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시대에 이를 가장 잘 활용하고 있는 기사로 꼽히는 신진서 九단. AI바둑이 보여주는 수법을 남보다 훨씬 체화한다는 건 그의 천재성을 말해주거니와 그만큼 끊임없이 공부하는 기사라는 걸 대변한다.
손흥민 선수가 그러하듯 신진서 九단 또한 아버지의 존재를 빼고서는 말할 수 없다. 오늘날 신진서를 만든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어떻게 가르치고(敎) 길렀을까(育).
이 글은 [월간바둑] 2025년 1월호부터 3월호에 걸쳐 실은 '신진서 九단의 아버지 신상용 씨' 특별인터뷰를 5월 황금연휴를 맞아 다시 소개하는 것입니다. 본문 중 언급하는 기록과 일시는 원고 게재 당시 기준 그대로 전재했음을 밝힙니다. 신진서 九단의 어릴 적 자료사진은 신상용 씨로부터 제공받은 것입니다. 매달 25일에 발행하는 [월간바둑]에도 관심 기울여 주시기 바랍니다. - 편집자 註
○● ‘신공지능’을 만든 아버지 신상용 씨 특별인터뷰 ① 아들에게 부담감을 내려놓고 즐기라는 말을 할 수가 없다! ☜ 1편 보기 클릭
○● ‘신공지능’을 만든 아버지 신상용 씨 특별인터뷰 ② 아버지는 아들의 바둑을 보면 안다! ☜ 2편 보기 클릭
○● ‘신공지능’을 만든 아버지 신상용 씨 특별인터뷰 ③ 7세부터 9세까지 2년간 하루 3시간씩, 아버지와 아들은 사활문제를 풀었다! ☜ 3편 보기 클릭
AI시대를 대하는 일인자의 태도
알파고 출현 이후 바둑계는 인공지능(人工知能)을 좇는 시대가 됐다. 이제 바둑사를 알파고 이전과 이후로 구분할 정도다. 신진서 九단도 “AI는 친구이자 스승이자 넘어서야 할 그것”이라 말한다. 그는 현 프로기사 중 AI바둑에 가장 근접한 기사란 소리를 듣는다. 그래서 별명도 ‘신공지능(申工知能)’이다. 이 말은 신진서 九단이 AI바둑의 수법을 가장 잘 흡수해 나만의 것으로 재창조하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신공지능 이야기를 하면서 인공지능에 대한 그의 생각을 건너뛸 수는 없다. 그의 책 <대국>에서도 한 챕터나 할애하고 있다.
인공지능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또 한번의 큰 변화가 올 것으로 많은 사람이 예측하지만, 그것이 정확히 무엇이라고 정리되는 수준은 아닌 듯하다. 다만 지금도 나를 포함해 수많은 바둑기사들이 인공지능을 공부하고 있고, 각각의 기사들이 인공지능을 어떻게 자신이 것으로 만들어낼지가 중요한 시대가 된 것 같다.
AI는 끊임없는 숙제를 주는 존재이고, 내가 게을러질 수 없게 만드는 일등공신이다. 세계 1위에 올라서도 긴장감을 늦출 수 없는 건 나보다 실력이 뛰어난 AI가 있는 덕분이다.
가끔은 인간도 인공지능을 뛰어넘는 수읽기를 할 때가 있다. 신이 아니기에 AI도 완벽하지는 않다. 끊임없이 노력한다면 언젠가는 AI를 넘어설 수도 있지 않을까? 늘 그런 꿈을 꾸며 끝없는 한계에 도전하는 마음으로 공부에 임한다. 나는 아직도 성장하는 중이므로.
▲ 지금은 AI가 스승인 시대다. 인터넷바둑으로 성장한 신진서가 AI바둑에 가장 잘 녹아들어갔다는 것은 자연스런 일로 보인다. (합성사진)
바둑세계에서 문하생 제도는 이전 조훈현-이창호 사제시절과 같지 않다. 스승의 위상을 이제는 인공지능이 차지해 버렸다. 누구나 AI에게 묻고 배우는 시대다. 그렇지만 AI는 테크닉, 수법만 전수할 따름이지 도와 예까지 가르쳐 주진 못한다. 바둑 한판에 어디 기교와 기술만 존재한다고 장담하겠는가. 선택의 기로에서 인내하거나 흔들리는 심중을 붙잡을 줄도 알아야 하거니와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까지 스스로 연마하고 터득해야할 경지다. 이 모든 요소가 경계 없이 어우러진 것이 승부다.
사진(寫眞)이 처음 나왔을 때 화가들은 이제 다 굶어죽겠구나 했다. 그렇지만 이후 모네, 마네를 중심으로 한 인상주의 인상파가 등장했다. 인간은 새로운 화풍을 개척했고 미술은 여전히 예술로서 살아남았다. 알파고를 기점으로 인공지능 출현이 이와 같다. 이세돌 九단은 AI바둑의 등장을 보면서 홀연히 은퇴했지만 신진서 九단의 생각은 달라 보인다.
“AI가 제 바둑 발전에 무한한 도움을 주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AI가 아무리 완벽하다고 하지만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투혼과 승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둑을 두다 보면 AI 추천수가 아닌데 확률이 AI보다 더 높아지는 수들이 있습니다. 한판에 한수 정도 나올까 말까 하는데 전 그게 인간의 가능성이라고 믿습니다.” (매일경제 손현덕 주필과 한 인터뷰에서)
▲ 앉으나…
▲ 서나…, 오로지 바둑생각, 바둑연구. 2020년 12월 아버지 고향 남해에 박정환 九단과 슈퍼매치 7번기 6국을 두러 갔을 때도 변함 없었다. (사진/ 월간바둑)
AI시대에 기풍(棋風)은 사라진 것일까?
AI시대에 기풍이 사라졌다고들 말한다. 예전에는 ‘우주류’니 ‘대마킬러’니 ‘폭파전문가’니 ‘지하철바둑’이니 캐릭터를 붙여주며 일류기사 저마다의 기풍에 환호작약한 때가 있었다. 그런데 AI 바둑이 득세를 하면서 하나같이 인공지능의 수법을 따라할 뿐 그 바둑이 그 바둑이 돼버린 통에 재미가 떨어졌다고 푸념한다. 이에 신진서 九단은 생각을 달리한다.
“예전에는 기사들이 충암연구회나 이런 집단연구로 기력을 연마한 것처럼 이 시대에 AI를 통해 공부하고 있는 것도 그와 같다고 생각한다. 각자의 시대에 주어진 도구로 정답을 찾는 연습을 우리는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지금은 인공지능 공부인 것이다. 그래서 AI시대 이전과 이후에 공부의 방식은 바뀌었을지언정 인간이 두는 대국에서는 과거와 마찬가지의 입장이 아닌가 싶다. 그런 의미에서 기풍이 사라졌다기보다는 과거에 비해 잘 보이지 않는다고 표현하는 게 적절할 것 같다. 잘 보이지 않는다는 건 바둑이 예전보다 고도화되고 수준이 높아지며 프로기사의 눈에는 보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파악하기 쉽지 않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자신과 박정환 九단의 바둑을 예로 설명했다.
“기풍이 사라진 것인가?”라는 질문에 “포석에서 일찌감치 3·三의 곳을 파고드는 수법 이외는 더 다채로워진 거 같다”고 말한다. “오히려 오청원시대 이후 포석수법이 꾸준히 연구되면서 (인간의) 공동집단연구 시절에는 다들 바둑이 가장 센 일인자의 포석을 따라갈 수밖에 없기에 똑같은 바둑이 더 많았다”고 분석하면서 “저 같은 경우는 전투형이고 박정환 사범님 기풍은 균형을 기가 막히게 잡아나가는 바둑인데 그런 스타일이 여전히 다 남아있지 않느냐. 인공지능 영향으로 초반만 비슷하게 흘러가는 정도인 거 같다”고 했다.
▲ 신진서의 안경. (출처/ 저서 <대국>에서)
‘신공지능’의 AI 공부법
구약성경에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란 구절이 있다. 이것은 우리가 새롭다고 말하는 것들은 단지 누군가에 의해 새롭게 발견된 것일 뿐이라는 말로, 인공지능 바둑도 인간이 수백 년 동안 쌓아온 수법과 지식들을 토대로 발전했듯 이제는 인간이 AI를 보고 배워 한계단 도약할 차례다. 김정운 교수가 “창조는 이미 존재하는 것들의 새로운 편집”이라고 정의한 것처럼 인공지능을 토대로 재창조에 나선 이 시대에서 바둑의 발전속도와 치열함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가 됐다.
그 가장 큰 수혜자이자 개척자가 ‘신공지능’으로 불리는 신진서 九단일 것이다. 그는 요즘 어떻게 공부하고 있을까?
신진서 九단이 인공지능을 통해 공부하는 방식은 ‘정답너머의 정답을 바라보는 방식’이다. 100수 넘어서까지 인공지능이 제시하는 수를 다 외울 순 없는 노릇. 보통 30수에서 50수 사이를 외우는데 프로기사라면 그 정도 범주의 수는 다 숙지하고 대처하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말한다.
이전 버전에 비해 훨씬 강화되기는 했어도 아직도 AI가 못보는 수는 있고(특히 축과 연관돼 있을 경우), 결국 초반에 우위를 잡으려면 인공지능이 제시하는 수보다 뭔가 더 나은 수를 찾아야 할 것인데, 그런 수를 찾는 게 목표라고 한다. 베끼기나 따라하기 수준에 그치는 모방은 재창조를 기대할 수 없다. 정답너머의 정답을 바라보는 방식이 ‘신공지능’의 AI 공부법이다. 이것은 주어진 ‘재능’만 가지고서는 정답을 찾을 수 없다.
이 시대의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이자 교육자인 콜야 블라허(Kolja Blacher)는 자신 또한 부러운 재능을 지녔지만 내로라하는 수많은 제자를 양성하고 지켜본 바, 재능에 대해 이렇게 정의했다. “사람들은 항상 그냥 말하죠. 그것은 타고난 것이고 전통 속에 있다고. 그렇지 않아요. 진짜 재능은 자기 훈련을 할 줄 아는 능력”이라고 말하며 “수 년, 수십 년 동안 계속해서 노력하고 싸우고 노력하지 않는 사람들은 멀리 못 갑니다. 재능에 대해 말하자면, 저는 재능이 10%라고 보고, 나머지 90%는 노력이라고 생각한다”고 단언했다.
흥민이가 넣은 최고의 골(2020년 FIFA 푸슈카스상)이라고 맞장구를 친다면 앞으로 더 좋은 골을 넣는 데 분명 장애가 될 것이다. 나는 흥민이가 번리전보다 더 멋진 골을 넣을 수 있다고 믿는다. 잘할 수도 못할 수도 있지만 매순간 최선을 다하다 보면 더 나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고 믿는다.
손흥민의 최고의 날이 언제냐고 묻는다면 나는 ‘앞으로 다가올 날’이라고 답하고 싶다. 항상 낮은 자세로, 항상 발전하는 그런 날들이라고 말하고 싶다. - 손웅정 저,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에서.
▲ 어린 신진서가 작성한 일일생활계획표를 보면 놀랍다. 입단하던 해(2012년) 입단자 교육을 받던 연수원에서 계획한 내용은 온종일 바둑, 바둑뿐이다.
신진서 九단이 무섭다고 하는 건 재능만 타고 난 게 아니어서 그렇다. 어릴 적 적어놓은 일일생활계획표를 보면 종일 바둑뿐이다. 초중등 시절 인터넷바둑에서 지는 날이면 이길 때까지 덤볐다. 6전 전패를 당한 어떤 날에는 너무 열을 받아 새벽 동틀 때까지 한숨 못잔 채 분을 삭였다. (신진서는 초등학교 저학년생부터 인터넷 바둑을 뒀는데, 그때 아이디가 ‘수미성모’였다. 당시 수미성모는 천야오예, 미위팅 등 중국 프로기사들을 꺾는 얼굴 없는 강자였다.) 청년이 된 지금은 대국에서 진 날은 바둑을 쳐다보지도 않고 뭐든 다른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고 있지만, 꼬마 때부터 무서운 승부욕, 끈기, 집념에 대해서는 소문이 자자했다.
아버지 신상용 씨에게 일일생활계획표 이야기를 하며 어린아이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혀를 내두르자 누가 그 아들의 아버지가 아니랄까봐 한술 더 뜨는 답변을 돌려준다.
“그런데 그 일정은 지금 대입시에 매진하는 일반 애들 공부량에 비하면 특별하다 할 것도 아니죠. 요즘 학생들은 아침 7시에 일어나서 저녁 12시, 1시까지 공부를 하는데 딱 4시간, 5시간밖에 못 자요.
- 아니 그러니까 그런 거는 보통 중고등학교 애들 때 그렇고 신진서 九단의 저 생활계획표는 훨씬 어릴 때 쓴 거란 점이….
“어이쿠, 요즘 의대 지망하는 애들은 세 살 때부터 공부를 시작한다고 하잖아요. 더 심해요. 타 분야도 못지않습니다.”
- 그런데 그게 자기 의지로 하는 게 아니라 부모의 의지? 강압에 의해서 하는 거라고 봐야 하는데, 어린 신진서는 본인 의지로 이렇게 공부했다는 거잖습니까?
“거야 뭐 자기가 좋아서 하는 거니까…. 본인의 강한 의지에 부모의 지도도 곁들여져야할 테고요.”
▲ 아들의 승부에 관한 한, 2020년 삼성화재배 때 1선 마우스 미스로 커제에게 진 바둑조차 최악의 대국이라고 평하는 엄격한 아버지다. 이유는 마우스 미스가 아니라 정작 그 이후 멘탈을 잡지 못한 탓을 든다.
아버지의 눈에 보이는 아들의 ‘하수 행마’
- 아버님이 생각하시는 내 아들 최고의 대국과 최악의 대국을 한번 뽑아주신다면?
“그거야 뭐 컨디션에 따라서 최고의 대국이 될 수도 있고 최악의 대국이 될 수도 있는 건데, 제가 볼 때는 컨디션 나쁠 때 바둑은 전부 최악의 대국이죠. 컨디션 좋을 때 대국은 자세도 좋고 기합도 좋고 다 좋은데….
최악의 대국이 몇 대국 있긴 하지. 2016년 21회 LG배 준결승에서 당이페이 五단(당시)에게 진 판. 이게 진서에게는 처음으로 세계대회 결승을 눈앞에 둔, 자기한테 엄청나게 임팩트가 있는 그런 대국이었는데, 그 좋았던 바둑을 진서 표현대로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화끈거리는 최악의 수’를 두고 져버렸지. 그때 지고 세계대회 우승하기까지 4년여를 기다려야 했지요. 아픔이 컸죠.
그리고 또 2023년 6월 1회 란커배에서 1국을 이겨 놓고도 2, 3국을 역전 당해 우승을 놓친 것. 다음해 2회 대회 결승에서 다시 만나 2대0으로 설욕하기는 했지만, 그때 결승3국에서 상대가 모자를 씌워 왔을 때 그냥 붙여간 거 그거는 하수의 행마잖아요. 기본적으로 날일자로 하나 벗겨낸 뒤 붙어야 고수의 행마거든요. 진서가 갖고 있는 예리한 모습들, 그런 게 없었던 거예요.”
한국과 중국에 멀리 떨어져 있어도 아버지는 아들과 마치 샴쌍둥이인 양 신경망이 작동된다. 남들은 별문제 없는 듯 지나치는 수에서도 아버지는 아들의 이상감각을 간파한다.
▲ <장면> 제1회 란커배 세계바둑오픈 결승3국
○ 신진서 九단 ● 구쯔하오(辜梓豪) 九단
아버지가 말하는 대목이 <장면> 백4로 붙인 수이다. 이렇게 곧장 붙인 탓에 흑‘가’의 반발을 불렀고 이후 백‘나’로 맞대응할 수밖에 없어 의도한 방향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141수 끝, 백 불계패)
▲ <참고도>
<참고도>처럼 먼저 백1을 하나 둔 뒤 4로 붙여나가는 게 고수의 행마였다고 말한다. 실전은 그냥 붙여서 모양이 잘 안 나왔다고 생각하는 거다. 사실 이게 인공지능이 판정하는 승률그래프상으로는 승률이 얼마 안 떨어지는 수인데 아버지의 촉 은 뭔가 달랐고, 결과적으로 이 장면 이후 백의 모양이 계속 찜찜하게 돼서는 흐름상 이 대목이 승부처였을지도 모른다.
세계최강 아들에게 ‘하수’라 지적하는 아버지
천하의 ‘신공지능’에게 감히 ‘하수의 행마’라 말할 수 있는 존재가 누가 있을까. 하지만 아버지의 눈에는 이러한 바둑이 한두 판이 아니다. 2023년 삼성화재배 8강전에서 셰얼하오 九단에 게 그냥 쫓기듯이 대마가 죽어버린 그런 것도 최악이고, 그 전 2020년 삼성화재배 때 1선 마우스 미스를 한 다음에 둔 2국, 이런 것도 다 최악의 대국이라 말한다.
“사실 마우스 미스를 해 가지고 10집 불리했지만 초반에 이 정도 열세는 언제든지 역전이 가능하거든. 멘탈이 깨진 거 그거는 뭐 다 최악의 대목이지.”
- 아니, 인간으로서 1선에 두게 되면 멘탈이 나갈 수밖에 없는 거 아닙니까? 그게 2국까지 영향을 미친 건데 너무 엄하게 보시는 거 아닌가요? AI가 아니면 그거는 도저히 안 될 것 같은데요.
“그래도 두기 시작했으면 그 멘탈을 자기가 부여잡고 끈질기게 승부를 했어야지요. 처음부터 멘탈이 나갔기 때문에 뒤 2국까지 그 영향이 작용했다 이렇게 생각들 하는데, 진짜 노련한 승부사 같으면 그런 부분까지 추슬렀을 테고 그렇게 허망하게 승부하지 않죠.”
- 하하. 자식이 완벽해지길 바라는 아버지의 마음은 끝이 있을 수 없겠지요. 칭찬해 줄만한 대국도 한판은 뽑아주셔야죠?
“제일 자기(진서)가 잘한 거는 박정환이와 세계대회 결승에서 첫 번째로 만났던 24회 LG배 결승1국(2020년 2월 10일)이라고 생각해요. 되지도 않은 바둑을 역전시키는 거야. 그런 거는 이제 뭔가 하고 싶은 의욕이나 모든 게 살아 넘쳐서, 그런 것이 완성돼서 역전이 된 거니까. 사실 결승2국까지도 내용이 어려웠는데 그 대국까지 이기면서 우승한 경우고…. 그런 게 최고죠.”
▲ '또 역전패 하나 생각했다.' 국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할 정도로 힘든 바둑이었다. 2020년 2월 10일 제24회 LG배 조선일보기왕전 결승3번기 1국에서 신진서 九단이 아주 어려웠던 상황을 이겨내고 236수 만에 백으로 불계승, 서전을 장식했다. 언론에서는 '신진서, 집념의 역전승'이라고 썼다.
이 판을 이기기까지 선배 박정환 九단에게 10연패 중이었다. 기자들이 소감을 묻자 신진서는 마침내 연패의 사슬을 끊었다는 안도감보다 자신의 좋지 않았던 바둑 내용을 앞세웠다. “이겼다고 하기 민망하다. 아직 부족하다. 더 노력해야 한다.”
▲ 이때나 지금이나 바둑을 끝내면 곧장 스마트폰을 열어 인공지능은 어떻게 판단했나 검토해 보는 것부터 한다.
신진서 九단은 이 대결에 대해 자서전에 이렇게 회고했다.
“당시 랭킹1위는 나였지만, 박정환 九단과의 상대전적은 4승 15패로 비세였다. 더욱이 10연패를 당하던 중이었기에 이제는 반드시 징크스를 깨야만 했다. 박정환 九단은 ‘무결점 바둑’이라 불릴 만큼 모든 면에서 뛰어난 기사였다. 견고하고 높은 산이지만, 정상으로 가기 위해 내가 반드시 넘어야 하는 산이기도 했다.”
아들이 그 어떤 벽을 느낄 때 등 뒤에서 이를 바라보는 아버지는 어떤 말을 해줄까. 도도히 흐르는 승부세계에서 아버지라 하여 달리 뾰족한 비책이 있을까. 스스로 극복할 때를 기다리는 수밖에.
“그런 경우에는 조급해하지 말라거나, 초심을 잃지 말라거나, 진서가 정신적으로 조금 더 성숙하기를 바랐죠.”
나는 교육이란 말에는 ‘가르치다’를 넘어 ‘기르다’란 뜻이 들어 있다고 생각했다. 축구를 가르치는 데서 끝날 게 아니라 선수로, 사람으로 길러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때 내가 중시한 것은 축구에 임하는 태도와 자세였다. (중략) 축구를 잘 습득하려면 운동능력 하나로는 어림없다. 운동능력이라는 재능을 뒷받침해줄 ‘성실한 태도’와 ‘겸손한 자세’가 겸비돼야 한다.
“상대가 넘어지는 것을 보면, 그 상황이 아무리 공을 툭 차면 골문으로 들어갈 수 있는 좋은 찬스라 해도 공을 바깥으로 차내라. 사람부터 챙겨라. 너는 축구선수이기 이전에 사람이다. 사람이 먼저다.” - 손웅정 저,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에서.
아직 20대의 나이에 세계를 제패해서 대단하다는 게 아니다. 그 나이에 반상 외의 생각까지 담아 행마하는 일인자이기에 위대하다는 것이다. 신진서 九단은 바둑판만 바라보지 않는다. 언제나 바둑계를, 팬들을 바라보는 언행을 한다. 바둑의 발전, 보급까지 일인자가 짊어지고 가야할 마땅한 책무라 생각한다.
어느 매체에선가 한 인터뷰가 여전히 맥놀이 현상마냥 심중에 파고든다. 고찰(古刹)의 타종 소리가 첩첩산중 울려퍼지는 것같이. 놀랍게도 신진서는 이미 고승이 돼 있었고, 그런 일인자를 우리에게 선물한 아버지 신상용 씨에게 무한 감사를 드린다.
“나무판 위에 돌을 올리는 것,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그런데 팬들이 지켜보고 있고 후원사와 관계자들은 많은 노력을 해주신다. 예전에는 지면 기분 나빠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제는 팬들을 위해 좋은 모습을 보이려고 한다. 우승만큼 재미있는 바둑을 둬서 더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싶다. 좋은 영향을 주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하려 한다.”
[5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