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래의바둑서밋' 커제 vs 알파고 2국 장면. [사진 | 구글]
프로가 되면서 접바둑을 둔다는 것은 누군가 지도를 할 경우다.
90년대 승단대회는 단위에 따라 선을 접히는 경우는 있었지만 이건 승단대회 한해서만 그랬다. 같은 프로끼리도 실력의 차이가 분명 많이 나지만 그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를 알아보려고 치수고치기를 하진 않는 이상 잘 모른다.
다른 분야도 그렇겠지만 고수는 자기보다 약한 상대의 차이를 약한 상대보다는 훨씬 더 정확히 안다. 바둑은 수의 깊이를 정확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고수를 이기기 힘들다. 그런 점에서 고수는 치수를 조정할 때 항상 우위에 설 수 있어 더욱 유리하다.
17일 저녁 커제와 중국의 인공지능 줴이가 인터넷으로 대국을 했다. 중간에 보기 시작했기 때문에 줴이가 호선에 두어 이긴 건 줄 알았다. 그런데 처음으로 수순을 돌리자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 커제가 2점을 접히고 둔 것이다. 그러고도 커제가 진 거다. (정확히 말하면 칫수는 2점 접바둑에 6집반을 커제가 역으로 줴이에게 줬다. 제한시간은 30분 1분3회)
기분이 묘했다. 전에 공식적인 자리에서 줴이 개발자가 프로를 2점 접는 실력이라고 했다. 그러니 커제도 질 수 있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기분이 묘한 이유는 이랬다.
1. 커제... 역시 대단하다. (흥행을 안다고 할까)
2. 정말 커제도 2점에 질 정도인가.
3. 그럼 난 3점에도 못 이기나.
4. 알파고 제로랑 두면 난 몇 점 접혀야 되나.
보통 그 세계의 최고들은 자신의 이미지를 위해 이런 대국을 할 이유가 없다. 냉정히 말해 큰 상금을 걸고 한다고 해도 이 조건이라면 고민될 수밖에 없다. 정작 큰 맘 먹고 본인이 하겠다고 해도 소속된 단체에서 말릴 수도 있다.
커제가 공식 대국도 아니고 본인의 실명으로 둔 것도 아닌 인터넷 아이디로 둔 것이니 시험 삼아 뒀다고 해도 이상하진 않다. 하지만 이 바둑을 본 프로들이 너무 많고 팬들도 너무 많아 이미 얘깃거리로는 충분해졌다.
이 바둑의 특징 중 하나는 우선 초반 부분이다.
우리가 보통 2접바둑을 접을 때는 레파토리가 있다. 그런데 프로가 아는 방식으로 줴이는 두지 않았다.
▼실전1 ●커제(2점) ○줴이(인공지능)
77수 백불계승.
▼ 참고도1-1
<참고도1> 우선 백1을 보자 2점 접바둑일 때 이렇게 두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빈도는 낮다. 필자가 지도기에서 백1로 두는 경우는 상대를 편안하게 해드리려고 할 때다. 지도기라는 것도 다양한 경우가 있다. 접대바둑, 승부바둑, 제자 기 살려 주려는 바둑, 등등 거기에 맞는 바둑을 두는 경우가 많다. 물론 줴이가 커제를 편안하게 해 주려고 두지는 않았겠지만^^
여하튼 계속해서 이어지는 백3-7의 수법도 묘하다. 하변만 보면 다들 기원에서 그렇게 말하지 않나 “들어오시던가~”
알파고 제로는 백7로 걸칠 때 손을 빼는 경우가 많다. 흑8은 그냥 하변 그림을 없다고 치면 요즘 스타일의 수를 커제가 둔 것이라 보면 된다.
정리를 하자면 백1~7의 수법은 독특하다고 해야 할지 특이하다고 해야 할지 접바둑 두는 법도 이젠 인공지능에게 배워야 할 판이다. 인정하고 접바둑을 둬서라도 인공지능에게 계속 도전하는 대국자가 많아지면 접바둑 특강 방식도 예전 이론과 많이 바뀔지도 모르겠다.
▼ 참고도1-2
<참고도2> 이 바둑의 하이라이트는 상변 수상전이다. 보통 인공지능 바둑의 약점으로 꼽는 부분은 2가지다. 사활과 끝내기다. 프로의 눈에 “어, 이상한데” 라는 말이 나오는 경우의 대부분은 앞에서 말한 두 가지다. 특히 사활은 심각한 경우가 많아 바둑을 보다 허탈해지는 경우도 많다.
기본 사활이라고 할 수 있는 초급사활을 모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걸 볼 때면 정말 고수 맞나 하는 의심이 자꾸만 들게 된다. 그런 면에서 줴이는 수준이 완전 달랐다. 마치 알파고 마스터 버전과 알파고 리(이세돌과 겨뤘던) 버전을 비교하면 안되는 거야 라고 하는 그런 느낌이라 할까.
하여간 엄청난 압박의 차이가 있다. 백1이 수상전을 하고 있는 와중에 기막힌 타이밍의 한수다. 아마 커제는 이 한 수로 진 것 같다. 직접 물어보지 않아 뭐라 할 수 없지만 느낌은 확실히 그렇다.
▼ 참고도1-3
<참고도3> 줴이는 백1,3으로 흑을 압박했다. 수상전은 이렇게 하는 거야 라고 속삭이듯이 말이다. 커제는 이후 얼마 못 버텼다. 아마 둘 마음이 싹 사라졌다고 본다.
커제가 사람과 두었다면 10%의 승률평가치로도 둘 수 있다. 이미 얼마 전 끝난 신야오배 결승에서 펑리야오를 상대로 보여 준 바둑이 있다. 10%의 이길 가능성을 가지고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계속 두었다. 졌지만 반집승부까지 만들었다. 물론 그런 정도 중요한 판과 비교할 수 없는 대국이지만 인공지능에겐 이미 졌다고 느낀 순간이 되면 의미가 없다고 본 것 같다.
커제가 지고 끝날 줄 알았던 줴이 지도기는 롄샤오가 바통을 이었다. 똑같은 조건으로 롄샤오가 도전한 것. 참고로 커제와 롄샤오는 올해 이세돌에게 모두 패한 아픔이 있다. 이세돌을 이기기 위한 인공지능에게 배우기가 된 것은 아니겠지만 상황은 그랬다.
▼실전2 ●롄샤오(2점) ○줴이(인공지능)
247수 백불계승
▼ 참고도2-1
<참고도2-1> 줴이는 역시 백1로 화점에 두었다. 롄샤오도 역시 화점 선택. 커제와의 차이는 보다 적극적인 협공과 전투를 택했는데 번번히 참패했다.
이 바둑은 커제 바둑보다는 좀 더 오래 두었지만 역시 불계로 롄샤오가 졌다.
4월 중국에서 우칭위안배 여자 세계대회를 할 때 커제가 인공지능과 대국을 한다 했는데 과연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다. 2점을 접히는 상황에서 이미 기존의 방식인 호선 대국으로는 흥행이 될 리가 만무해져 버렸다. 차라리 인간 대표 5명이 인공지능과 2점부터 시작하는 치수고치기를 하는 것이 흥행 면에서 더 성공할지도 모른다.
커제, 롄샤오 두 기사는 용감한 건지 아니면 중국은 이미 알파고 마스터급 수준의 줴이의 실력을 인정한 분위기가 강해서인지 이런 바둑을 둘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인공지능 바둑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이러다가 정말 모 대학 교수님의 말처럼 될까봐(5점 이상 접바둑) 많이 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