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시를 남긴 허난설헌, 시대를 앞서간 바둑 두는 여성이었다!
바둑시를 남긴 허난설헌, 시대를 앞서간 바둑 두는 여성이었다!
2회 난설헌배를 맞아
[칼럼]
  • 최창묵(약사)|2022-11-28 오후 0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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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남아 전해진 바둑시는 제법 있다. 그렇지만 거개가 남성이 남긴 작품이다. 여성이 쓰고 남긴 바둑시에 대해 들어보았거나 알고 있는 인물이 있는가?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바둑이 남성의 전유물은 아니었을 테지만 여성의 처지에서는 그들처럼 드러내어 수담을 즐기고 작시(作詩)할 계제가 못되었다. 과문한 탓이겠으나, 허난설헌 외는 바둑시를 남긴 여성이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어쩌면 유일하지 않은가 싶다.

강릉에서 허난설헌의 이름을 딴 바둑대회를 여는 까닭은?
지난해에 이어 난설헌배 전국여자바둑대회가 12월 3~4일 이틀간 허난설헌 고향 강릉에서 열린다. 대회가 단발로 끝나지 않고 2회째 이어지자 때마침 ‘바둑을 좋아하는 약사’ 최창묵 님이 허난설헌에 대한 이야기를 기고했고, 난설헌배를 앞두고 독자칼럼으로 게재한다. - 편집자 주

▲ 지난해 12월에 열린 1회 난설헌배 프로부문에서는 조승아 4단(당시)이 정유진 2단(당시)을 꺾고 초대 챔피언에 올랐다.




두 수의 바둑시를 남긴 허난설헌
'그녀는 봉래섬을 떠나 인간세계로 우연히 귀양 온 선녀다,'
명나라 3대 문사로 꼽히는 시인 주지번(朱之蕃)이 시집 서문에 극찬한 사람. 남존여비 사상이 지배하던 시대에, 세상의 중심(中華)이라고 자처하는 나라(명)에서 한갓 변방국으로 치부했던 한 조선 여인을 두고 한 찬사. 그녀는 바로 불우한 삶을 살다 간 천재시인 허난설헌이다.

허난설헌은 명종 18년(1563) 대사성과 경상감사를 역임한 초당 허엽과 애일당 김광철의 딸을 어머니로 강릉 사천에서 태어났다. 초당공 허엽은 한씨부인과 사별한 후 김씨부인과 재혼하여 하곡 허봉, 난설헌 허초희, 교산 허균을 두었다.

오빠 허봉과 동생 허균이 모두 바둑을 두었다. 이러한 집안분위기로 미루어보건대 허난설헌 또한 어린시절부터 바둑을 이해했고 자연스레 오라비, 동생들과 바둑을 두었을 것이다. 수많은 시를 쓴 허난설헌은 그 중 유선사 42수와 궁사 11수에 바둑에 대한 시를 남긴 게 이를 말해주고 있다.

遊仙詞(유선사) 42 신선계에서 놀다
玲瓏花影 覆瑤棋 영롱한 꽃그림자 바둑판을 덮었는데
日午松陰 落子遲 한낮 소나무 그늘아래에서 느긋하게 바둑 두네
溪畔白龍 新賭得 시냇가 흰 용을 내기해서 얻으니
夕陽騎出 向天池 석양에 그 용을 타고 하늘연못 향해 달려가네.

宮詞(궁사) 11 궁녀의 노래
避暑西宮 罷受朝 더위 피하여 서쪽 궁전에서 조회 마치고
曲欄初展 碧芭蕉 굽은 난간에는 파초새싹이 파랗게 펴졌네
閑隨尙藥 圍棋局 한가히 내전의원 따라가 바둑을 두었는데
賭得珠鈿 綠玉翹 구슬 새겨진 초록 옥비녀 내기해서 얻었네.




어찌하여 허난설헌인가? 우리가 미처 몰랐던 여성시인 난설헌의 위대함
조선시대에 여인들은 이름이 없었다. 여성의 지위가 한없이 낮았던 조선시대에 살면서 떳떳하게 이름과, 자, 호까지 지니고 살았던 여인이 바로 허난설헌이다.
허난설헌의 본명은 초희(楚姬), 호는 난설헌(蘭雪軒), 자는 경번(景樊)이다.
초희(楚姬)라는 이름은 ‘재원(才媛:재주가 뛰어난 젊은 여자)’을 뜻하는 것이고, 경번(景樊)은 당나라 때 시를 잘 쓴 번부인(樊夫人)처럼 되고 싶다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호 蘭雪軒은 여자의 미덕을 찬양하는 ‘난혜지질(蘭蕙之質)’에서 蘭을 따왔고, 여자의 뛰어난 문재(文才)를 유서재(柳絮才)라 하므로 여기서 雪자를 따왔다고 한다. ‘유서재’는 진나라 사서의 딸이 시를 짓는데 눈(雪)을 버들개지에 비유한 데서 이른 말이라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천재성을 드러낸 난설헌은 8세 때 '보배로운 일산(日傘)이 하늘에 드리워지니 구름수레가 색상의 경계를 넘었고 은빛누각이 해에 비치니 노을난간이 미혹된 티끌세상을 벗어났다'라고 시작하는 광한전 백옥루 상량문(廣寒殿白玉樓上樑文)을 지어 주변의 어른들을 놀라게 했다. 이 글은 신선세계에 있는 상상의 궁전 광한전 백옥루 샹량식에 초대받아 상량문을 지은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유복한 집안에서 자라난 난설헌은 특히 글재주가 뛰어나서 여신동이라 불렀다. 중국의 양조평양록(兩朝平攘錄)에 '허균의 누이가 일곱 살에 능히 시를 지었으므로 여신동이라 불렀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명나라 전익겸은 자신이 지은 열조시집(列朝詩集)에서 난설헌을 이렇게 칭찬했다.
'난설헌은 조선사람이다. 그 오라버니 봉과 균이 모두 장원을 했다. 여덟 살에 광한전 백옥루 상량문을 지었으며 문재로 이름이 났는데 두 오라버니보다 뛰어났다.'

난설헌은 그림에도 뛰어난 소질이 있어 그녀가 그린 앙간비금도(仰看飛禽圖)가 남아있다.

난설헌이 글을 배우는 동안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은 오빠 허봉으로 그는 여동생의 글재주를 일찍이 알아보고 자신의 친구인 당대의 가장 뛰어난 시인 손곡 이달에게 글을 배우게 했다.

이달은 당(唐)나라 때 손곡 이달, 고죽 최경창, 옥봉 백광훈과 더불어 3대 시인(三唐詩人)으로 꼽혔던 한 명이었지만 서얼로 태어났기 때문에 벼슬길에 나갈 수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틀에 박히지 않은 당시풍(唐詩風)의 시를 잘 지었다. 난설헌은 일생을 떠돌아다닌 불우한 시인이며 부조리한 사회현실에 불만을 가진 스승 손곡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1577년(선조10년) 15세 때 안동김씨 집안인 김성립(金誠立)과 결혼하였다. 그의 집안은 5대나 계속 문과에 급제한 문벌이었다. 당시는 처가살이(男歸女家)가 일반적인데 비해 난설헌은 특별히 시집살이(親迎)을 했다.
남편 김성립은 과거공부를 핑계 삼아 바깥으로 돌며 가정을 등한시하였다. 10년 동안 급제하지 못했으며 신동이라 소문난 아내를 버거워했고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다. 부부사이는 좋지 않았고, 고부간의 갈등도 심했던 것 같다. 허난설헌은 결혼에 회의를 느끼고 남성중심사회에 파문은 던지는 시를 짓기도 했고, 때로는 이 세상이 아닌 신선세계를 동경하며 현실의 불행을 잊으려 하였다.

난설헌은 시집가기 전 사랑하는 님과 행복한 생활을 꿈꾸며 채련곡(采蓮曲)라는 시를 지었다.

秋淨長湖 碧玉流 가을 긴 호수 맑고, 벽옥같은 물 흐르고
荷花深處 繫蘭舟 연꽃 핀 깊은 곳에 목란배 매어두었네
逢郞隔水 投蓮子 임을 만나 물 건너 연밥을 던지며
遙被人知 半日羞 멀리서 누가 봤을까 한나절 부끄러웠네.


1579년 5월 아버지 허엽이 경상감사가 되어 내려갔다. 이듬해인 1580년 2월 병이 걸려 한양으로 올라오다가 상주 객관에서 사망하였다. 또한 1588년 믿고 따르던 오빠 허봉이 강원도 김화에서 객사(客死)하였다. 정신적 지주였던 아버지와 오빠가 돌아가시자 허씨집안은 기울기 시작하였으며 난설헌은 의지할 곳이 점점 없어졌다. 설상가상으로 남편과 시어머니에게 버림받고 오직 정을 붙이고 살던 두 아이마저 일찍 죽었다. 그러나 어디 그뿐인가. 난설헌이 못내 걱정하였던 대로 뱃속에 있던 아이 마저 햇볕을 못보고 죽고 말았다.

이 무렵 난설헌은 현실세계에 만족을 느끼지 못해 비현실적인 꿈의 세계, 신선의 세계로 눈을 돌렸으며 신선의 세계야말로 영원한 고향으로 여겼다. 하늘나라의 생활을 꿈꾸며 87수나 되는 유선사(遊仙詞)를 지었다. 그녀가 평소에 지은 시에는 눈물과 외로움이 가득하지만 ‘유선사’에는 불만도 눈물도 보이지 않는다. 이 글에서 하늘나라는 고향이었고 난설헌은 잠시 인간세계에 내려와 살았던 선녀였다.

유복한 친정에서 자라나던 시절과는 주위환경이 너무나 다른 그녀는 괴로운 나날을 보내면서 자기가 살고 있는 조선사회에 대해 여자로서 남편에 대해 회의를 느끼며 세 가지 한(恨)을 가슴에 안고 살아가고 있었다.

첫째, 이 넓은 세상에 하필이면 왜 조선에 태어났는가?
둘째, 하필이면 왜 여자로 태어났는가?
셋째, 하필이면 수많은 남자 가운데 왜 김성립의 아내가 되었는가?

당시는 폐쇄적인 윤리관 때문에 난설헌을 이해해준 사람보다 비난하는 사람이 많았으니 마음둘 곳이 없었다.

▲ 허균·허난설헌 기념공원. 조선시대 시인 허난설헌(1563~1589)과 홍길동의 저자 허균이 살았던 생가와 기념관. 생가는 문화재자료 제59호로 지정되어 있다. 기념관은 허균과 허난설헌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는 문화공간으로 조성되어 있다.


난설헌의 죽음은 신비롭다. 죽기 몇해 전 죽음을 암시하는 시를 쓴다.
'1585년 봄 꿈속에 바다 가운데 있는 산에 올랐는데 산꼭대기에 올라가니 그만한 절경이 없었다. 그곳 두 여인이 이곳은 신선세계니 시 한수를 지어 기록하지 않겠느냐? 물어 나는 절구 한수를 읊었다. 그때 하늘로부터 한떨기 붉은 구름이 떨어져 봉우리에 걸렸다. 북을 둥둥 치는데 그만 꿈에서 깨었다.'

꿈속에서 지은 시가 다음과 같다.

푸른 바닷물이 구슬바다에 스며들고 碧海浸瑤海
푸른난 새는 채색난 새와 어울렸구나 靑鸞倚彩鸞
아름다운 연꽃 스물일곱 송이 芙蓉三九朶
붉게 떨어져 달빛서리에 차갑구나. 紅墮月霜寒


그 후 그녀 나이 27세 때 집안사람에게 금년이 바로 3.9수(27세)에 해당되니 오늘 연꽃이 서리에 맞아 붉게 되었다(今年乃三九數 今日霜墮紅)하고는 눈을 감았다.

그녀가 죽은 후 안타깝게도 집안에 가득 찼던 작품은 유언에 따라 모두 불태워졌다. 그러나 누이의 작품을 아깝게 여긴 허균은 자신이 간직하고 있던 작품과 기억하고 있던 작품을 모아 <난설헌집>을 엮었다.

그 후 명나라 사신이며 시인인 주지번에게 이 시집을 주어 중국에서 간행되었으며 주지번은 이 시집 머리말에서 '그녀는 봉래섬을 떠나 인간세계로 우연히 귀양 온 선녀다'라고 소개했다.
1711년에 일본에서도 이 시집이 간행되어 애송되었다.

1598년 정유재란에 참전했던 명나라 문인 오명제가 허균이 외어준 한시를 바탕으로 신라의 최치원부터 허균까지 여러 시인들의 시를 골고루 실어 <조선시선(朝鮮詩選)>을 편집했으며 허난설헌 시도 58수나 수록되어 있다.

불우한 천재시인 허난설헌의 묘는 경기도 광주군 초월면 지월리 안동김씨 선영에 있으며 경기도 기념물 제90호로 지정되었다.

▲ 지난대회에서는 한국여성바둑연맹(회장 이광순) 전국지부 회원이 5인 1팀으로 단체전을 벌였다. 아울러 페어대결도 펼쳤는데, 대회에 참가한 선수들이 모두 한복을 입고 대국해 대회취지를 돋보이게 했다. 올해는 벌써 대회 참가자가 200명을 넘어서는 등 큰관심을 끌고 있다.


참고로, 율곡 이이의 어머니 신사임당 역시 강릉이 고향이다. 경포를 축으로 오죽헌과 허난설헌의 생가는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이며, 산 시기가 달라도 역사적으로 존경받고 있는 조선시대의 여성이다.

마침 유튜브에 한국사를 강의하는 황현필 씨가 [역사의 라이벌전]이라는 제목으로 신사임당과 허난설헌을 비교한 동영상이 있기에 링크한다. 황현필 씨의 주장을 다 받아들이지는 않더라도 우리가 미처 몰랐던 허난설헌, 혹 알고 있었다 하더라도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대단한 인물이었다는 것을 환기하기 위해 소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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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시는 작가가 생각하는 세상이지만 교과서 처럼 하나이 정답만 있는게 아니고 괼호안에 정답은 정해진 것반 있는
것 아니고 글을 스는 사람애 따라 다르게도 표현할수 있다는걸 학생들은 모루징요 그때 한떨기 붉은 그름이 덜어
져 봉으리에 걸렸다 ㅡ 를 햬석하면 붉은 노을을 한 덜기 장미같이 초라한 자신에 모습을 떨어진다는 것이지요 둥
둥둥 븍을 올린다는 전쟁신호로 자신에게 위기가 다가온다 ㅡ 이렇게도 햬석할 수도 읽는 사람은 단순한 제미로
읽지만 그속에는 가숨 아픈 사연이 있겟지요
쎄하|2022-11-30 오후 4:43:00|동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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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에 황현필 광고를 하네요. 황현필은 심각하게 좌편향된 역사강사입니다. 오로가 정치 성향을 보인는 걸로 오해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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