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화 여사가 말하는 이창호의 내제자시절 ①
정미화 여사가 말하는 이창호의 내제자시절 ①
[바둑수첩]
  • 정용진|2025-03-31 오후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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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훈현 9단 부인 정미화 여사(왼쪽)와 그 역을 열연한 문정희 배우. [사진제공 | (주)바이포엠스튜디오]
1984년 조훈현 9단이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이창호를 내제자(內弟子)로 받아들였을 때 바둑계에서는 삽시간에 “조제비가 호랑이 새끼를 들여놓았다”는 농이 퍼졌다. 정미화 씨는 남편과 수양아들, 즉 조훈현 9단과 이창호 9단의 틈바구니에서 가장 괴로운 사람이었다.

영화 <승부> 관람 소회…바둑영화지만 바둑영화가 아니다.
조마조마했다. 혹여 영화 <승부>가 흥행에 참패하고 조기에 개봉관에서 내려질까봐. 이전에 바둑을 소재로 쓴 영화가 몇 편 있기는 했으나 솔직히 평하면 바둑의 진수를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말하기엔 멋쩍은 것이었다. ‘바둑’은 그저 극의 전개상 도구처럼 갖다가 썼을 뿐, 주로 폭력 액션극을 위한 들러리에 그쳤다. 그에 비하면 지금 상영 중인 <승부>는 ‘진국’ 바둑영화다. 반갑기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주연배우로 ‘연기를 씹어먹는다’고 하는 이병헌과 유아인을 캐스팅한 점도 놀라웠다. 조훈현 9단이 ‘싸움의 신(戰神)’, 이창호 9단이 ‘계산의 신(神算)’으로 불리는 것처럼 스승과 제자로 분(扮)한 이들 또한 ‘연기의 달인’이었기에 기대가 컸다. 바둑은 원체 정적인 세계여서 바둑 안에 담겨 있는 ‘정중동(靜中動)’의 면모를 어떻게 드러내 관객에게 전달할 것인지 궁금했고, 그럴 내공을 갖춘 배우들이었다.

바둑계에 몸담고 살다 보니 바둑을 소재로 한 드라마건 영화건 심지어 도서건 더러 조언을 요청받을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바둑팬만을 대상으로 제작할 게 아니라면 바둑의 수(기술)적인 내용에 경도되면 망한다”고 얘기해 준다. 바둑을 둘 줄 아는 관객은 일부이기에 ‘바둑에 대해 하나도 모르는 사람’이 봐도 재미있고 공감할 수 있는 내용으로 만들어야 흥행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둑은 예술영화로는 훌륭한 소재일 수 있어도 상업영화로는 그만큼 힘들다는 얘기다. 그런데 영화 <승부>는 이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느낌이다.

바둑사에(아니 그 어떤 종목을 통틀어서도) 전무했던, 십수 년에 걸친 사제(師弟)간 타이틀 공방전과 이에 얽힌 승부사의 드라마틱한 실제이야기를 바둑을 '1도(하나도)' 몰랐던 감독의 연출과 바둑을 '1도' 몰랐던 배우들의 연기가 씨줄과 날줄로 교직(交織)하며 바둑을 '1도' 모르는 관객들의 몸까지 비단처럼 감싼다.

▲ 영화 <승부>의 한 장면. [출처 | 넷플릭스]

집사람과 영화를 보았다. 바둑을 거의 모르는 축에 속하는 아내는 내가 바둑전문 매체가 아닌 신문이나 주간지, 월간지에서 청탁을 받고 쓰는 바둑글의 경우 첫 독자노릇을 해야 했다. 바둑을 잘 모르는 아내가 “별로~야”라는 반응을 보이면 미련 없이 다시 썼다. 바둑을 아는 이에게만 통할 내용은 곧 재미없다는 말이니까. 그랬기에 개봉관에서 <승부>를 관람하며 집사람의 반응을 수시로 훔쳤다. 그런데 별로 슬픈 스토리도 아니건만 아내가 어느 지점에서 눈물을 닦는 것을 보고서 ‘이 영화가 적어도 쪽박은 차지 않겠구나’ 싶었다.

3월 26일 수요일 개봉한 이래 첫주 주말 박스오피스에서 압도적인 1위에 등극하며 누적 관객수 70만 명을 돌파했다고 한다. 올봄 극장가 최고의 화제작으로 떠오르며 입소문을 타고 있다.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유튜브를 비롯해 포털에서 ‘바둑’을 검색하면 온통 영화 <승부> 관련 영상물과 글들이 뜬다. 영화 제작사와는 '1도' 연관 없는 사람이지만 바둑인으로서 이 바둑영화가 흥행해야 바둑홍보와 보급에 도움이 될 터이니 힘껏 응원하고 있다.

아내가 울었다…‘15년 사제승부’에는 또 한명의 주역이 있었다.
<승부>가 조훈현-이창호 사제대결을 그린 영화다 보니 자연 두 주연배우 이병헌과 유아인이 시선을 잡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아이 키우고 살림한 여자라 그런가. 아내는 문정희 배우가 연기한 조훈현 9단의 부인 정미화 여사에 눈길이 갔고, 남편과 수양아들과 같은 내제자 사이에서 그 복잡미묘하고도 애매모호한 위치와 처신으로 한 세월 ‘폭싹 속았을(욕보았을)’ 존재를 다시금 목도하며 울었던 것이다. 유아인(내제자 이창호)이 자기의 바둑(기풍)으로 스승에게 첫 타이틀을 따던 날 밤, 2층 자기방에서 돌아가신 할아버지(손자의 고사리손을 이끌며 방방곡곡 바둑동냥을 다녔던 이화춘 씨)에게 울며 고하는 장면에서도 집사람은 울었다.

애초 <승부> 개봉에 맞춰 흥행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까 싶어 ‘15년 반상 사제대결 이야기’를 이어갈 참이었다. 그런데 생각 이상 영화가 화제가 되면서 사제에 관한 스토리가 여기저기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해서 마음을 바꿔 이창호 9단이 ‘작은엄마’라 부르는 정미화 여사 이야기, 스승과 내제자를 동시에 내조한 조훈현 9단의 부인 이야기로 대체했다. 물론 급선회해야겠다 마음먹은 데는 집사람이 보인 눈물이 한몫했지만, 혼자 세수조차 제대로 못하는 어린 내제자를 받아들여 키우며 남편과 똑같이 내조한 정미화 여사의 행마 또한 ‘승부’의 한 축이기 때문이다. 정여사의 존재가 버텨주지 않았던들 지금 우리가 보는 사제대결, <승부>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참고로 이 글은 [월간 바둑가이드]에 연재한 <승부사의 아내> 중 ‘이창호의 내제자시절'을 시제나 표현 등을 다시 손본 것임을 밝힌다. 정미화 여사를 인터뷰해 쓴 글이다.



▲ 바둑판에 앉은 꼬마 이창호. 1984년 조훈현 9단의 내제자로 들어가 2년 만인 1986년 11세 1개월의 나이에 프로기사가 되었다. 당시 9세에 입단한 스승 조훈현에 이어 최연소 입단 2위 기록이었다.

두 명의 엄마

이창호 9단에게는 엄마가 두 분 있다. 한 분은 자기를 낳고 길러준 생모 채수희 씨이고 다른 한 분은 대성하도록 돌봐준 스승(조훈현 9단)의 부인 정미화 씨다.

1984년 조훈현 9단이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이창호를 내제자(內弟子)로 받아들였을 때 바둑계에서는 삽시간에 “조제비가 호랑이 새끼를 들여놓았다”는 농이 퍼졌다. 실제로 이창호는 몇년 안 가 15년간이나 무적함대로 군림해온 스승의 일인천하를 허물고 한국바둑계에 일대 지각변동을 일으킨 주인공이 되었다.

‘내제자(內弟子)’란 아예 스승의 집에서 동거하며 배우는 제자를 말한다. 우리나라 바둑계에서는 이창호를 집에 들인 조훈현 9단이 첫선을 보였고 또 유일하다시피한 낯선 문하생제도이지만 일본에서는 명망 있는 고수들이 집안에 도장(道場)을 열어 제자를 먹이고 키우며 양성했다. 조남철, 김인을 불러 가르친 기타니 미노루(木谷 實) 9단의 기타니도장이 가장 유명하다. 조훈현 9단은 세고에 겐사쿠(瀨越憲作) 9단의 내제자로 들어갔다. 여러 명이 함께 공부한 도장식 내제자가 아니라 홀로 스승의 집에서 숙식하며 배웠다.

정미화 씨는 남편과 수양아들, 즉 조훈현 9단과 이창호 9단의 틈바구니에서 가장 괴로운 사람이었다. 도전기가 있는 날이면 새벽부터 서둘러 따뜻한 아침밥을 지어 먹이고 두 사람을 나란히 승용차에 태워 대국장에까지 모셔드린다. 이때까지는 그날 누가 이길지 알 수 없으므로 차라리 마음 편하다. 정작 곤란할 땐 저녁이다. 늦은 밤 귀가하는 두 사람 중 한명은 반드시 패자일 수밖에 없을 터인데, 대놓고 어느 한쪽 편을 들 처지가 아니고….

▲ 1989년 8월 [월간바둑생활] 기자시절 전주에 내려가 중앙동에 자리한 '이시계점'에서 찍은 이창호 9단과 부모님. 엄마 채수희 씨와 아버지 이재룡 씨의 40대 초반 모습이다.


▲ 조훈현-이창호의 사제이야기는 국내 최초의 바둑드라마로 제작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1994년 MBC가 3.1절 특집 60분 2부작 드라마로 ‘맞수’(박치문 원작, 김지연 극본, 고석만 연출)를 방영했다. 조훈현 역에 유인촌, 이창호 역에 정준이 출연했다.
사진은 이창호가 내제자시절 사제대결을 벌이기 위해 스승 조훈현 9단과 함께 ‘작은엄마’ 정미화 씨가 차려준 아침을 먹고 집을 나와 작은엄마가 운전하는 승용차에 타는 컷을 촬영하는 장면이다.

그러나 이러한 중립표방도 점차 사제간의 대국이 잦아지고, 남편의 패배가 많아지면서 자연 흔들리기 시작했다. 좀 과장하면, 잘난 내제자 하나 잘못 들인 바람에 자칫하다간 가세가 쪽박 날 지경에 이를지 모를 일이었다. 아무래도 살림을 꾸리는 안방마님으로서 생계가 걱정(?)되지 않았겠는가.

불혹을 넘긴 남편의 체력은 예전 같지 않은데 내제자의 욱일승천한 기세는 끝간 데를 모르니 더욱 착잡할 수밖에. 더욱이 2층(이창호가 연희동 조9단의 집에서 기거한 방은 2층에 있었다)은 날이면 날마다 새벽까지 불이 꺼지는 법이 없다. 따악∼딱, 이창호가 돌놓는 소리는 부메랑의 화살이 되어 작은엄마의 가슴에 섬뜩섬뜩 파고들었다.

“또 창호야?”

언젠가 동양증권배 준결승전 대국추첨에서 조9단이 또 이9단과 대국하게 되자 자신도 모르게 새어나온 정미화씨의 탄식이었다. 승부사의 아내로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고충의 토로였다. 그러나 독을 지닌 산란기의 두꺼비가 스스로 뱀에게 잡아먹힘으로써 어미를 먹고 죽은 그 뱀을 자양분으로 제 새끼들을 무럭무럭 자라게 한다고 하는 어떤 지역 두꺼비의 동물적인 모성본능처럼, 이창호의 오늘은 순전히 작은엄마의 보살핌에서부터 출발했다.

▲ 1991년 [월간바둑] 9월호에 제22기 명인전 도전1국 관전기를 실으며 뽑은 제목은 '조훈현의 아킬레스건, 이창호'였다. 이때 편집장이었던 필자가 정미화 여사가 '또 창호야?'라고 반응한 말에 '필'을 받아 쓴 리드문(이미지 우측 하단)을 영화에서 대사(내레이션)로 그대로 인용해 감회가 새로웠다. 김형주 감독은 바둑잡지에서 이 페이지를 접하고 바로 엔딩대사로 쓸 생각을 했다고 한다. '또 너냐?' '예, 선생님…!' '도리없지, 이것이 승부이니까.'….


▲ 정미화 씨는 조훈현 9단의 일정을 잡는 매니저이자 운전기사 역할도 도맡아한다. 정미화 씨는 아침에 남편을 대국장에 내려준 뒤 돌아갔다가 대국이 끝날 때쯤 다시 와 남편을 모시고 간다. 남편을 태우러 왔다가 복기가 끝날 때까지 옆에서 기다리고 있는 아내 정미화 씨. 바둑을 둘 줄 몰라도, 남편이 만날 '졌어~'라고 말해도 분위기로 상황을 파악하는 '눈치 9단'이다.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받은 아이

아래 글은 어느 스포츠신문에 ‘작은엄마의 고민’이란 제목으로 실린 칼럼 중 한 대목이다. 정미화 여사가 “사실을 과장한 부분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내 심정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어 피식 웃음 짓게 만들었다”고 한 글이다.

<창호가 우리집으로 들어오던 날은 공교롭게도 둘째 윤선을 낳던 날이어서 나는 하루에 두 아이를 얻은 셈이 되었다. 연희동에 살 때였는데, 그때는 시부모를 모두 모시고 있었고 장남 민제가 고작 네 살밖에 되지 않은 때여서 갓난아기 수발까지, 이건 집안이라기보다 차라리 돗데기시장이었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나는 남의 손에 내 집 살림살이를 맡겨 본 적이 없다. 시어머니께서 많이 도와주셔서 버텨올 수 있었기도 했지만, 어쩐지 다른 사람손에 가족의 뒷바라지를 맡기는 것은 마치 인스턴트 음식을 사대는 기분이어서 내키지 않았다.

그때 창호 나이 만9세. 초등학교 3학년생이었으니까 아무리 조신하고 경우 바르다한들 어린애는 어린애, 무엇을 알았겠는가. 여기에 다 큰 어린애(?) 한명은 또 어떻고. 그이는 아직 못 하나 제대로 박을 줄 모른다. 무얼 시키면 온전히 해내기는커녕 되레 일을 저질러놓는 스타일이어서 이러구러 설명을 하느니 바쁘고 힘들더라도 내가 팔 걷어붙이고 하는 게 더 빠르고 속편하다. 그러다보니 형광등 하나 끼우는 법조차 모른다. (그러나 육체적으로는 힘이 들어도 정신적으로 피곤하지는 않다. 민제아빠가 항상 마음속으로 고마워하고 더욱이 사람을 피곤하게 하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힘은 났다. 여자 팔자 뒤웅박 팔자라는데 하긴 이렇게 속으며 살다가 죽는 게지 뭐.>


▲ 연희동시절 조훈현 9단의 가족사진.1987년 1월호 [월간바둑]에 실은 사진으로, 이 무렵은 이창호가 내제자로 들어와 3년째 함께 살고 있던 시기다. 정미화 여사는 승부사인 남편 내조는 물론 시부모님과 아이 셋, 거기에 수양아들 같은 어린 내제자까지 건사해야 했다.

재미대가리(?)가 하나도 없었던 아이

걷고 나면 길은 뒤에 있다. 지나고서야 누구나 웃으며 말할 수 있다. 정미화 씨는 웃으며 말한다.

내 피붙이야 보리밥을 주든 쌀밥을 주든 상관이 없을지 몰라도 남의 귀한 자식을 데려다놓고서야 어찌 신경 쓰지 않을 재간이 있었겠는가. 원래가 과묵한 아이라 그랬겠지만 어릴 때부터 창호는 말이 없었다. 무얼 물어도 널름 파리 낚아채 먹고 입을 다문 두꺼비처럼 대답도 잘 안해 힘들었다. 얘기도 잘하고 상냥했으면 편했을 텐데 늘 말수가 없고 무뚝뚝해 어른인 내쪽이 더 어려웠다.

게다가 분가하기도 전에(일본은 보통 내제자가 5단이 되면 독립시킨다) 예상보다 훨씬 빨리 창호가 선생과 도전기를 벌였으므로 본의 아니게 ‘적과의 동침’ 관계가 오래 지속되었고, 그것이 아무리 승부세계의 일이라고는 하지만 그 사이에 끼인 나로서는 힘들지 않을 수 없었다.

문하생을 받는 것은 쉬워도 키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솔직히 문하생을 들이는 결정은 선생에게 선택권이 주어져선 안되고 그 아내에게 주어질 일이라고 생각한다. 기재가 있는 아이라면 대부분 초등학생 나이일 텐데 양육은 결국 여자의 차지가 아닌가. 그런 까닭에서인지 수십 명의 내제자를 키운 기타니(木谷 實) 선생보다는 그 부인이 나는 더 대단한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나야 처음이고 몰랐으니 창호를 덜컥 받았던 거고….

사람들은 틈만 나면 “언제 또 내제자를 받을 거냐?”고 물었다. 그럴 때마다 민제아빠는 “그건 나보다는 집사람이 칼자루를 쥐고 있다”며 교묘히 모행마하고는 했다. 나 역시 민제아빠 못지않게 제2의 이창호를 만들겠다는 욕심은 있었다. 그러나 이젠 뭔가 알아버린 상태(^^). 처음이야 뭘 모른 탓에 덜컥 받아들였다지만 ‘두번째’는 결심하기 쉬운 게 아니다. 아직 집안 여건이 그렇지 못하고 무엇보다 한번 맡은 이상은 창호에 버금갈 기둥을 만들어내야 하는데, 솔직히 자신이 안 선다. 남의 자식을 기껏 데려다가 서까래 정도밖에 못 쓸 사람으로 키워놓는 것도 그 애 인생이나 부모에게 죄를 짓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좌(左) 황제’에 ‘우(右) 신동’을 거느린 삐에로

남편의 별명은 ‘조제비’였다. 행마가 제비처럼 날쌔고 가볍다 하여 붙여진 별명이었다. 그것이 1989년 바둑올림픽인 응씨배를 첫 우승하면서 쏙 들어가고 그때부터 ‘바둑황제’로 불리기 시작했다. 창호는 말할 것도 없이 100년에 한명 나올까 말까 하는 바둑천재요 ‘바둑황제’에 오른 사람이 벌어다주는 수입을 오롯이 전대(錢臺)에 휘어찬 아내이겠다, 여기에 더해 바둑신동이 ‘작은 엄마’라고 부르는 여자이니, 하긴 다들 클레오파트라가 부럽지 않은 여제(女帝)로 보일 법도 했다.

좀 우스갯소리를 늘어놓자면, 하기사 두 사람이 이 손 안에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두 사제가 기사(棋士) 자격증은 있어도 기사(技士), 즉 운전면허증은 없다. 아침에 대국장으로 가는 길은 으레 ‘좌(左) 황제’에 ‘우(右) 신동’을 거느리고 이 손으로 손수 모시니 그들의 운명은 내 손안에 달렸다고 할밖에.

그러나 한번 생각해 보시라. 날마다 서로에게 칼을 들이대는 사람끼리 나란히 한 지붕 밑에서 잠을 자고 한 식탁에서 숟가락을 뜬 후 같은 승용차편으로 싸움터로 나서는 그 길을 말이다. 그 사이에 끼인 나는 어떤 심정이었으며 무슨 말을 할 수 있었을까. 말을 꺼내도 되도록이면 승부와 무관한 소재를 끄집어내야 하고, 어색, 서먹한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려면 썰렁한 얘기나마 둘 사이에서 뭔가 주절거려야 될 것 같은 삐에로의 심정을. <계속>

▲ 이창호의 프로데뷔전은 1986년 8월 29일 제62회 승단대회 하반기 을조1국에서 조영숙 초단과 둔 대국이었다. 만11세의 이창호 소년과 마주앉아야 하는 그 어떤 기사도 고개를 가로저으며 부담스러워했다.

아래 유튜브 영상은 MBC가 1991년 11월 25일에 방영한 다큐멘터리 <인간시대 - 승부>다. 1991년 11월 8일, 제35기 국수전 최종국 하루를 촬영, 제작한 영상으로 당시 16세 국수에게 역으로 도전하는 스승과 방어하는 제자의 승부심리와 대결을 생생히 담아낸 수작이다. 이병헌 배우가 영화 <승부> 출연제의를 받았을 때 김형주 감독이 이 다큐멘터리를 꼭 봐줄 것을 요청했고, 이 영상을 보고 바로 오케이했다고 한다. 영화 <승부>를 아직 못 보신 분이라면 예습 삼아 먼저 보고 가시면 극을 이해하는 데 한층 도움이 될, 바둑사적으로도 소중한 기록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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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염치|2025-04-02 오전 11:32:00|동감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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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내제자 어쩌구 저쩌구 하지만 조훈현 국수가 이창호에게 뭘 가르친건 없어요. 스스로 실력을 키웠을 뿐입니다.
워러04|2025-04-01 오후 2:22:00|동감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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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이창호의 바둑판 옆에 항상 있는
정다운 팔각 성냥곽 ^^
엄청큰새|2025-04-01 오후 1:59:00|동감 1
글쓴이 삭제
reply 운영자55 ^^;; 요즘 유행하는 표현으로 강조하기 위해 차용해 본 것인데....우려하신 바 인용 따옴표를
넣고 첫 단어에 괄호 (하나도)...라고 설명 표기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2025-04-02 오전 11:31:00
晴天亂流|2025-04-01 오전 10:22:00|동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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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 간 바둑 대결이 국내 최초도 아니고 세계 최초 라는데 당사자 두 분도 힘들었을텐데 중간에 낀 여사님은 얼마나 마음 고생이셨을까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암튼 수고하셨습니다.
rjsrkdqo|2025-04-01 오전 9:31:00|동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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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보았습니다. 조훈현 국수도 부인 정미화 여사도 두분 모두 너무 착하신 분이다. 천생연분 이시다.
reply rjsrkdqo 이창호도 착하고. 세사람 다 착하네. 이런 경우는 거의 보기가 힘든데.
2025-04-01 오전 9:32:00
푸른나|2025-04-01 오전 9:20:00|동감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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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헌 배우님도 참 멋지시네요. 바둑의 붐이 다시 왔으면 좋겠네요...
초리골^^|2025-04-01 오전 8:38:00|동감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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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시절..... 바둑 참 재밌었는데.............
예류자|2025-04-01 오전 3:09:00|동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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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황제 조훈현 스승으로부터 왕관을 물려 받아 대관식을 치루고 옥좌에 앉은 신산 이창호.
바둑사에 기록됨은 물론, 다큐와 영화로까지 만들어져 바린이까지 대대로 회자되는 마르지 않는 이야기의 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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