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판이야기① 바둑판에도 과학이 숨어 있다!
바둑판이야기① 바둑판에도 과학이 숨어 있다!
[바둑상식]
  • 정용진|2016-08-12 오후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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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자료/육형제바둑판

‘침대는 가구가 아니라 과학입니다!’ 한때 이런 광고문구 아이들에게 혼선을 부추긴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침대는 가구가 맞다. 다만 과학적인 연구를 밑바탕으로 만들었다는 걸 강조한 카피였다. 같은 이치로 “바둑판도 과학”이라고 말하면 침대와 마찬가지 취급을 받을까? 하지만 바둑판에도 과학이 깃들어 있다는 사실, 평생 바둑을 둔 사람도 이를 모르는 이가 많다.

바둑판은 정사각형이 아니다
바둑판의 표준규격은 가로 42cm, 세로 45cm이다. 얼핏 봐선 정사각형인 거 같지만 그렇지 않다. 가로 면의 바둑줄 끝선에서 끝선까지의 규격은 39.5cm, 세로 면 바둑줄 끝선에서 끝선까지의 규격은 42.6cm이며, 바둑줄 한 칸의 규격은 가로 2.25cm, 세로 2.34cm이다.


▲ 바둑판은 정방형이 아니다. 가로 42cm, 세로 45cm로 약간의 차이가 있는 직사각형이다.
흔히 바둑을 좀 둔다고 하는 사람도 위 사진처럼 바둑판의 긴쪽(45cm)을 서로 맞보게 세로로 마주하지 않고 짧은쪽(42cm)을 맞보게 위치하고 대국하는 것을 종종 보게 되는데, 이건 마치 직사각형 테니스장에서 중앙의 네트를 향해 서로 공을 치지 않고 사이드라인에 중앙 네트로 공을 주고받는 것과 같다. 이 사진에서라면 위쪽과 아래쪽에 대국자가 앉아 바둑을 두는 게 바르다.


바둑판의 규격은 어떻게 정했을까?
그렇다면 이 바둑판의 규격은 누가 정했을까? 바둑의 모든 것을 관장하는 한국기원이나 대한바둑협회가 정했을까. 아니다. 바둑알의 사이즈(크기)에 맞춰 정했졌다. 더 엄밀히 말하면 바둑판은 바둑알을 놓을 수 있는 면적을 확보해 주어야 하므로 자연 바둑알의 크기에 따라 규격이 정해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바둑알에 대한 연구가 선행되었을 것이다. 시각적으로 보기에, 또 감촉상 적절한 볼륨과 크기는 어느 정도가 가장 좋은지, 오랜 시간 경험을 통해 연구를 거듭했을 것이다. 이와 더불어 바둑판의 면적도 조금씩 늘었다 줄어들었다 했을 것이고(조약돌이나 조개껍데기 같은 자연산 바둑알을 사용하던 100년 전의 바둑판을 보면 지금보다 규격이 작다).
그래서 바둑판을 만드는 장인(제조자)들이 낸 결론이 가로 42cm, 세로 45cm이다.

세로를 3cm 더 길게 한 이유는 바둑알이 촘촘히 어깨를 맞댔을 때 소화할 거리, 즉 서로 겹쳐 밀려나지 않을 최소한의 여유공간을 확보한 거리다. 바둑알의 크기를 흑백 평균 직경 22mm로 계산할 때 바둑판 42cm 쪽의 바둑줄 칸수는 정확히 판과 딱 맞다. 그렇다면 45cm 쪽의 바둑판 칸수를 딱 맞추려면 바둑알 크기를 23mm로 1mm 좀더 크게 만들어야 할 것이다. 바둑알의 규격은 흰돌이 직경 21.810mm, 흑돌은 22.119mm다(1mm의 오차는 있을 수 있다. 바둑알과 통에 대해서는 다음편에서 따로 다룬겠다). 이 말은 세로 45cm 쪽을 칸마다 1mm의 여유공간을 갖도록 만들었다는 얘기다.

만약 교차점에 바둑알을 착점할 때 가로줄 쪽과 세로줄 쪽 양쪽 모두 꽉차 숨쉴 공간조차 없이 빡빡하다면 한수 둘 때마다 상대방의 돌을 일일이 움직이지 않고는 놓기 힘들다. 매우 불편할 것이다. 해서 정사각형이 아닌 정사각형에 가까운 직사각형(42cm×45cm)으로 만든 것이다.

이는 또한 착점의 편이성뿐 아니라 시각적 효과를 최대한 따져 적용한 규격이다. 서로 마주하는 대국자의 시각에서 어느 정도의 간격, 얼마만한 크기가 최적인지 오랜 경험과 연구로 얻은 과학적 데이터다. 바둑은 대국자가 바둑판과 착점된 바둑알을 내려다보며 장시간 겨루는 게임이라는 걸 상기한다면 시각적 요소가(피도로라든가 착시감 등에 대한 고려까지) 얼마나 중요한지 이해할 수 있다. 바둑의 황금비율이라고 해야 하나. 이러한 맥락에서 바둑알의 크기와 부피, 바둑판의 규격이 결정되었다.

친근감을 느끼는 최적의 거리, 45cm
그런데 왜 서로 대면하는 쪽 바둑판의 세로 길이를 45cm로 정했을까? 50cm로 할 수도 있었을 텐데...

바둑판은 45cm 쪽을 세로가 되게 놓아 두 사람이 그 양 끝단에 마주앉아 둔다. 그때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자연스레 45cm 간격을 유지하게 되는데, 이 45cm라는 수치가 사람과 사람이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최소 단위이자 가장 친밀감을 갖게 하는 거리라는 과학적 통계가 있다. 두 사람이 마주보고 앉았을 때 가장 편안한 자세로 팔을 뻗어 둘 수 있는, 원활한 간격이 45cm이기에 한쪽(42cm)보다 3cm 더 길게 한 이유다. 바둑알끼리 부딪히는 불편을 소화할 여유도 확보하면서.

바둑판에는 이처럼 과학적 원리가 깃들어 있다. 어느 시인이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말라고 노래했다. 하물며 우주 삼라만상의 철리와 인생의 교훈이 담겨 있다는 바둑이고 보면, 앞으로 바둑판 위에 라면냄비 같은 걸 막 올려놓지 마시라. 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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