 갖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사진은 캐나다 출신의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 천재였고 기인이었던 그는 바흐에 대한 독창적인 해석을 담은 음반 [바흐 - 골드베르크 변주곡]으로 명성을 얻었다.)
문용직 박사가 을미년(乙未年) 설을 맞아 ‘두터움’에 대한 6편의 강연을 사이버오로 회원을 위해 기고했다. 설연휴 기간 하루 한 편씩 연재한다. - 편집자 주.
특강1 - 두터움은 신비한 세계가 아니다 ☜ 바로보기 클릭
특강2 - 형상과 감성에서 두터움이 나오다 ☜ 바로보기 클릭
특강3 - 형상과 변주를 오가면서 인식을 확장하다
특강4 - 단순한 형상은 본래 두텁다
특강5 - 중앙에서의 가벼운 세모, 만드는 이치
특강6 - 두터움과 세모의 확장이 포석의 길이다
설연휴 특집 - 두터움 특강 (3)
기본 정리(1) 형상과 변주를 오가면서 인식을 확장하다
1. 형상의 변주와 인식의 확장
하나를 배우면 열을 안다.
천재의 재능을 말해주는 말씀인데 꼭 그렇지만도 않다. 평범한 우리도 바둑을 배울 때는 하나를 배우면 열을 알 때가 적지 않으니 그러하다.
우린 학습의 능력을 갖고 있는데, 그 점에 있어서는 소년이나 장년이나 별 차이가 없는가 싶다.
장년의 경우 장점이 있는데 지적(知的)인 능력 면에서 소년보다 앞서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포석을 접할 때 이해가 빠른 경우가 많다.
장년들에게 바둑을 가르치는 강사들이 가끔 이야기해 주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바둑에는 이론적인 측면에서 들어가야 하는 영역이 따로 있는 것이다.
포석이나 “두터움이란 무엇이냐”의 이해 같은 것은 후자에 속한다.
어쨌든 반상은 형상의 세계.
그러므로 형상의 범주 속에서 증명하지 않으면 어떠한 말씀도 별로 소용은 없겠다.
자, 그러니 하나 들어가 보자.
1도 (주제와 변주)
좌변을 먼저 보자. 좌변은 우변에서 백돌을 제거한 것이다. 그리고 좌변에서 흑돌은 점차 하나씩 줄어들고 있다. 그럼에도 흑▲는 모두가 급소요, 행마의 준거가 될 수 있는 착점이다.
▼ <1도> 주제와 변주 사례
하나하나 모두 아름답고 간결한 형상을 이룬다.
프로들이 실전에서 감탄하는 형상의 급소들이 저 하나 하나에 스며들어 있다.
<1도>를 통해서 이 글이 주장하고자 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하나를 배우면 열을 알 수 있다.
적어도 반상에서는 그러하다. 하나는 원칙이요 열은 변주지만, 그럼에도 그 어느 것도 원칙이 될 수 있는 형상이요 아울러 변주 또한 될 수 있는 형상이다.
바둑이란 이런 것이다.
다양한 급소가 있지만, 사실은 많은 급소들이 형상에 있어 하나의 원천(源泉)을 갖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2. 반상은 경계가 세워져 있다 - 형상에 한계가 있다
바둑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그리 많지 않다. 우린 바둑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지 3천년도 지나지 않은 시대에 살고 있다. 3천년이 무어 대수인가?
그래서 강조하고 싶다.
기본적인 형상을 먼저 몇 개 익히고, 나머지 변주에 속하는 형상들은 옆에 두고 자주 보아서 눈으로 외우라고 권하고 싶다.
묘수풀이도 그냥 주야장천 부여잡고 공부할 필요가 없다.
재능에 차이는 있지만, 프로가 되려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냥 1분 정도 생각하다가 답을 보시라. 그리고 그 답을 몇 번 돌아보아 형태를 익히시라.
프로가 되려는 학생은 달리 공부해야 하는가? 그렇지는 않다. 다만 이 글의 주장, ‘반복해서 외우라’가 최상의 조언은 아닐지 모르나 괜찮은 지침이라 말하고 싶다.
이는 맥점뿐만 아니라 행마의 공부에도 해당된다.
실전 막막한 들판에서 이것저것 다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다.
반상은 형상의 세계이니 형상의 급소를 외울 뿐이다. 실전에서 그 형상이 아니 나오면? 형상은 정확하게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형상의 숲을 헤쳐 나가는 힘은 얻을 수 있다. 그 힘으로 자신껏 헤쳐 나가는 것이며, 또 그것으로 충분하다!
3. 두터운 형상을 얻기 위한 기본적인 지침
두기 힘든, 그러나 반드시 외워야만 하는 기본은 그리 많지 않다. 나머지는 활용이다.
그래도 묻게 된다.
만약 형상이 비슷하다면 한 줄 틀리기도 쉬운데, 만약 틀리면?
답은 이렇다. 틀려도 할 수 없다!
그러하다. 프로들도 무수히 틀린다. 고민해서도 틀린다.
아마 대체로 틀리는 경향이 있다는 말이 더 정확한 묘사일지도 모르겠다. 어느 정도 틀리느냐? 그것이 실력의 척도라고 해도 될 것이다. 누구나 대체로 틀린다.
다만 이리 말할 뿐이다.
“그 수도 좋아.”
지난 번, 두터움의 형상적 기초는 세모와 네모에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형상의 측면에서 볼 때 착점의 이치가 있겠다.
그렇다. 구체적인 지침은 다음과 같다.
1) 세모와 네모가 찾아야 할 형상이다.
2) 1립2전, 2립3전이 1)을 돕는다. 그러나 중앙에서는 1립1전, 2립2전이 기본이다.
풀면
1) 행마와 관련된 급소는 세모와 네모를 지향하는 경향을 지니고 있으며,
2) 돌의 첫 번째 발전은 전개하는 데에서 찾을 수 있다.
다시 풀면,
1) 행마는 안정과 발전을 추구하는데, 안정은 형상으로 볼 때 세모ㆍ네모를 추구하는 것이며
2) 발전하는데 있어서도 돌은 형상을 먼저 갖출 것을 요청한다.
그런데 그 첫 번째 형상은 변과 중앙에 따라 다른데, 변은 1선이 있기 때문에 안정성을 이미 갖춘 것이며-기댈 언덕으로-중앙은 그렇지 못하다.
그러므로 변에서는 1립2전 할 수 있는 것이, 중앙에서는 조심하여 1립1전 해야 한다.
2도 (중앙은 1립1전, 넓혀도 2전에서 그치는 게 보통)
좌하귀는 정석의 끝 부분. 백1, 흑2, 백3은 몇 번이고 두드려서 기억해야 한다.
이 과정이야말로 한없이 되풀이 되는 기본적인 형태요 수순이다.
백1과 백(△)의 간격은 변과 달리 1립1전이며,
백1과 백(△)을 기초로 한 백3은 세칸이 아닌 두칸이다.
이 간격이 중요하다. 백3은 A나 B 또는 C, D도 둘 수 있다.
여기 좌하귀 중앙 지향의 행마법에서 백의 형상이 세모를 지향하고 있음을 유의하자. 이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우상귀는 대사백변 정석의 하나로, 행마는 역시 좌하귀와 같은 요령이다.
▼ <2도> 중앙에선 1립1전
3도 (한칸과 세모)
본도의 형상도 돌아보자. 우리가 즐겨두는 정석이 우상귀인데, 역시 다를 바 없음을 알겠다.
간결하고 아름답고 평범하다. 세모가 이루어져서 피라미드의 안정감을 얻는다.
▼ <3도> 한칸과 세모
4도 (기략에 넘치는 숨겨진 세모)
오청원(백)과 가리가네(雁金準一)의 치수고치기 10번기 대국이다.
백1은 A가 보통이나 백B, 흑C의 교환이 언제나 선수이니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다.
우하귀 흑이 강하지 않기에 백이 넓게 두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도 새겨두자.
<2도> <3도>와 비슷한 이해가 행마의 바닥에 깔려 있는 걸 알 수 있다.
백1은 우아한 공격이다. 백돌 두점(△)을 모으면서 하나의 원을 그리고자 하니, 매우 아름답다. 심미안이 행복하다.
▼ <4도> 오청원과 가리가네 치수고치기 10번기
4. 형상을 헤쳐 나간다는 것
바로 앞에서 두 개의 지침을 제시했다. 그리고 그 이전엔 형상을 반복함으로써 내면에 힘을 기르라는 것을 강조했다.
이제 형상을 헤쳐 나간다는 것을 다루어보자.
이적(耳赤)의 묘수를 즐기면서 가볍게 다루어보자.
5도 (이적耳赤의 묘수)
슈사쿠(秀策)에게 흑2를 당한 순간 인세키(幻庵因碩)의 귓불이 빨개졌다는 이야기-귓불이 빨개졌다는 건 의학적 견지에서 보면 당황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당시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의사가 풀이한 바다. 이 의사는 바둑을 몰랐다. 묘수를 통해서 형상의 숲을 헤쳐 나간다는 의미를 생각해보자.
형상의 숲을 헤쳐 나간다는 것은, 형상을 보는 눈이 깊다는 것이다.
형상을 보는 눈은 곧 세모와 네모, 그리고 한칸 두칸을 찾아내는 힘을 말한다.
현실에서 구체적으로 구상해보자.
▼ <5도> 이적의 묘수
<5도> 흑2에서 어떤 형상을 그리셨는지? 이미지로 받으셨는지?
왜 저 흑2가 묘수로 꼽힐까?
형상의 측면에서 답을 구해보시라.
앞서 이야기한 두 개의 지침-세모와 1립1전-을 새기면서 답을 찾고 설명해보시라.
<6도>가 답이다.
6도 (세모와 한칸이 잡힌다 - 이적의 묘수 뒤에 숨은 형상)
<6도>를 얻을 수 있다면 대단한 수준이다.
두터움은 물론이고 전국적인 안목이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프로의 수준이다.
답을 보자. 세모를 이룬다(▲). 그리고 한칸과 두칸을 이룬다. 백1과 흑2는 서로 맞보는 점.
▼ <6도> 이적의 묘수 뒤에 숨은 형상
너무 지나친 예가 아니냐고?
그렇지 않다. 세모 네모를 이루어 안정을 얻고 한칸으로 연결을 얻는 것은, 형상을 좁히든 넓히든 언제나 적용된다. 포석의 감각과 행마의 감각이 별개의 것이 아님은 여기서 짐작하실 수 있을 것이다.
반상은 시각적 질서의 세계이다.
공간의 감각과 형상의 감각이 어우러진 세계.
그 세계 속에서 우린 형상을 찾아 나선다.
그것이 우리가 바둑을 둘 때 우리도 모르게 얻어내는 숨겨진 실상이다.
우린 형상을 의식적이고도 무의식적인 감성을 활용하여 찾아내고, 그 형상으로 승부를 가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형상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 자연스레 실력이 늘 것은 틀림없다.
5. 석점의 중앙이 급소
물론 어렵다.
<1도>에서 여러 형상들이 서로 연계되어 있다고는 하나, 그래도 적절한 것을 고르는 것은 힘들다. 실전에서 막상 부딪치면 여전히 모호하다. 그렇지만 이제 첫걸음이다.
두터움과 관련하여 행마의 기본으로 드리고 싶은 것은 “석점의 중앙이 급소”라는 격언이다.
석점의 중앙이 급소라는 격언을 지켜보시라.
이는 두터움과 관련해서 익혀두어야 할 기본적인 형상의 핵심인데, 석점의 중앙이라는 급소가 맥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행마의 기본임도 알게 될 것이다.
출발하자. 설명의 편의를 위해서든 이해의 난이도를 낮추기 위해서든 어쨌든 현실에서 우린 하나의 기준을 갖는 것이 필요이다.
그 기준은 “석점의 중앙이 급소”라는 명제이다.
7도 (석점의 중앙이 급소, 응? 이것이?)
기억에 남은 아래 장면을 찾느라고 기보를 그 얼마나 뒤졌을까?
좀 더 좋은 자료를 찾으려고도 노력했으나 아쉽게도 실적은 없었다.
명인의 바둑에서 “석점의 중앙”은 없었다. 그 이유는 모두가 석점의 중앙은 피하기 때문이다. 그 어느 프로가 급소를 남겨두겠는가.
▼ <7도> 석점의 중앙
여기 백1이 놀라운 급소다. 참으로 아름다운 석점의 중앙이다.
저 맥점을 당한 유창혁은 아프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어디가 석점이야? 어느 돌도 석점이 아닌데?
아래 <8도>가 백1이 석점의 중앙 급소임을 알려준다. <7도> 다음의 실전 수순이다. (1997년 제5기 배달왕기전 도전자결정 제3국. 백-9단 이창호 대 흑-9단 유창혁)
8도 (석점의 중앙이 드러나다)
백1이 석점의 중앙 급소의 자리에 있음을 알겠다.
▼ <8도> 석점의 중앙이 그려진다
백5 이후 <8-1도>처럼 진행되었는데, 흑이 크게 무너진 국면이다.
▼ <8-1도> 이후의 진행
고전을 갖고 노는 이유의 하나는 여기에 있다.
이미 고전적인 것이 되어 버린 맥점이나 묘수는 후세엔 등장하지 않는다. 모두가 알기에 모두가 피한다.
그래서 찾아도 찾아도 남는 것은 고전뿐이다. 고전에 관한 묘한 진실이라고나 할까. 아마도 이런 논리와 현실은 자연과학이나 철학을 막론하고 진실을 구성하는 숨은 논리로 통할 것이다.
그래서 <9도>도 예로 쓸 수밖에 없다. 석점의 중앙이 급소라는 점을 밝힌 고금의 유명한 1국이다.
9도 (도치道知의 석점 중앙 이용)
좌상귀 백 돌(△)이 3개라는 점이 초점인데 흑이 끝내기로 이득을 보는 문제다.
우하귀 흑1 이하가 답이다. 수순이 중요한데, 백10을 두지 않으면 흑A로 빅이 된다, 만약 흑3 이전에 흑7을 먼저 젖혀 이으면 백은 손을 뺀다. 그 후에 흑이 3에 두어도 이제는 백이 10에 붙여 아무런 수가 나지 않는다. 여기까지는 맥점에 관한 문제인데...
▼ <9도> 도치의 기보에서
“석점의 중앙이 급소”라는 명제는 행마에서도 합당한 조건을 제공한다.
그것은 앞서 <7도>처럼 정말이지 명인 수준이 아니고서는 짐작도 할 수 없는 경우도 있지만, 다음 <10도>와 같은 일반적인 경우도 설명한다.
10도 (석점의 중앙이 급소이니)
<7도>의 백1이 석점의 중앙, 그 급소를 선점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하다. 하변에서 돌 몇 개(△▲) 들어내면 상변이 된다. 이제 <1도>에 대해서도 더욱 깊은 이해를 할 수 있다.
▼ <10도> 석점의 중앙 급소 변주
물론 석점의 중앙이 언제나 출발점이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석점의 중앙이 급소”라는 명제에서 출발하면 여러 급소가 눈에 쉽게 잡힐 것이기에, 초점으로 드릴 뿐이다.
이제 알 수 있다. 다케미야가 <11도> 백1을 둘 때 어떤 기분이었는지. 그 기분과 감각을 알 수 있다.
11도 (다케미야의 급소)
석점 중앙의 급소가 바로 여기 행마 백1에 해당된다. 참고로 흑2는 A와 B를 맞보고 있다.
앞서 <2, 3, 4도>와 같은 맥락이다.
(1986년 제41기 本因坊戰 도전1국. 백 本因坊 武宮正樹 대 흑 9단 山城宏)
▼ <11도> 석점 중앙의 급소 행마 - 다께미야
12도 (만약 호구라면?)
▼ <12도> 역시 두터운 행마 - 다케미야
역시 좋다. 두어도 좋다. 어찌 차이가 있으랴.
다만 중앙을 중시한다면 중앙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 다케미야의 안목. 형상은 안목이라는 내면의 힘으로 새겨두는 것인가 싶다. 그리 받아들이고 싶다.
[계속]
특강1 - 두터움은 신비한 세계가 아니다 ☜ 바로보기 클릭
특강2 - 형상과 감성에서 두터움이 나오다 ☜ 바로보기 클릭
특강3 - 형상과 변주를 오가면서 인식을 확장하다 ☜ 바로보기 클릭
특강4 - 단순한 형상은 본래 두텁다 ☜ 바로보기 클릭
특강5 - 중앙에서의 가벼운 세모, 만드는 이치 ☜ 바로보기 클릭
특강6 - 두터움과 세모의 확장이 포석의 길이다☜ 바로보기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