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만다라’ 김성동 작가 별세…향년 75
소설 ‘만다라’ 김성동 작가 별세…향년 75
[언론보도]
  • 최재봉 한겨레 기자 |2022-09-26 오후 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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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김성동. 솔출판사 제공

월간바둑 기자로 한국기원에 입사한 바 있고, 중앙일보 바둑 관전기를 집필하기도 했던 소설 <만다라>의 작가 김성동 씨가 별세했다. 바둑실력이 아마5단이었던 고인은 바둑계와 인연이 깊어 <국수>라는 소설을 집필하기도 했다.

한겨레신문 문학담당 최재봉 기자가 쓴 [소설 ‘만다라’ 김성동 작가 별세…향년 75]로 고인의 생애를 추억해 본다.


○● [출처: 한겨레] 소설 ‘만다라’ 김성동 작가 별세…향년 75 ☞클릭


<만다라> <국수>를 쓴 김성동 소설가가 25일 오전 7시30분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75.

고인은 1947년 충남 보령에서 태어났다. 조부는 몰락한 유생이었고, 부친은 해방 공간에 남로당 활동을 하다가 예비검속으로 대전형무소에 수감되어 있던 중 한국전쟁이 나면서 대덕군 산내면 산골짜기에서 2000여 명의 사상범들과 함께 처형당했다. 이런 아픈 가족사는 김성동의 삶과 문학을 지배했다. 그는 연좌제의 사슬 때문에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에 따라 고등학교를 중도에 그만두고 입산 출가해 12년간 승려 생활을 했다. 환속하고 소설가가 된 뒤에도 아버지의 삶과 죽음을 문학적 화두로 삼아 평생을 정진해 왔다. 작고한 평론가 김윤식은 김성동 작가와 마찬가지로 남로당 활동을 한 부친을 둔 소설가 이문구·김원일·이문열 등과 함께 그를 ‘애비는 남로당’ 계열 작가로 분류한 바도 있다.

1965년에 출가해 ‘무자화두’(無字話頭)를 붙들고 씨름하던 중 1976년 <주간종교>의 종교소설 현상 모집에 ‘목탁조’가 당선했지만, 이 작품이 “악의적으로 불교계를 비방하고 전체 승려를 모독했다”는 오해를 받으면서 승적에서 제명되었다. 그해 가을 하산해 바둑 잡지 편집자 등으로 일하던 그는 1978년 중편소설 ‘만다라’를 <한국문학> 신인상에 응모해 당선했다. 작가 자신의 승려 생활을 반영한 이 작품은 젊은 승려 법운의 수행과 방황을 통해 불교계와 사회 전체의 위선과 한계를 고발한 문제작이었다. 이듬해 장편으로 개작해 출간한 <만다라>는 비슷한 무렵에 나온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과 함께, 종교적 주제를 다룬 베스트셀러 쌍두마차로 독서 시장을 이끌었다.

공식 등단 뒤 김성동의 초기 단편들은 홀어머니와 함께 지내는 어린아이가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를 기다리는 묘사 등을 통해 부재하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그리고는 했다. 1981년에 첫 소설집 <피안의 새>와 산문집 <부치지 않은 편지> 등을 내고 <만다라>가 영화로 만들어져 역시 흥행에 성공하는 등 인기 작가로 발돋움한 그는 1983년 해방 전후 시기를 배경으로 부친의 삶과 죽음을 다룬 장편 <풍적>을 <문예중앙>에 연재하기 시작했지만, 아버지의 사상과 활동을 다룬 부분 등이 검열에 걸려 삭제되는 일이 생기자 연재를 중단하게 된다. 이 무렵 큰 교통사고를 당해 의식을 잃었다가 사흘 만에 깨어났고, 몇 차례에 걸친 뇌수술 등을 거쳐 100일 만에야 병원에서 퇴원한다.

▲ 영화 <만다라>의 한 장면.


그런 와중에도 그는 꾸준히 중편과 단편을 발표했고 자전적 장편 <집>과 <길>, 산문집 <미륵의 세상 꿈의 나라> <생명기해> 등을 출간했다. 1991년에는 1888~90년대 조선의 각 분야 예인들과 인걸들의 활약을 다룬 대하 장편소설 <국수>를 신문에 연재하기 시작했으나 미완으로 끝냈다가 2018년에 전체 5권으로 완간했다. 2010년에는 민족해방과 계급해방을 위해 싸운 이들의 행적을 담은 열전 <현대사 아리랑>을 냈으며(2014년에 <꽃다발도 무덤도 없는 혁명가들>로 개정 증보판 출간), 2019년에는 좌익 활동을 하다가 죽임을 당하거나 옥고를 치른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야기를 다룬 생전 마지막 소설집 <민들레꽃반지>를 출간했다. 남로당 아버지의 존재가 그의 필생의 문학적 화두였음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그해 어머니마저 돌아가시자 매달 한 번씩 찾아오던 기관원이 발길을 끊었고 그는 비로소 연좌제에서 해방되었다며 홀가분함과 서운함을 동시에 느꼈노라고 어느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했다.

김성동은 2001년에 낸 <만다라> 개정판을, 소설 전체의 주제를 완전히 뒤바꾸다시피 개작해서 내놓기도 했다. 원래의 <만다라>는 주인공 법운이 ‘피안’으로 가는 차표를 찢어 버리고 속세로 달려가는 장면으로 마무리되는데, 개정된 <만다라>의 결말은 그가 ‘피안’ 행 차표를 들고 정거장 쪽으로 달려가는 장면으로 처리된다. 이와 관련해 김성동은 “젊은 수좌 법운이 공부도 모자라고 흥분된 상태에서 저자로 내려와서는 아니 되는 것이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그가 승적을 벗은 뒤에도 자신의 거처를 ‘절이 아닌 절’을 뜻하는 ‘비사란야’라 이름 붙이고 집 안에 불상을 모시고 목탁을 두드리며 염불을 하고 초파일에는 연등을 달기도 하는 등 승려와 비슷한 생활을 한 것과도 연결되는 설명인 셈이다.

고향 선배인 이문구가 한국 문학사에서 손에 꼽힐 만한 스타일리스트인 것처럼, 김성동 역시 독보적인 문체를 지닌 작가였다. 어린 시절 조부 슬하에서 익힌 한학과 지금은 잊히다시피 한 순우리말, 충청도 사투리가 어우러진 그의 문장은 번역으로는 느낌을 살리기가 불가능한 ‘조선 문체’를 구현해 보였다. 말에 관한 그의 고집과 헌신은 대하소설 <국수>에 나오는 낱말을 스스로 설명한 260쪽에 이르는 별권 단행본 <국수사전>에서도 알 수 있다. 그는 <국수>를 내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우리말은 한독(漢毒)·왜독(倭毒)·양독(洋毒) 삼독에 짓밟혀 만신창이가 되어버렸다”며 “이렇게 짓밟히고 버려진 우리말을 저라도 챙겨서 남겨 놓자고 쓴 게 소설 <국수>”라고 설명한 바 있다.

고인은 신동엽창작기금, 행원문화상, 요산김정한문학상 등을 받았다. 빈소는 충북 충주 건국대병원에 마련됐다. 장례는 27일 오전 9시 한국작가회의와 한국문인협회, 국제펜한국본부, 한국소설가협회 등 문인단체들이 공동 주관하는 ‘소설가 김성동 선생 한국 문인장’으로 열린다. (043)840-8444.

▲ 월간바둑 최장기 바둑만화를 연재한 박수동 화백(왼쪽)과 명사대국을 벌인 김성동 작가. (사진출처/월간바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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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hsong|2022-09-27 오후 4:56:00|동감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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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까불지마라|2022-09-27 오후 12:07:00|동감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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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고인의 명복을빕니다. 안녕히가십쇼.
HIHIHI|2022-09-27 오전 9:53:00|동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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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실수 이 놈의 주둥이는 벌렸다하면 좌파 타령이요 영호남 갈라치기 일색이로구나.
친일을 친일이라 하는 것도 빨갱이냐? 무릇 장삼이사 범부들이 친일하는 것보다 이광수 최남선 서정주 노천명처럼 제법 명망있는 인사들이 친일했던 것이 민족의 가슴에 심하게 대못질한 거다. 그들은 일제가 제공한 자동차 타고 전국방방곡곡 산간벽지까지 훑으며 황국신민을 외치며 대동아 전쟁에 이 한 몸 바치자고 외쳐댔던 인물들이다. 당시엔 친일 안 한 자가 그 누구냐라고 더러운 항변을 할 터이지만 어찌 성서를 읽기 위해 훔친 촛불이라해서 도둑 물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대원경|2022-09-27 오전 9:08:00|동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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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


아~ 파란만장한 인생을 사시다 가셨군요.
부디 만다라행 차표 잘 찾아서 극락왕생 하소서.

파 지옥 진언
옴 가라지아 사바하~, 옴 가라지아 사바하~ 옴 가라지아 사바하~

해원결 진언
옴 삼마라 가락사바하~, 옴 삼마라 가락사바하~, 옴 삼마라 가락사바하~

상품상생 진언
옴 마니다니 훔훔 파닥 사바하~, 옴 마니다니 훔훔 파닥 사바하~, 옴 마니다니 훔훔 파닥 사바하~

금강반야바라밀다경 진언
나무 바가발제발라양 파라미다예 옴 이리저이실리 수로타 비사야비사야 사바하~
나무 바가발제발라양 파라미다예 옴 이리저이실리 수로타 비사야비사야 사바하~
나무 바가발제발라양 파라미다예 옴 이리저이실리 수로타 비사야비사야 사바하~

윤실수|2022-09-27 오전 8:24:00|동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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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고의 시인 서정주가 작고했을때 좌파 문인들이 조문대신 친일 운운하자 우파 문인들이-미당의 무덤에 흙이 채 마르
기도 전에 친일타령인가? 라고 항의하였다. 서정주의 동국대 제자로 미당을 친일시인으로 매도한 인물이 이문구와 조정래
였는데 역시 빨갱이 자식이었구나! 이승만 정권이 보도연맹단원들을 예비검속으로 몰살시킨것은 아주 잘한 일로 이들을
살려두었다면 육이오떄 모두 인민군 편을 들어 지금 우리는 바둑은 커녕 김정은이 치하에서 허덕이고 있을 것이다.
reply 대원경
허허허 말세로고~ 쉬쉬 역사에 숨겨진 이승만의 보도연맹사건을 알다니...보기
보다 꽤나 유식하구나.
6.25사변을 전후하여 이승만이 빨갱이라는 낙인을 찍어 자행한 천인공로할 동족
대학살사건이었다

그럼 어디 세계사적으로 유명한 일본인들의 해적질인 관동대학살과 난징대학살
에 대하여도 그 잘난 서울대 입으로 한번 짖어 보아라.

인간아~ 민족의 부끄러움을 아느냐? 그동안 부끄러워 어찌 저 하늘아래 살았단
말이냐?
하늘이 두렵지도 않느냐? 네 가슴속 양심은 도대체 어디로 가버린 것이냐?
누가 훔쳐간 것이냐? 누구에게 팔아먹은 것이냐? 나라와 민족의 수치다. 수치로


2022-09-27 오전 9:29:00
reply econ 프린스턴대 박사인 이승만은 민주주의자였네! 나 같으면 폭동을 일삼던 민족반역자
좌칙분자들의 삼족을 멸앴을텐데 고작 당자들만 척살했으니...
2022-09-28 오전 7:59:00
reply 대원경
박사는 박사지만 정치학박사가 아닌 신학박사, 그것도 기독교 박사였지 않는
가? 민주주의는 국민(백성)이 주인되는 정치로 김일성이도 (인민)민주주의 자였
네. 폭동이라니 ...레지스탕트를 폭동이라니,,,그래서 독립운동도 폭동인가? 삼족
을 멸하다니, 민주주의, 법치주의에 삼족을 멸하라는 조항 어디 있는가? - 이정도
실력으로 서울대를 어찌 들어갔는가? 대가리 두드려 보았자 텅텅소리만 나니 자
꾸 헛소리 그만 짖어라. 옛끼!!
2022-09-30 오전 4:05:00
econ|2022-09-27 오전 8:14:00|동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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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에서 시험지를 유출한 혐의로 교무주임과 두 딸이 중형을 선고받았다. 한국기원 입사시험의 시험문제를 유출한 것은 더
한 죄인데..
reply HIHIHI 아아 망양지탄, 가방끈 긴 자가 길을 잃고 헤매는구나 그래서 어떻다는거지? 너는 고 김성동씨의 시험지 유출 사건을 한낱 가십거리로 가볍개 넘길 것처럼 하다가 중범죄인 취급하는구나 왔다리갔다리 누구처럼 제발 그러지 말라 국격 떨어진다.
2022-09-27 오전 9: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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