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퍼하지 말라” 격랑의 시대에 평화 기원한 승부사
“슬퍼하지 말라” 격랑의 시대에 평화 기원한 승부사
[언론보도]
  • 박치문 바둑칼럼니스트|2021-05-01 오후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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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중앙일보 [박치문의 검은 돌 흰 돌] -“슬퍼하지 말라” 격랑의 시대에 평화 기원한 승부사 ☜ 기사 원문 보기 클릭

우칭위안(吳淸源 1914~2014)은 중국 푸젠성에서 태어나 14세 때 일본으로 건너가 바둑의 신화가 된다. 그는 100세로 타계할 때까지 ‘살아있는 기성’으로 추앙받았다. 그의 인생은 평생 승부와 더불어 살았음에도 고요하고 적막하며 어딘지 비감마저 묻어난다. 일본으로 건너간 지 얼마 안 되어 만주사변(1931)이 일어났고 곧이어 중일전쟁(1937)이 발발했기 때문이다. 그의 정신은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출렁였다. 우칭위안이 펴낸 수필집 제목은 ‘막수(莫愁)’다. 슬퍼하지 말라.

일본서 바둑의 신화 된 우칭위안
응씨배 한·일 결승 땐 서봉수 응원


그는 1933년 일본바둑의 상징이라 할 슈사이 명인과 대국했는데 처음 3수로 3.3, 화점, 천원을 대각선으로 연결했다. 평소의 착상을 실천해본 것이었지만 세상의 반응은 요란했다. 본인방 가문에선 3.3이 금기였다. 본인방 앞에서 3.3을 둔 것을 놓고 “무례”를 넘어 “전통에 대한 반역”이란 반응도 나왔다.

몇 달에 걸친 대국은 우칭위안의 우세로 흘러갔고 호외를 발행할 정도로 인기였지만 중국에 대한 적개심이 고조되면서 우칭위안의 집엔 돌멩이가 날아들기도 했다. 바둑은 슈사이가 기막힌 묘수를 두어 역전 2집승. 본인방가의 제자 마에다가 묘수를 발견하고 훈수했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이에 대한 언급은 또 하나의 금기가 됐다(훗날 우칭위안의 스승 세고에 9단이 이 문제를 거론하여 큰 파장이 일었다).

우칭위안은 1936년 일본에 귀화하고 곧 일본 여인과 결혼했다. 험악한 시절이었다. 그는 ‘막수’에 이렇게 썼다. “일지사변(중일전쟁)이 속히 끝나 전날의 평화스러운 날이 오면 나는 또 한 번 풍광명미한 태호(太湖)에 배를 띄우고 싶다.” 또 “나라와 나라의 대국도 조그만 패싸움에 골몰하여 대국을 저버리면 안 된다”며 간절하게 평화를 기원했다.

정신적 안정을 갈구했던 우칭위안은 홍만회(紅卍會)라는 중국 종교에 깊이 빠져들었다. “이 종교가 나에게는 가장 큰 기쁨이다. 이 교를 가지고 무덤까지 기꺼이 가겠다”고 할 정도였다.

2차 대전이 끝난 뒤 화교들이 그의 국적을 문제 삼았다. 그는 1947년 무렵 대만으로 국적을 바꿨고 대만에선 그에게 대국수(大國手)라는 호칭을 준다. 일본기원 소속 기사였으나 자신도 모르게 탈퇴되어 ‘객원기사’ 신분이 된 것도 이 무렵이다. 우칭위안은 20년이나 지나서야 이 사실을 알았다.

요미우리 신문사 전속으로 10번기를 통해 일본 최고기사들을 잇달아 꺾은 우칭위안은 70년대의 어느 날 다시 일본 국적으로 돌아갔다. 중국이 국제무대에 등장하면서 대륙 출신인 우칭위안이 대만 국적이 된 것을 놓고 알력이 있었다는 소문만 있다. 오도 가도 못한 우칭위안이 다시 일본으로 돌아간 것이다.

우칭위안은 현역에서 은퇴한 뒤 응씨배 심판장을 맡았다. 1993년 서봉수-오타케의 결승전이 벌어진 싱가포르에서 나는 ‘우칭위안 선생’과 같은 방에서 바둑을 관전했다. 대만이 돈을 대고 한일이 싸우는 결승전, 놀랍게도 우칭위안은 오타케가 아니라 서봉수를 응원하고 있었다. 노벨상 수상작가인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이 사람 몸에 동양의 머나먼 도가 흐른다”고 했던 우칭위안. 그는 크게 불리한 서봉수가 역전을 일궈나갈 때마다 자기 일처럼 좋아하며 소리 높이 웃었다. 그가 왜 일본의 오타케가 아니라 일면식도 없는 한국의 서봉수를 응원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봄이 되면 우칭위안의 ‘막수’를 꺼내 다시 읽곤 한다. 올해는 대만해협의 격랑이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동중국해 남중국해도 심상찮고 현해탄의 파도 역시 가라앉을 기색이 없다. 그래서인지 중국, 일본, 대만이라는 국가 사이에 끼여 고심해야 했던 우칭위안의 모습이 더욱 절절하게 다가온다. 슬퍼하지 말라. 봄빛은 애처롭고 세상은 혼탁하지만 슬퍼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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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실수|2021-05-02 오후 1:18:00|동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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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청원, 조훈현, 이건희 3인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일본이 아니면 흙속에 묻혀있을 진주였다는 것입니다. 그 시대엔 선진국 일본이 아니면 사장되었을 천재들이죠! 오 조 두 기성은 긴 설명이 필요없고, 이건희 소년은 부친은 와세다, 본인은 일본에서 고교를 나왔기에 그 인맥으로 일본 전자산업의 기술을 전수받은 것입니다. 학창시절에 부르던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참고로 저는 부친이 징용을 다녀와 번돈으로 빈농 출신으로 대학을 마친 은전을 입었고요!
tjddyd09|2021-05-01 오후 4:44:00|동감 1
동감 댓글
오청원 9단,
역사에 길이 남을 분ㅁ인것 맞아요,
그러나 중국의 마샤오춘 (마효춘)은 오청원을 비난 했지요,
어떤 책에서는 이것이 최선 이다, 해놓고 또 다른 책에서는 다른수가 낫다고 했다고도 하니, ㅋㅋㅋㅋ

그나저나 오청원님이 돌아가시기 얼마전에 인사차 방문한 이세돌을 보고는
이세돌 대국수 라는 칭호를 써 주셨다는건 유명한 일화죠,

그러니 오청원 선생님이 살아생전에 훈형옹 이나 이창호,
또는 일본의 어떤 기사에게도 이런 존경심이 담긴 말씀은 한적이 없으셨죠,

오청원 선생은 이세돌이 세계 최고라 생각 하셨다는 거죠,
reply 윤실수 당시 징용 근로자들의 임금은 교사 월급보다 더 높았지요. 나의 부친은 징용가서 모은 돈으로 말죽거리에 배 밭 땅 3천평을 사 두었는데 지금 그 땅은 천문학적인 가격의...징용이나 정신대서 번 돈으로 부자 된 사람 많지요. 말을 안해(shy)라 그렇지.
2021-05-03 오후 2:41:00
reply tjddyd09 단언컨대 // 역사를 잊은 민족 에게 미래는 없습니다, //
2021-05-02 오후 7:37:00
reply tjddyd09 을사오적 이완용 후손 같은 소리 하구 자빠졌다, 이놈아,
그래서 너 같은 애들을 위해 일찌기 단재 신채호 선생 께서는
(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습니다, ) 라고 하셨지,
2021-05-02 오후 7:35:00
reply tjddyd09 윤실수 아가야 !!~~ 너 혹시 중, 일 전쟁때 난징 9 남경 ) 대학살을 아니 ??
무식한 니가 그걸 알리가 없겠지만은,

중국 사람들이 일본 왜놈 들에게 얼마나 많이 살해 당한지를 알면 여기서 쥬댕이 털지는 않을텐데,
무식하면 용감 하다더니, ㅉㅉㅉㅉ
2021-05-02 오후 7:33:00
reply bibili 가르쳐준 스승인 일본의 은혜가 하늘 같으니, 우리 사법부 판결을 갖고 무역 보복을 해도 하늘 같은 스승이니 참기만 해야 하고, 일제 시절에 우릴 발전시켜 주었다는 망언을 계속 해도 그저 감복하나이다. 해야 하나요? 그들의 비위에 맞춰 사법부를 회유해서 판결을 조작해도 그게 옳은 거구요?
누가 그러라는 거냐? 그냥 과거의 하나의 사례를 얘기했을 뿐이지. 이러실 지도 모르지만... 글이라는게 쓴 사람의 마음이 향하는, 지목하는 방향이 있는 겁니다. 오독이고 비약이란 말은 하지 마시길...
2021-05-02 오후 7:27:00
reply bibili 그래서 일본의 은혜에 감사하란 건가요?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지..
일본에 징용 다녀와 번 돈으로 대학을 마쳤다는 말도 이해할 수 없거니와, 윤실수님이 지금 연세가 어찌되는데, 부친이 징용해서 번 돈으로 대학을 마쳤다는 건가요?
조선시대까지 우리는 다 중국을 공부했고, 그 뒤에는 일본을 잠깐, 그 뒤엔 미국에서 주로 계속 공부하고 있는데... 출발이 늦은 자는 원래 앞선 자들의 것을 배우게 되는 건데.. 배운 걸 잘 활용해서 그 이상의 걸 성취하는 건 본인의 능력과 국민적 자질이지.. 중국, 일본, 미국에서 배운 게 이 세 사람 뿐이고, 배운 나라가 우리 나라 뿐인가요?
2021-05-02 오후 7:21:00
reply bibili 이 글을 쓰신 박치문님도 올해 연세가 70이 넘으신 분인데, 윤실수님은 징용으로 번 돈으로 대학을 마치셨다니, 연세가 100세에 육박하시리라 믿습니다. 일부 노인들의 문제는, 세상은 변하는데 옛날 사고방식을 버리지 못할 뿐더러 그걸 고집하면서 강변한다는 겁니다.오청원이야말로 그 어느 누구보다 더 큰, 하늘보다 더 높은 일본의 은혜를 입었다 할 수 있는 사람인데.. 그런데도 조국과 일본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을 글쓴이가 묘사했고, 잘 알 터인 일본 기사가 아니라 알지도 못하는 서봉수를 응원했다고 끝을 맺었는데...이런 식의 댓글을 다시는건 글을 쓰신 박치문님에게도 누가 되는 일입니다. 누구와도 소통을 못하고 왕따를 자초하는 발언은 마음 속에만 간직하셔야지, 자식들이나 며느리에게라도 털어놓지 마시길 바랍니다. 이런 발언은 광화문에 태극기 들고 가셔서나 하실 일입니다.
한술 더 뜨셔서 정신대 가서 번 돈으로 부자된 사람 많다니... 정말 집단 구타를 당해도 할 말이 없는 발언이십니다. 혹시 일본인 중에서도 극우에 속하신 분이 아닌지 ㅉㅉㅉ
2021-05-04 오후 2:45:00
reply 윤실수 부친이 징용가서 번 돈으로 과수원을 사서 그 수입으로 대학을 나왔다는 얘긴데 못 알아듣는 그대가 더 답답하군! 오청원은 백수까지 장수하여 만년에 대만이나 중국으로 돌아갈수 있었는데 일본에서 종신한 사람인데 그가 무슨 반일이나 한것처럼 ...우리가 오청원에 열광하는건 그의 바둑일뿐 그의 반일감정이 아님
2021-05-04 오후 8: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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